“사장님… 이게 다 몇 평이에요?”
“한 700평 되나? 정확히는 모르겠네, 우리 집사람이 알 건데.”
평소 같으면 남의 세간살림을 물어보는 짓을 하지 않았겠지만 이번엔 다르다. 집과 차 뒤로 땅이 길쭉하게 늘어서있다. 정류소에서 이 집으로 들어오는 샛길까지 걸어온 길이 꽤 길었는데, 그 길이 만큼이 다 땅이었다. 개울이 흐르는 쪽의 풍경만 구경하느라 그 길을 옆구리에 낀 쪽은 남의 집일 테니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건만. 그게 다 이 집 땅이었다.
땅은 한눈에 봐도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은 여름내 쑥쑥 자란 온갖 종류의 채소가 심어진 밭이었고, 다른 한쪽이 그토록 찾았던 펜션 구역으로 보였다. 거기서도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이쪽에 있는 건물들이 다 펜션이에요?"
“그래봤자 두 채이긴 한데, 예, 이쪽이 펜션입니다.”
그동안 계속 컨테이너 하나 덜렁 있을 거라고 속단했던 날 벌하기라도 하는 듯한 살벌한 비주얼이다. 사장님의 집보다는 물론 작았지만 2층 건물 두 채가 약간의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1층과 2층이 직각으로 엇갈려 지어졌다. 특이했던 건 지금 여기서는 두 건물 모두 창문이 아예 안 보인다는 점이었고, 펜션으로 향하는 길목엔 손님만 들어갈 수 있도록 철제 울타리가 막고 있었다.
적어도 펜션 주인의 눈치조차도 보지 않고 마음껏 있다 가라며 일부러 그렇게 설계를 한 모양이다. 어떡해. 벌써 마음에 든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하고 싶은 건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집 같다. 빨리 들어가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엉덩이를 들썩이면서 당장에라도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잠깐 이리 와볼래요? 체크인하기 전에 해야 할 게 있어서.”
“네? 아, 네.”
그러고는 사장님 집 바로 뒤, 그러니까 집과 밭을 이어주는 뒷마당으로 안내해 주셨다. 거기엔 이번에야말로 내 상상 속의 컨테이너가 한편에 설치돼 있었고, 그 앞에 여러 개로 잘라 흩어놓은 통나무와 피크닉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사장님이 컨테이너를 가리켰다.
"여기가 펜션 관리실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고요, 필요한 거나 마시고 싶은 거나 뭐든 여기서 주문하세요."
아! 버스 기사님이 말씀하셨잖은가. 이 펜션이 카페랑 슈퍼도 겸영해서 마을분들이 자주 찾아온다고. 그게 여기였구나. 그래, 그제야 딱 앉기 좋은 사이즈로 잘린 통나무의 용도를 알았다. 절로 통나무마다 앉아 커피를 호로록 마시는 노인들의 모습이 상상됐다.
이어 사장님이 꺼낸 말씀은 조금 뜻밖이었다.
“이 문 열면 여기, 창문을 열면 키오스크가 있거든요? 이걸로 주문하고 결제도 다 돼요. 무인이라고, 이게. 최첨단. 응?”
“네? 무인이요?”
“그래요, 무인. 현금은 당연하고 카드도 된다고?”
사장님이 컨테이너 창문을 여시니, 도시에서나 보던 키오스크가 떡하니 있는 모습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차마 말은 못했지만 이런 시골에서, 그것도 이런 오지의 펜션에 키오스크를 볼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누가 할 수 있겠냐고. 보통은 현금이나 계좌이체만 받으니까.
멍하니 입만 벌리고 선 나를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쳐다보시던 사장님은 곧 키오스크 화면을 톡톡 치셨다.
“뭐 마실래요? 우리가 체크인할 때 한 잔 서비스로 드려요. 웰컴 드링크.”
“오, 진짜요? 그럼 전…”
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말하려다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공짜인데 좀 더 비싼 걸 달라는 게 이득이잖아? 뭘 달라고 해야 땡잡았다고 할 수 있을까. 흠.
“근데 여기가 아메리카노랑 라떼랑 그 뭐냐, 아이스티? 이것밖에 없어요. 아, 다방커피랑.”
