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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Sep 10. 2024

초록의 시간 844 가을의 맛

커피 친구 왕빔빵

가을이 오면

생각나는 것들 중 하나가

어릴 적 울 아부지가 사 주시던

큼지막한 밤빵입니다

어린 내 손바닥만큼 큼직한

왕밤빵 하나면 그저 행복했었죠


또 하나 생각나는 건

요즘 만나지 못해 궁금한 

솜씨 좋은 옛 친구의

달콤 밤조림인데요


야무진 그 친구는 가을이 오면

밤을 삶아 겉껍질 벗겨내고

밤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살살 얇은 속껍질까지 벗겨낸 후에

꿀을 넣어 밤조림을 만들었어요


친구 덕분에 손이 많이 가고

사랑과 정성 듬뿍 들어간

달콤 밤조림을 먹으며

그 순간 역시 행복했습니다


또 있어요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보늬밤조림이 떠올라

마음이 몽그르르~


영화 속 보늬밤조림은

얇은 속껍질은 남겨서 졸인

보늬밤조림이었죠

먹어보지는 못했으나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가을의 맛이 듬뿍 느껴져서

역시나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보늬 많으니

밤이 주먹보다 넘는구나~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보늬는 속껍질입니다

밤이나 도토리 은행이나 호두

나무 열매의 얇은 속껍질을

보늬라고 하는데 가을과 잘 어울리는

참 예쁜 우리말입니다


이것저것 그냥 그립고

이 사람 저 사람 문득 떠올라서

가을 신상으로 나온 왕밤빵 하나 사서

반 뚝 잘라 아메리카노와 친구 맺어주고

나머지 반은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 둡니다


어릴 적 왕밤빵은

어린 내 손바닥만 했는데

이제는 왕밤빵이 내 손바닥의

절반으로 작아졌어요


왕밤빵은 그대로 왕밤빵인데

내 손이 어른 손으로 자라

떠오르는 기억들이

밤빵보다 크고  많아서

그 기억만으로도 주먹을 넘습니다


맛있어요

달콤합니다

촉촉하고 부드럽고 고소해요

그런데 먹고 나니 마음에

가을의 쓸쓸함 그대로 닮은

기분 좋은 떫은맛이

앙금처럼 남습니다


보늬가 붙어 있는 것도 아닌데

달달하고 고소면서도

마음에 남는 약간의 떫은맛은

아마도 그리움의 맛이겠죠


달달한 공주밤막걸리 한 잔 대신

개운한 아메리카노 곁에

왕밤빵 하나를 나란히 두고

가을의 맛에 취해 봅니다


가을이니

맘껏 그리워하지

가을에 취한 척 중얼중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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