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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Sep 30. 2024

1일차. 체크인하기 - (3)

아무튼. 제 아무리 귀신 들린 펜션이라고 해도 체크인도 못해버리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근데 이제 그게 문제다. 버스가 떠난 정류소에 홀로 남은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어도 어떻게 이 마을엔 사람 한 명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을까.


그러고 보니, 펜션 홈페이지에는 서울 어디로 가서 어떤 버스를 타서 버스터미널로 간 다음 여기로 오는 버스를 타면 된다고만 쓰여있었지, 정류소에서부터는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적혀있지 않았다. 당연하지.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주소만 알면 휴대폰 지도 어플에 검색하기만 하면 되니까.


문제는 내 수중에 휴대폰이 없다는 거지. 손이 근질근질하다. 자꾸 비어있는 주머니를 만지작거리게 된다. 휴대폰 없이 돌아다녀본 게 대체 얼마만이야. 사실 그래서 조금 초조하다. 길을 잃은 기분. 가야 할 곳도 없으면서.


머리를 흔들어 잡생각을 털어냈다. 일단 마을회관으로 가보자.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했을까. 금세 발걸음이 싱글벙글해졌다. 가방을 고쳐 잡고 마을회관 문을 두드린다.


똑똑똑-


조용하다. 둘러보는데도 초인종 같은 건 없어서 다시 한번 노크. 이번엔 좀 더 세게, 큰 소리가 나게 두드린다.


그래도 조용하다. 아무도 없는 건가? 아니면 시골 마을회관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노인밖에 없어서 그런가? 문을 냅다 열어버릴까도 싶고, 누구라도 나올 때까지 문을 두드려볼까도 싶었지만 굳게 쥐어본 주먹은 허공에서 서성일뿐이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심장이 쥐어짜인다. 숨을 쉬면서도 답답해져서 아예 숨을 쉬지 말아 버릴까 보다. 남의 집 문을 함부로 열 수 없어. 남의 집 문을 함부로 두드릴 수 없어. 민폐니까. 나의 모든 행동이 남에게 민폐다. 하지도 않은 행동으로, 생각한 것만으로도 벌써 민폐를 끼쳐버렸다.


발 끝을 바라본다. 이 발이 이곳에 서 있는 것조차 잘못이 아닐까? 잘못인가 보다. 잘못이다.


“어떻게 오셨어요?”


별의별 잡생각으로 요동쳤던 눈의 초점을 웬 목소리가 냅다 잡아다 제자리에 앉혔다. 뒤를 돌아보니 하얗게 머리가 샌 한 할아버지가 서있다. 누구라도 보니 괜스레 마음이 놓였다.


“여기 분은 아닌 것 같은데.”

“놀러 왔는데 어딘지를 모르겠어서… 혹시 요정펜션이라고 아세요?”


내 질문이 끝나기도 무섭게 화색을 띠셨다.


"아~ 오늘 오시는 손님이셨구나? 그 한 달 숙박 예약하신 분?"

“네, 맞아요! 사장님이세요?”

“우리 펜션이에요, 요정펜션이.”


운이 좋다. 임자를 제대로 만났다. 따라오라는 손짓에 사장님의 뒤를 따라가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안 그래도 버스 타고 직접 찾아온다고 하길래 걱정돼서 나와봤어요. 우리집이 찾아오기 쉬운 곳은 아니라서. 그래서 자차 타고 오는 손님이 아니고서는 백이면 백 다 픽업 서비스 신청을 하는데.”

“이렇게 멀 줄 몰랐어요, 하하.”

“여기가 서울 근교라 차로는 1시간도 안 되는데 버스로는 한 3시간 걸리나? 그래도 여기까지 잘 찾아오셨어요.”


헝헝 웃으시는 게 너무 호탕하셔서 내가 다 기분이 좋아질 정도다. 그즈음 내 머릿속에는 버스에서 만난 할머니의 말씀을 거의 헛소리로 단정 지었다. 사장님 인상이 이렇게 좋은데 펜션도 분명 좋은 곳이려니. 아마도 할머니는 젊은 여자가 혼자 사람 구경조차 힘든 이런 시골로 놀러 왔다니 놀려주고 싶으셨나 보다. 역시 그랬나 보다.