그럼 그렇지.
“그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끄덕인 사장님이 키오스크를 또 톡톡 두드리셨고, 곧 띵동- 소리가 컨테이너 안을 향해 울리는 게 들렸다. 무인으로 운영하는 거라면서 저런 알림음이 울리니까 괜히 컨테이너 안에 사람이 있을 것만 같고 그렇다.
“이따가 띵동 울리면 커피 나온 거니까 키오스크 옆에 창문 열어서 가져가요. 여기 식사도 제공되는 거 알고 왔죠? 그것도 이 키오스크로 주문하면 되고.”
“안 그래도 여쭤보고 싶었는데, 그 식사 제공이요. 진짜 원하면 삼시세끼 다 제공되는 거 맞나요?”
“네네. 오해할까 봐 말하자면 조식만 무료예요? 알고 오셨죠?”
“네, 그럼요.”
“여하간 웬만한 건 이걸로 다 주문할 수 있으니까 시간 내서 구경해 봐요.”
참 최첨단이다. 사실 매끼 식사를 서빙받을 수 있다는 광고 포인트에 한 달 숙박을 덜컥 예약한 이유가 컸다. 당연히 괄호 열고 ‘1인당 1인 조식은 무료 & 메뉴에 따라 가격 상이’라는 표현도 빼먹지 않았다. 나처럼 혼자 온 손님이 다른 단체 손님들처럼 마트에서 잔뜩 장을 보고 올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무인으로 운영되는 거면 나름의 자동 생산을 구현해냈다는 거겠지만 대체 어떻게 했을까? 로봇이 커피를 만들어주는 건 봤어도 식사까지 만드는 건 못 봤는데. 어떤 음식까지 가능하다는 걸까? 지금 살짝 출출하긴 해서 간단하게 뭘 먹고 싶긴 한데. 혹시 국밥 되나.
“여기 있어봐요? 서류 찾아올 테니까.”
만약 국밥이 된다면 순대국밥을 먹을까, 콩나물국밥을 먹을까를 고민하면서 군침을 삼키고 있을 때 사장님이 뒷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셨다.
서류? 무슨 서류? 호텔도 아니고 펜션에서 체크인할 때 서류 같은 걸 받던가?
살짝 께름칙하려던 기분을 끊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띵동- 이번에는 컨테이너 안에서 바깥을 향해 소리가 울렸다. 사장님 말씀대로 키오스크 옆 창문을 열어봤다.
“아니, 무슨 사람 대갈통만 한 컵이…”
그런 표현을 써도 되나 모르겠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그런지 솔직한 심경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저 얼음이 둥둥 띄워진 평범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이긴 한데, 근데 엄청 큰 사이즈의 머그컵에 담겨있는. 꽤나 대용량 커피를 즐겨먹었던 사람으로서 단언하건대 족히 1리터는 담겨있다. 이렇게 큰 머그컵은 난생처음이었다.
“풉-”
순간 애써 참았지만 결국 비집고 토해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 것이 아닌 낯선 목소리. 서둘러 주위를 돌아본다. 벌써 사장님이 나오셨나 했지만 주위엔 아무도 없다. 산을 타고 넘어오는 바람소리, 멀리서도 희미하게 들리는 개울물소리, 그리고 내 숨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면 컨테이너 안에 진짜 사람이 있는가 싶어 커피가 내어진 창문 안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컨테이너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사방이 막힌 작은 박스만 달려있을 뿐이었다.
‘거기 귀신 들렸어.’
버스에서 만났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맴맴 울린다. 에이 설마.
“여기 앉아보세요.”
사장님이 손에 몇 장의 종이를 쥐고 나오셨다. 사람의 존재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서 냉큼 커피를 들고 사장님 곁으로 갔다. 컨테이너 창문을 닫고 오라는 사장님의 불호령에는 또 냉큼 돌아가 컨테이너 창문을 착착 닫으면서 가슴을 간질이는 어떤 긴장감도 내려놨다. 그 와중에 대갈통 머그컵은 정말 무거웠다.
호록- 으흠. 커피가 왜 이렇게 맛있어?
“자, 이제부터 체크인 전 공지사항을 말씀드릴게요. 잘 들으셔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