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517 단풍잎도 거리 두기

사랑도 거리 두기

by eunring

흐린 가을 하늘 아래

단풍이 고운 빨강으로 물들어갑니다

어제 아침에는 빨강 잎 하나였어요

하나는 쓸쓸했는지 오늘은 두 잎입니다

어제도 두 잎인 것을

내가 못 보고 지나쳤을지도 모릅니다


루비처럼 붉은 단풍잎 자매를 보며

사랑으로 어루만지고

예쁘다고 칭찬도 해 줍니다

노랑이나 갈색 잎도 곱지만

빨강 단풍이 꽃보다 사랑스럽습니다


단풍이 울긋불긋 물드는 것은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서라죠

사람들처럼 난방을 할 수도 없고

동물들처럼 두툼한 털옷을 입거나

겨우내 콜콜 겨울잠을 잘 수도 없으니

잎새들을 곱게 물들이고 바삭바삭 떨어뜨려

겨울 채비를 하는 거라고 해요


녹색 잎의 엽록소가 스스로 분해되고

안토시아닌이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꽃보다 고운 단풍이 물들어

가을의 보석처럼 눈부시게 빛납니다


그런데요

단풍잎도 거리 두기를 하나 봅니다

빨강 잎 하나 초록 잎 하나 사이좋게

빨강 초록 사이를 두고 곱게 물들었어요


잠시 떨어져 물드는 것도 사랑임을

단풍잎도 알고 있는 거죠

아끼고 사랑한다고 덥석 다가서면

오히려 서로의 빛깔을 가릴 수 있으니까요


한 잎 건너 거리를 두며

진한 빨강으로 물든 사랑의 단풍잎이

마스크를 쓰면 어떤 모습일까

잠시 부질없는 상상을 하다가

혼자 웃으며 가던 길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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