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딸내미가 펜션을 지은지 한 5년 됏는데, 그동안 거기서 사람이 몇 명이나 죽어나갔는지 세지를 못해. 꼭 혼자 놀러온 손님들만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다고. 아가씨 그거 알고 왔어?"
"아뇨... 몰랐어요."
"몰랐겠지. 알았으면 그런 데를 놀러가겠어? 죽으려고 가는 게 아니고서야. 쯧."
백미러 속 기사님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살짝 저으신다. 무슨 뜻일까? 할머니 말씀이 노인네 헛소리라는 거야, 아니면 좋은 소리 아니니 듣지 말라는 거야?
"설마 아가씨..."
정신없어라. 백미러와 할머니를 왔다리 갔다리하며 시선이 흔들리는 통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짧게 한숨을 쏟아본다.
불쑥 할머니께서 머리를 좀 더 내게 들이미셨다. 한껏 치켜뜬 눈으로 날 올려보신다. 그리곤, 씨익-. 눈은 똥그랗게 뜨면서 입꼬리만 찢어 웃으시는 모습이 꽤 무서웠다.
"일부러 온 거야?"
"네?"
"일부러 죽으러 왔어?"
그때 끼익- 급정거를 하듯 버스가 멈췄다. 기사님께서 냉큼 운전석에서 내리더니 성큼성큼 할머니 앞으로 오셨다.
"아이고, 할매. 기껏 여기까지 놀러온 사람한테 무슨 헛소리를 자꾸 그렇게 할까? 노인네가 아무리 심심해도 애먼 젊은이를 놀리면 어쩝니까!"
"놀리긴 무슨!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야."
"예예, 그러니까 부지런히 일어나 내리셔. 다 왔어요."
"벌써 다 왔어? 역시 빨라~"
괜히 쫄았다. 기사님 표정이 워낙 험악해서 무슨 일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할머니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리시는 걸 도와드리려 온 거였다. 틱틱대는 말투와는 달리 느긋하게 일어나는 할머니를 부축하는 두 손길이 저렇게 다정할 수가 없다. 할머니더러 빨리 내리라고 종용하는 게 아니라 할머니의 속도에 맞춰 조심히 하차문 계단을 내려가시도록 사방을 살피는 집중의 미간 주름이 아주 인상적이다.
은은하게 웃으시는 할머니. 기사님이 잡아주는 손은 꼭 잡으시면서 눈은 내내 당신의 발 끝에만 고정한다. 앙 다문 입술과 자글자글 진 주름이 귀엽다.
그냥 귀여운 할머니께서 젊은 사람과 수다를 떨고 싶으셨나보다. 할머니의 살벌하게 치켜떴던 눈과 무섭도록 찢어진 입꼬리에 속아 하마터면 할머니께서 한 말씀이 진짜인 줄 알 뻔했다. 말도 안 되지. 귀신이 어딨어. 그리고 애초에 그렇게 불길한 펜션이면 어떻게 아직까지 멀쩡히 장사하고 있겠냐고.
"아가씨!"
할머니께서 무사히 계단을 내려가시고 기사님도 도로 운전석에 앉으셨을 때. 할머니가 대뜸 하차문에 머리를 집어넣으며 날 부르셨다. 그 바람에 하차문을 닫으려던 기사님이 또 짜증을 내며 버튼을 취소하셨다.
할머니는 가만히 날 올려다보셨다. 숨을 고르고 계신 건지, 말씀을 고르고 계신 건지. 그러다 다시 씨익- 미소를 지으셨다. 이번엔 온 얼굴을 모두 편안히 휘어 웃으셨다.
"재밌게 놀다가, 그러고 가."
뻬엥- 소리와 함께 하차문이 닫혔다. 천천히 다시 움직이는 버스. 창문 너머로 할머니가 보인다. 나를 향해 똑바로 손을 흔드시기에 고개를 슬쩍 숙여 인사드렸다.
재밌게 놀다가, 그러고 '가'. '가'라는 말에 힘이 실려있었다. 돌아가, 라는 뜻이겠지. 괜히 서운하다. 아직 펜션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무엇이든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버린 것 같아서.
"할머니 말씀 신경쓰지 말아요, 손님."
할머니를 내려드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평지만 달려오던 버스가 오르막길을 타기 시작할 때였다. 기사님이 입을 여셨다. 어쩐지 백미러로 자꾸 날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했더니 착각이 아니었나보다. 대답 대신 멋쩍게 웃기만 했다. 기사님이 말을 잇는다.
"이 동네 사람들 다 그 펜션에 자주 가요. 이 동네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카페나 편의점이 아예 없는데 거기가 카페를 하거든. 그리고 펜션 손님들한테 간단한 라면이나 술 같은 것도 팔고 그래서 동네 슈퍼 역할도 하는 거야. 노인네들 아침에 일어나서 산책하듯이 마을회관 갈 겸 펜션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그러면 하루 뚝딱이지. 거기가 그런 곳이에요."
