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parang
사랑이란 단어는 따뜻하게 들리지만, 그 속엔 차가운 선이 숨겨져 있을 때도 있다. “너니까 사랑해”가 아니라 “너라서 사랑하지만 그건 이런 조건 아래서야”라는 말은, 알게 모르게 많은 관계를 지배한다.
미국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이를 두고 ‘조건적 긍정 존중(Conditional Positive Regard)’과 ‘무조건적 긍정 존중(Unconditional Positive Regard)’라는 개념으로 나누었다. 그는 우리가 성장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선 어떤 조건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건부 사랑은 보이지 않는 규칙을 건넨다.
“말을 잘 들으면 예뻐해 줄게.”
“성공해야 자랑스러워.”
이런 말은 자칫 사랑을 보상처럼 만든다. 우리는 더 사랑받기 위해 점점 더 많은 걸 감추고 맞추며 조용히 자신을 잃어간다. 반면 로저스가 말한 무조건적 사랑은 단순하다. 잘해도 못 해도 그 사람이라서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마음이다. 그것은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일이다.
사랑은 상대가 아닌 ‘내가 어떤 사랑을 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의 문제다. 조건이 필요 없는 사랑은 누군가를 자유롭게 하고 동시에 나도 따뜻하게 변화시킨다. 진짜 사랑은 ‘왜 사랑하냐?’라는 질문에 답할 필요조차 없는 감정일지 모른다. 그저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은 언제나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이다. 어떤 사랑은 계약처럼 조건 위에 세워지고 또 어떤 사랑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조용히 감싸 안는다. 조건부 사랑이 우리를 위축시키는 반면 무조건 사랑은 자기 확신을 심어준다.
“내가 이래도 괜찮을까?”라는 질문 앞에
“괜찮아, 너는 충분해”라고 말해주는 것
이런 한마디는 마음의 긴장을 풀고 진정한 자기를 마주하게 만든다. 무조건 사랑은 위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해방한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다양한 조건을 안고 살지만, 무조건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깊이와 평온을 기억한다. 조건 없는 사랑은 조건부 사랑이 줄 수 없는 위안과 신뢰를 준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고 고유한 존재로서의 나를 소중히 여길 수 있게 한다. 그 사랑 안에서 사람은 비로소 더 단단해지고 더 자유로워진다. 세상은 끊임없이 역할과 기준을 요구하지만 무조건 사랑은 말한다. “당신은 자체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다.”
어릴 적 들었던 그 말들은 조용히 마음의 뿌리가 되어, 지금도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 앞에서 조건을 충족하려 애쓴다.
“착해야 사랑받을 수 있어.”
“잘해야 인정받을 거야.”
늘 자신을 검열하며 사랑마저도 시험지처럼 느낀다. 반면 무조건적 존중을 경험한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믿고 사랑을 선택이 아닌 존재의 결과로 받아들인다.
사랑은 성과가 아니다. 사랑은 평가가 아니다.
사랑은 내가 어떤 날에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자리다.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랑 앞에서 벗어나진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