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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Nov 04. 2024

2일차. 아주 오래 산책하기 - (5)

"네?"

"여 혼자 놀러 온 처자들은 실장 총각헌티 잘 보이고 싶어서 아침부터 분칠을 떡칠을 하고 염병하게 차려입고 그러더라고. 근디 아가씨는 세수만 하고 옹게, 아무래도 아가씨 취향은 아닌갑지?"


놀랄 질문은 아니었다. 이런 산골짜기 깊은 마을, 사람 구경하기도 힘든 곳에 젊은 남녀가 있다보면 으레 듣는 질문이지 않은가. 그저 다시금 지금 당연히 예쁘지도 않은 내가 꾸미기는커녕 말 그대로 '세수만 하고 옹게' 이 행색이 조금 부끄럽고 멋쩍어서 냉큼 얼굴을 손바닥으로 벅벅 비볐다. 그래도 할머니들께선 내 행색보단 실장 총각 이야기가 더 재밌으신지 말씀을 이어갔다.


"그려. 접때 그 강남에서 왔다던 여시. 난 그 여시 아직도 잊질 못혀."

"그 유부녀? 남편이랑 새끄들이랑 잘 놀고 갔으면 됐지, 한 달도 안 돼서 혼자 다시 와서는 전 실장 꼬시려고 별 지랄을 다 했었지."

"그려그려그려!"


하긴, 저 정도로 잘생겼으면 그런 사달이 나는 게 당연하겠다. 그건 그렇고 이게 무슨 재밌는 얘기람? 유부녀가 전부에게 반해서 무슨 지랄을 했길래? 너무 궁금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여쭤보고 싶었지만 세 할머니들의 수다 사이엔 비집고 들어갈 틈 따윈 보이지 않았고, 난 누구 말을 끊는 걸 못한다.


"근디 그렇다고 강남에서 여까지 찾아올 정돈가, 전 실장이? 내 눈엔 그 정도까진 안 벼."

"엄매? 저만하면 옛날 같았으면 온 동네 처자들이 줄을 나래비로 섰지. 여자들이 딱 좋아하게 생겼어. 눈은 고라니마냥 똥그랗고 코는 오똑하고 봉긋허니. 얼굴이 둥글둥글한 게 아주 순둥한 강아지여, 귀여워잉."

"니 또 그런다. 실장 총각이 뭔 강아지여. 눈매는 아주 그냥 하늘 위로 쪽 찢어져 있고 코는 너무 뾰족하고, 어? 또 턱이 아주 각이 져 있는 게 양놈 맹키로 부리부리하지."

"다 틀렸고, 실장 총각은 그냥 뱜이여, 뱜. 느끼하게 생겨서는 요리조리 잘 빠져나갈 것 같이 잔머리가 비상하게 생겼잖여."


누가 누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바라보는 관점이나 생각이 다 다를 수는 있다지만 한 사람의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묘사가 이렇게나 확연히 다를 수 있다는 게 가능할까? 게다가 할머니들의 감상과 나의 감상이 또 다르다. 그나마 강아지라고 말씀하신 검은머리 할머니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래도 강아지는 아니지. 전부는 늑대다. 동그래서 초롱초롱해 보이지만 눈매는 양쪽으로 찢어져 매서워보이기까지 하다. 길고 오똑한 코와 작지만 말을 하기 시작하면 숨겨진 이를 잔뜩 드러내는 입. 닮았다면, 그래, 이 집 진돗개 곰탱이가 제일 비슷하려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뱀상은 절대 아닌데...


"전부 그 놈 얼굴 얘기를 또 뭣하러 하고 있어?"


새로운 사람의 목소리가 사장님네 집 앞쪽에서부터 걸어오며 소리친다. 바닥에 깐 조경석을 밟는 소리가 느리지만 한 발자국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며 꾹꾹 눌러 딛는다. 난 이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애초에 전부놈헌티 얼굴이 어딨다고, 쯧. 재수 없구로."