"그래요?"
"나도 종종 시간 있으면 커피 마시러 가서 아는데, 거기 예뻐요. 잘 지었어. 할머니 말씀처럼 으시시하고 불길한 데 아니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기사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아하니 답이 나왔다. 왜, 종종 그런 노인이 계시지 않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사연을 길 가던 아무나 붙잡고 늘어놓는 분. 차마 풀지 못한 한이 있으신 건지,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운 건지. 듣자하니 요정펜션이라 하면 마을에 하나 겨우 생긴 소중한 커뮤니티인가본데, 수다쟁이 할머니의 빛바랜 기억과 상상력의 피해자였던 것일 수도.
외진 시골에 있는 펜션이라길래 조용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사람이 많아 복작복작할 수도 있겠다. 그건 좀 아쉽다.
그래도 조금 찝찝했던 기분이 풀려서 의자에 온몸을 기대 다시 창문 밖 풍경을 만끽했다. 이제 버스는 다시 내리막길을 맞이했다. 아까 할머니께서 '산 밑에 상천벌'이라고 말씀하셨지? 그 말에 걸맞게 정말 주변을 둘러싼 산 한 가운데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껏 마을 전경을 내려보다가 버스에 실려 그 안으로 흘러들어간다. 오밀조밀 모여있으면서도 제각각 제멋대로 지어진 집과 밭 사이를 요리조리 지나쳐 더 깊숙이 들어간다. 종점이라더니 지구의 내핵까지 파고들어갈 기세다.
'이번 정류소는 상천벌입니다.'
다음 정류소는 없었다. 드디어 종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동네의 가장 밑바닥에 도착했다. 더 이상 내려갈 길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상천벌 마을회관'이 앞에 있다.
뒤를 돌아본다. 아주 깨끗한 개울이 촤악- 깔려있다. 주변은 온통 산이고, 그 위엔 오직 푸른 하늘과 하얗고 퐁신한 구름뿐이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개울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바람이 불어 잎사귀들이 서로를 부비는 소리. 그 외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와. 진짜 시골이다. 펜션을 예약하리고 마음 먹었던 광고 문구가 떠올랐다.
'세상 끝에서,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세상 끝. 그래. 세상에 끝이 있다면 이곳이 최후의 보루인 것만 같다. 너무 소중해서 신이 자기 주머니에 꼭꼭 숨겨둔, 그런 마을.
"이 동네 참 예쁘죠?"
어느 틈에 운전석 창문을 연 기사님이 말했다. 본인이 말씀하시면서도 또 새삼 느끼시는지 우수에 찬 눈빛으로 마을을 둘러보신다.
"네. 너무 예뻐요. 저 이런 데 처음이에요."
"시골 사는 사람한테도 예쁜 동네인데 도시 사람은 오죽하겠어. 얼마나 있다가 가요?"
"전 한 달 예약했어요."
"통이 크네~ 커피 마시러 가면 종종 볼 수도?"
"그럴 수도 있겠네요."
벌써 회차 시간이 됐는지 버스에 시동이 다시 걸린다.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겨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버스 옆구리를 통통 쳐 세웠다.
"근데 그거는 진짜예요?"
"뭐?"
"요정펜션이요. 귀신 들렸다는 얘기. 사람 몇 명 죽었다는 거... 진짜예요?"
질문을 하고 나서야 질문을 하지 말 걸 후회한 나 자신의 지능을 원망했다. 당연히 아니길 바라면서 왜 굳이 물어서 한 번 더 확인하려 했을까. 혹시라도 맞다고, 사람이 몇 명이나 죽어나간 귀신 들린 펜션이란 답을 들으면 뭐 어쩔 건데? 이 길로 다시 버스 타고 집에 돌아갈래?
그러려고 전 재산 털어서 한 달치 숙박료를 선불로 지급했어? 당일 취소는 환불도 안 해준다고 했잖아!
"종교 있어요?"
그냥 뒤돌아 펜션으로 가버릴까 싶던 순간에 기사님이 대뜸 물어왔다. 기대하면서도 도망치고 싶었던 대답이 아니어서 좀 당황했다.
"아니요. 없어요."
"그럼 귀신도 안 믿겠네?"
"없다고 생각하죠?"
"그럼 됐어."
버스가 슬슬 움직인다.
"귀신이 없다- 계속 그렇게 생각하면 돼."
"...네?"
"그럼 재밌게 놀아요~"
유유히 떠나는 버스와 기사님. 그들의 뒤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넋을 놓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는 확실한가보다. 사람이 죽은 적이 있긴 있구나. 요정펜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