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김장 축제

친정엄마가 김장하실 때도 바쁘다는 핑계로 안 가던 얌체 딸의 반전

by 은소

집집마다 월동 준비 스타트, 11월은 김장 시즌이잖아요.

매년 몽이네 학교에서 학생들이 1년 동안 먹을 김장을 담급니다.

고3 학생들의 총괄하에 김장 전문가 도우미 이모님들을 섭외해서 3일에 걸쳐 김장을 합니다.

그리고 학부모 봉사단이 참여하여 업무를 분담하고 학년별로 팀을 구성합니다.


학교 뒷마당 텃밭에서 배추를 재배해서 김장을 했던 해도 있었는데 올해는 절임배추를 사용하기로 해서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합니다.

오늘 맡겨진 미션은 야채 세척 및 썰기, 찹쌀풀과 다시 육수 급식실에서 이동, 양념류 운반, 무 채썰기, 무 깍둑썰기, 양념 속 만들기 등입니다.

새벽부터 서둘러 시골학교를 향해 달려갑니다.

학교에 도착하니 부지런한 부모님들과 고3 학생들이 벌써 일을 시작했습니다.

3년째 학교에서 인연을 쌓아온 우리 학년 부모님들을 만나니 갑자기 신이 납니다.

자녀를 시골학교에 보내면서 이렇게 좋은 분들과 인연이 이어진 것이 참 신기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양념 속에 들어갈 무 채 썰기를 어마어마한 양을 만들어야 합니다.

머리에 위생캡을 쓰고 목장갑과 고무장갑, 앞치마와 장화를 신고 다 같이 비장하게 채칼을 들고 업무를 시작합니다.

단순 노동을 할 때 수다 떨기가 없다면 지루하겠지만 유쾌한 아버님들이 우리 팀에 두 분이 계셔서 쉬지 않고 웃으며 효율을 끌어올립니다.

우리 팀이 즐겁게 일을 빨리 진행하다 보니 김장 도우미 이모님들께서 자꾸 더 일을 보태주시기에 요령을 좀 피워야 한다며 또 한 번 농담을 던집니다.


고3 선배들 중에 수시에 지원했거나, 국제반에서 해외 대학에 입시를 준비하거나, 수능이 끝나서 잠시 여유가 되는 학생들이 김장 축제를 진행합니다.

졸업을 앞두고 학교에 남을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김장을 선물하는 학교의 전통입니다.

“저희가 졸업하면 후배들이 먹을 김치니까 맛있게 담가야 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오전 업무를 마치고 점심식사 후 학교 카페에서 티타임을 가졌습니다.

학교 카페는 졸업생 아버지께서 재능 기부로 설계를 직접 하시고 재정 후원으로 건축까지 해주셨습니다.

학생들, 선생님들, 학부모들도 모두 이용하는 최고의 모임 장소입니다.

우리 아이들 중 3 졸업을 앞두고 몇 가지 의견 조율과 근황 토크가 이어졌지요.


저녁 메뉴는 우리가 공들여 만든 김장 속을 곁들인 수육이 나왔습니다.

식당에서 만나는 선생님들마다 수고에 감사하다며 인사를 전하십니다.

고된 하루의 피로가 한결 누그러지는 기분입니다.


김장이 완성되려면 다른 팀들이 이어서 차근차근 마무리해야 하지만 오늘 우리의 하루는 보람차게 마무리하였습니다.

다음에 학교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오늘 우리가 손길을 보탠 김치가 더 맛나게 느껴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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