어제 버스에서 뵌 그 할머니다. 할머니는 피크닉 테이블 위에 놓인 샤리통에서 익숙하게 커피 한 잔을 들더니 그대로 다가와 내 엉덩이 옆에 당신의 엉덩이를 바짝 갖다대며 앉았다. 여기 앉으라고 깔아둔 통나무가 몇 갠데, 하나하나 앉아도 열 명은 넘게 앉을 수 있겠구만. 왜 하고 많은 자리 중에 내 옆에. 또 내 옆에!


대놓고 싫은 티는 못 내고 소심하게 엉덩이를 씰룩이며 할머니 엉덩이를 좀 밀어보려 했는데 노인네 힘이 왜 이렇게 좋은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모르는 척 태연하게 커피만 호록-. 뜨거운 커피에 입술을 데이지 않으려 잔뜩 오므린 입술 주위에 진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할매 하는 말이 더 재수 없슈. 어째 떡하니 있는 사람헌티 얼굴이 없다고 번번이 그려?"

"없는 걸 없다고 하지, 뭐라고 혀."

"그럼 할매 눈엔 전 실장이 닭알 귀신으로 보이우? 눈코입 없이 그저 허--얘?"

"아니라고 허면 들어준 적이 있던가."


체념한 채로 말씀하시더니 버스 할머니가 불쑥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셨다. 어깨와 어깨가 딱 맞붙어있을 정도로 가까운 마당이라 마주 보게 된 할머니 얼굴은 더 가까웠다. 사람 얼굴을 이렇게까지 가깝게 본 게 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근데 이상하지. 눈이며 고개며 피할 수가 없다.


그저 날 바라보며, 다물린 입술이 느슨해지며 미소를 지으신다. 편안한 얼굴. 한참을 그렇게 날 보며 웃으시는데 정작 나는 어떤 반응을 해드려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숨만 죽였다. 그렇게 또 한참을 있다가 할머니가 입을 여셨다. 은은하게 풍기는 달달한 믹스커피향과 섞인 구수하고 담백한 할머니 냄새가 난다.


"귀신 들린 집에서도 잠은 잘 잤나벼? 낯빛이 좋아."


또다. 귀신 들린 펜션 얘기. 다른 할머니들은 즉시 질색팔색을 하신다. 저 할매가 또 그 소리네, 라고. 손을 휘휘 젓기까지. 버스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무슨 심보였는지 나는 괜히 할머니와 같은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네. 잘 잤어요."

"어휴~ 아가씨, 그 할매 말에 상대해 줄 필요 없어."


금테안경 할머니가 손을 쭉 뻗어 내 뺨을 그러쥐더니 당신 쪽으로 내 고개를 돌려버리셨다.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릴 생각도 없었지만 어쩐지 내가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릴까봐 할머니는 내 뺨을 놓지 않으신다. 버스 할머니는 괘념치 않으신지 커피만 또 호로록-.


"듣지 마. 쉰소리여."

"괜찮아요. 진짜 저 어제 너무 잘 잤고, 귀신 비슷한 것도 못 봤어요."

"귀신은 보는 게 아니여."


걱정하지 말라고, 진짜 신경도 쓰지 않아서 좋게좋게 얘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버스 할머니는 당신의 커피잔을 내 뺨을 잡은 금테안경 할머니 손에 쥐어줘버리고 내게 더 몸을 불쑥 기대셨다. 안쪽 손으로는 내 허벅지를 턱- 잡았고, 바깥 손은 번쩍 들어 허공 여기저기를 가리켰다.


"여기." 펜션 울타리를.

"저기." 사장님 집 후문 쪽 전구를.

"그리고 저기도." 컨테이너를 가리킨다.


그리곤 치켜세운 손가락을 머리 위로 들어 빙글빙글 돌린다.


"이 집 온 구석구석에 귀신들이 들어차있어. 한둘이 아니여. 드글드글하다고."

"어떻게 아세요?"


잔뜩 상기된 채 말씀하시던 버스 할머니는 나의 질문에 다시 어깨를 축 늘어뜨리셨다. 손을 턱 내밀자 금테안경 할머니가 도로 커피잔을 내어준다.


