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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Dec 16. 2023

초록의 시간 649 첫눈 지나간 자리

첫사랑인 듯 아련하게

첫사랑인 듯 아련하게

내린 듯 만 듯 소리도 없이

손에 잡히지도 않는

첫눈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그리움 다독이듯

솔솔 눈가루가 흩어집니다


하늘 우러러 함박눈을 기다리며

하얀 눈 펑펑 내리면

차가운 눈송이 한번

신나게 뭉쳐보려고

장갑을 하나 주문했어요


그런데요

참 어이없게도  오른손 장갑 두 개가

으로 뭉쳐 왔습니다

세상에 오른손만 둘인 사람이 있고

그들을 위해 오른쪽 장갑 두 개가

한 세트인 경우도 있나 봅니다


왼손과 오른손이 있으니

왼쪽 장갑과 오른쪽 장갑이 한 인 것을

내가 오른손만 둘인 것도 아니고

대체 이를 어쩔~


어이가 없어 잠시 들여다보다가

교환하거나 반품하면 되는 건데

게으른 나로서는 반품이나 교환 따위

번거로워 좋아하지 않으므로

웬만하면 써 보려고

오른쪽 장갑을 왼손에 끼워봤어요


보기에 좀 어색하긴 하지만

쓰기에 아주 많이 불편한 건 아니니

그냥 쓰기로 합니다

오른손을 위한 장갑을

왼손에 낄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요


같은 쪽 장갑을 나란히

한 벌로 묶어놓은 것도 별스런 일이지만

그걸 굳이 그대로 끼어보겠다는

나라는 사람도 참 별납니다


보기에 좀 어설프고

쓰기에 좀 어색해서 그렇지

눈송이 뭉치기에는

그다지 무리가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인데요

왼쪽이 두 개 왔으면

제법 불편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쯤에서 궁금한 한 가지는

누군가 왼쪽 장갑 두 개를 받아 든 사람도

어딘가에 분명 있을 테니

그 사람의 반응은 어땠을지

문득 궁금합니다


교환이나 반품 아니면

게으른 나처럼 대충 끼고 말까요

참 별 게 다 궁금하다고 웃으며 

눈가루 흩날리는 하늘을 우러러

부질없이 중얼댑니다


몸이 게으르면

머리가 복잡하게 얽히고

손이 게으르면

철부지 궁금증만 뽀그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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