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431 슬픔을 달래는 법

커피 친구 상상 소녀

by eunring

어디에서도

그 누구에게서도

슬픔을 달래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어요


답답하고 막막할 때

우두커니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코끝 시리게 차갑고 아플 때는

가만 눈을 감고 괜찮다고 중얼거리거나

마음이 빗줄기 쏟아지듯 소란스러워지면

우산 대신 눈부신 햇살을 걸치고

발길 닿는 대로 마구 쏘다녀보거나

이리저리 떠돌며 기웃거리기도 하죠


보송보송 눈부신 햇살 아래

떠돌거나 서성이고 쏘다니며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멈춤의 시간은

제자리걸음이라도 하듯이 느리게만 가는데

슬픈 듯 아픈 듯 울적함에 겨운

하루는 금방이고 일주일은 더 빠르고

한 달은 순삭입니다


계절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맞은편 문을 열고 잽싸게

달아날 궁리를 하는 듯

종종걸음을 치고 있어요


이제 곧 봄이 오려고

꽃샘추위 먼저 서둘러 오고

웅크린 마음 안에서도

봄을 향한 새순이 조바심을 내는 듯

이리저리 들쑤시는 바람에 싱숭생숭~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토닥토닥 슬픔을 다독입니다

오늘의 커피 친구는

앤이라는 이름을 가진 상상 소녀입니다


상상이라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

초긍정 소녀 빨간 머리 앤이 떠오릅니다

빨간 머리 앤의 무한한 상상력을

잠시 빌려오고 싶은 순간들이 있거든요


마릴라 아주머니가 만들어주시는 새 옷이

사랑스러운 하늘색이거나 연두색이면 좋겠다고 희망하는 앤에게 마릴라 아주머니는

단호하게 갈색이 실용적이라고 하시죠


오랫동안 꿈꾸던 드레스는

소녀스러운 프릴이 달리고

우아하게 부풀린 퍼프소매 드레스라서

프릴과 사랑스러운 퍼프소매를 원하지만

프릴을 좋아하지 않고 부풀린 퍼프소매는

옷감 낭비라는 마릴라 아주머니의

대답이 단호합니다

괜찮다고 앤은 웃으며 말해요

어떤 옷이든 세련된 옷이라고 상상하며

예쁘게 입겠다는 앤의 상상력은

샘이 날 만큼 매력적이죠


네 그럼요~

마릴라 아주머니 말씀처럼

인생은 분명 마법이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퍼프소매 드레스 한 벌

꿈꿀 자유가 있는 거니까요


마릴라 아주머니처럼

프릴과 퍼프소매를 좋아하지 않으나

철부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빨간 머리 앤에게 위로를 받고 있는 내게도

가끔은 앤이 꿈꾸는

프릴 장식이 있는 퍼프소매 옷이

마법처럼 필요한 순간이 있으니까요


제법 오래 다닌 학교에서도

미처 배우지 못한 슬픔을 달래는 법을

이름 끝에 E가 있는 상상 소녀

앤에게서 배웁니다


당근 빛깔의 빨간 머리에 주근깨 톡톡

고집쟁이 앤에게서 슬픔을 달래기 위해 필요한 상상의 힘을 잠시 빌려올 때면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으며 걷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문득 포근해집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초록의 시간 430 봄이 오려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