정적. 모든 걸 알면서도 쉬쉬하는 듯한 할머니들의 커피 홀짝이는 소리가 어색하다. 호록-. 호로록-.


"저 할매 무당이었어."


어찌할 바를 몰라 온몸의 솜털이 쭈뼛쭈뼛 서던 중에 이끼비니 할머니가 정적을 깨셨다. 할머니의 말씀 그대로에 놀란 나와는 달리 누군가 말해선 안 될 것을 말한 것처럼 다른 할머니들(물론 버스 할머니는 평안-하시다)이 화들짝 놀라 버럭 소리를 지르신다. 기분 좋게 놀러 온 아가씨한테 못하는 말이 없냐고 하지만 이끼비니 할머니는 이미 당신의 말에 심취해 계셨다.


"나이 들면서 신빨이 떨어져가지구 진즉에 은퇴했는디, 저 양반이 왕년에 아주 용한 무당이었다고. 그래서 아직도 종종 저런 소리혀."

"진짜요?"

"그리고 며느리가 신딸인디 돈 떨어질 때쯤 되면 여기 굿하러도 와."

"그럼. 이맘때쯤 돈이 떨어졌을 텐디- 허면 귀신 같이 와서 방울 흔들어재끼고 난리지."

"내 눈에 귀신은 그 며느리가 더 귀신 같어, 나는. 애가 아주 못-되게 생겨가지고 으른들헌티 인사도 안 하고 말이여."

"젊은 사람 버릇이 단단히 잘못 들린게지. 오죽허면 며느리를 신딸로 받은 할매가 신당에서 쫓겨났냐고. 누구 덕분에 무당으로 이름 날리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 허긴 그 성격에 누구 밑에서 일하고 싶겄어? 이제 완전 지 세상이지."


이젠 하다하다 버스 할머니의 며느리 얘기까지 나와서는 내용도 썩 좋지 않은데도 버스 할머니는 전혀 상관 없으신가보다. 근데 대체 뭐가 있길래 허공을 자꾸 둘러보시는 거야. 무당이라더니 정말 귀신을 보고 있는 거 아니야?


"근디 안 사장네 딸은 왜 곧이곧대로 굿값을 주는겨? 난 그게 제일 이해가 안 가.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지들이 멋대로 와서 멋대로 판 벌이고 가는 건디. 뭐 약점 잡힌 거라도 있댜?"

"약점은 무슨. 안 사장 딸 몰러? 누구네 며느리랑은 정반대 아니여. 싹싹허고, 착허고, 항시 빵실빵실 웃고 다니고, 을매나 똑부러져."

"며느리랑 친구랴. 어렵게 생각할 거 뭐 있어. 친구 사업 도와주는 거지. 안 사장 딸 돈 많다며."

"하이고 참. 고것도 친구라고. 역시 안 사장네 딸, 최고여."

"긍게 우리 커피도 항시 꽁짜로 주는 거 아녀. 인성은 곳간에서 나오는겨."


할머니들의 수다는 어쩜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까. 당신들끼리 하고 싶은 이야기가 따로 있으셔서 하고 싶은 말은 꼭 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이 수다라는 항해의 닻이 되는 것만 같다. 버스 할머니가 무당인 이야기가 어떻게 이 집 딸 안 프로가 곳간 부자, 인심 부자인 이야기까지 와버렸을까.


젠장, 또 안 프로라니. 그것도 부자라고? 부자라서 그렇게나 재수가 없었던 건지, 참. 그나저나 버스 할머니 연세에 며느리가 친구라면 안 프로는 적어도 나이가 사십에서 오십은 된다는 말일까? 그러니 다짜고짜 던져대는 반말이 이해가 간다. 얼굴을 보지도 못한, 어? 손님한테 해대는 반말에 따져보지도 못해 안 그래도 내내 마음에 성질이 나있었단 말이지. 목소리가 내 또래 같다고 느꼈던 건 기분 탓이었던 걸로.


할머니들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신 건지, 열변을 토해 목이 말랐던 건지 동시에 커피로 목을 축이셨다. 드디어 내가 끼어들 틈이 생겨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얼른 질문을 던졌다.