그나저나 사장님이 참 멋쟁이시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샌 걸 보면 분명 나이가 지긋하신 것 같은데 옷을 입은 태가 남다르다고 해야 할까. 물론 딱 봐도 색이 바랜, 통이 큰 군복바지에 검은색 기능성 스포츠 반팔티를 입으셨을 뿐인데, 소싯적 운동을 꽤나 하신 듯 몸이 참 탄탄하시다. 드러난 팔뚝만 봐도 전완근이 예사롭지 않다.


“우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절로 나와서 얼른 입을 틀어막았는데, 역시 들으셨는지 사장님이 날 돌아보셨다. 괜히 창피해서 얼른 주위를 둘러보는 척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주위에 펼쳐진 풍경에 정말로 탄성을 내질렀다.


사장님의 리드로 짧은 다리를 건넜다 했더니, 가는 길 옆에 깨끗한 개울이 촤악 깔려있었다. 일부러 만든 신도시의 산책길도 이렇게 예쁘진 않을 것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때깔은 역시 다르다. 가로수와는 차원이 다른 통이 큰 고목들이 줄지어 방벽을 세웠고, 그 아래 개울물이 졸졸졸 흐른다. 그 물을 먹고 자란 종류를 일일이 알 수 없는 온갖 들풀들이 자유를 만끽하며 살랑이고 있다.


따사로운 햇볕이 수면 위에 내려앉아 반짝인다. 이곳에만 특별한 필터가 씌워진 것처럼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색감이 일렁인다.


요정펜션이라는 이름이 납득 가기 시작한다. 이곳은 다른 세상이다. 적어도 내가 알던 세상과 같은 땅과 하늘을 공유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어느덧 길 끝에 조그맣게 난 샛길로 들어섰다. 가까이 가지 않고서는 이런 곳에 샛길이 있을 거라곤 아무도 모를 정도로 꽤 깊숙이 숨어있는 길이어서 사장님 말씀처럼 내비게이션이 없다면 말이나 글로는 충분히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날 데리러 손수 마중 나오셨구나.


그리고 나는 마침내 ‘요정펜션’에 도착했…


“여기는 내 집이고, 펜션은 이 집 뒤로 들어가야 해요.”


아. 어쩐지. 샛길 끝에 엄청 큰 단독주택이 있길래 설마 이게 펜션이라고? 이 집 전부 다 나 혼자 쓰는 거라고? 하며 오히려 부담스러울 참이었다. 참나. 진짜 부자는 시골사람들이라더니, 이런 곳에 처음 와본 나로서는 저택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일부러 층고를 높게 지어놓은 듯이 분명 2층 집인데 위아래층 창문의 간격이 꽤 멀게 나있다. 하얀 벽에 빨간 지붕을 쓰고 나무판자로 멋을 낸 집. 집도 참 이쁘게 지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집으로 들어가는 길 끝에는 여기부터 내 땅이오 싶게 자갈이 빼곡하게 깔려 있었다. 주차장으로 쓰이는 듯 픽업트럭 한 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게 다였다. 물론 그래도 땅 자체는 넓긴 했지만 그중 반이 집터고 나머지 반은 차 두 대 세우면 꽉 찰 정도였다.


그래서 솔직한 첫인상은, 에게? 이게 다야?


사장님이 성큼성큼 집 뒤로 향하는 것을 봤어도 그를 따라가는 내 발걸음이 조금 느려진 건, 펜션이 있다고는 해도 역시 내가 처음 생각했던 대로 컨테이너 하나 덜렁 있을 뿐이려니 생각하며 그나마도 없던 기대를 완전히 내려놨기 때문이었다.


완전한 나의 오판이었다. 숨이 멎는다는 건 바로 이런 광경을 봤을 때 경험하는 것이었다. 아니, 집이 얼마나 크면 이렇게 크고 넓은 땅이 앞에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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