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649 첫눈 지나간 자리
첫사랑인 듯 아련하게
첫사랑인 듯 아련하게
내린 듯 만 듯 소리도 없이
손에 잡히지도 않는
첫눈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그리움 다독이듯
솔솔 눈가루가 흩어집니다
하늘 우러러 함박눈을 기다리며
새하얀 눈 펑펑 내리면
차가운 눈송이 한번
신나게 뭉쳐보려고
장갑을 하나 주문했어요
그런데요
참 어이없게도 오른손 장갑 두 개가
한 팀으로 뭉쳐 왔습니다
세상에 오른손만 둘인 사람이 있고
그들을 위해 오른쪽 장갑 두 개가
한 세트인 경우도 있나 봅니다
왼손과 오른손이 있으니
왼쪽 장갑과 오른쪽 장갑이 한 벌인 것을
내가 오른손만 둘인 것도 아니고
대체 이를 어쩔~
어이가 없어 잠시 들여다보다가
교환하거나 반품하면 되는 건데
게으른 나로서는 반품이나 교환 따위
번거로워 좋아하지 않으므로
웬만하면 써 보려고
오른쪽 장갑을 왼손에 끼워봤어요
보기에 좀 어색하긴 하지만
쓰기에 아주 많이 불편한 건 아니니
그냥 쓰기로 합니다
오른손을 위한 장갑을
왼손에 낄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요
같은 쪽 장갑을 나란히
한 벌로 묶어놓은 것도 별스런 일이지만
그걸 또 굳이 그대로 끼어보겠다는
나라는 사람도 참 별납니다
보기에 좀 어설프고
쓰기에 좀 어색해서 그렇지
눈송이 뭉치기에는
그다지 무리가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인데요
왼쪽이 두 개 왔으면
제법 불편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쯤에서 궁금한 한 가지는
누군가 왼쪽 장갑 두 개를 받아 든 사람도
어딘가에 분명 있을 테니
그 사람의 반응은 어땠을지
문득 궁금합니다
교환이나 반품 아니면
게으른 나처럼 대충 끼고 말까요
참 별 게 다 궁금하다고 웃으며
눈가루 흩날리는 하늘을 우러러
부질없이 중얼댑니다
몸이 게으르면
머리가 복잡하게 얽히고
손이 게으르면
철부지 궁금증만 뽀그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