"굿은 그럼 그것 때문에 하는 거예요? 여기서 사람들이 좀 죽었다던데..."

"아가씨가 그걸 어찌 알아?"

"어제 버스 타고 여기 왔거든요. 여기... 할머니랑 같이 타게 됐는데, 그때 들었어요."


금테안경 할머니와 이끼비니 할머니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미 진즉에 다 마신 당신들의 컵바닥만 바라보면서.


내내 이어진 대화를 적당히 받아주기만 하셨던 검은머리 할머니가 축 처진 분위기를 타고 입을 떼셨다.


"많이 죽었지."

"......"

"꼭 그래 젊은 사람들이 혼자 놀러와서는 자살들을 했어."


말이 끝나고. 검은머리 할머니, 이끼비니 할머니, 금테안경 할머니, 그리고 버스 할머니까지 네 분이 동시에 날 쳐다보신다. 여덟 개의 눈동자를 상대하느라 귓가에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꼭 그래 젊은 사람들이 혼자 놀러와서는 자살들을 했어. '아가씨처럼'.


할머니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할머니들께서 날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는 나는 감히 모르겠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어떤 생각이든. 다만 지금 당장 나를 옥죄는 듯한 눈빛들로부터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광대뼈까지 차오를 때였다.


"버스 왔어요! 젊은이 그만 괴롭히고 날래게 일어나셔들."


어느새 참고 있었던 숨통이 트였다. 어제 처음 뵀던 버스기사님이 이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모습이 어찌나 반갑고 감사하던지. 기사님은 역시나 익숙하게 샤리통 위에 남은 나머지 커피잔을 들어 그 자리에서 벌컥벌컥 마신다. 분명 커피는 뜨거웠을 텐데 기사님이 오시는 타이밍에 맞춰 알맞게 식었나보다. 원샷이었다.


기묘한 분위기까지 풍겼던 할머니들은 기사님의 등장에 다시 쾌활한 동네친구 할머니들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분주하게 일어나 허리를 붙잡으며 아이고- 아이고- 신음하셨고, 차례로 빈 컵을 샤리통 위에 돌려놓는다. 집주인도 가게사장도 아니지만 마중을 나가드려야겠다는 왠지 모를 의무감이 들었을까,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들 뒤를 따랐다. 그 덕분에 지금 할머니들께서 주민센터에서 안전보안관으로 일하러 출근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하도 돌아다녀서 이끼비니 할머니의 무릎이 회춘했단 것까지.


검은머리 할머니와 금테안경 할머니께서 내가 너보다 일을 잘한다니, 나는 너보다 동안이라느니 실랑이를 하는 중에 버스 할머니가 내 손을 아주 슬며시 잡으셨다. 얇고 부드러운 피부가 잡은 내 손을 들어 아주 소중하게 쓰다듬는다. 마주 선 할머니는 생각보다 아주 작았다. 키도 몸집도.


"조심혀."

"......"

"이 집 어딘가에 아가씨헌티 원한을 가진 놈이 있어."


할머니가 날 올려다본다. 할머니의 눈동자가 새까맣다. 그 안에 비친 내 표정이 다 보일 정도로. 난 당황하고, 어리둥절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몸 조심허고, 밥 잘 먹고."

"......"

"특히 전부놈. 그놈 조심혀."

"......"

"절대 그놈에게 곁을 주지 말어. 알았지?"

"...네, 할머니."


할머니는 그렇게 홀연히 떠나셨다. 할머니들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다리를 뗄 수가 없었다. 할머니들께선 끝까지 뒤를 돌아보며 내게 얼른 들어가라는 듯, 그저 인사를 하는 듯 손을 휘저으셨다. 할머니들 특유의 정감이 분명 따뜻해야 하는데, 가슴 한켠이 지나치게 싸했다. 버스 할머니의 말씀을 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렵게 발길을 떼고 뒤를 돌아본다. 전부가 있다.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할머니들이 모두 떠나기까지를 기다렸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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