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 빠지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주체적 관계에 참여하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이란 저서를 통해 사랑의 진정한 의미와 능동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주는 것보단 받는 것에 주목하고,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것보단 끌려가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맡기는 순간 삶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좋은 삶이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다. 지혜는 'sophia'이고 사랑은 'philia'이다. 이 둘을 합치면 philosophy(철학)이다.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고, 지혜를 사랑하는 것은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백상경제연구원, <교실 밖 인문학 콘서트>
학부 때 배운 철학이 살아가는 내내 울타리가 되어줄 거라곤 그 시절엔 미처 알지 못했다. 지혜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또 소중한 일인지도.
누군가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면 최고의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방종과 자유의 차이를 여전히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모한테서 독립하길 원하면서도 대신 책임져주길 원하는 자녀들을 주위에서 종종 발견한다. 부모의 간섭은 받기 싫어하면서 성인이 된 후에도 의지하길 원하고, 연인한테 무심하게 굴면서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을 본 적 있는가? 자유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기 때문에 제멋대로 구는 것이다.
"이번 생에 연애는 글렀나 봐. 왜 아무도 날 진심으로 이해하거나 사랑해주지 않는 걸까?"
거듭된 연애 실패로 좌절한 친구가 푸념하듯 얘기한 적 있다.
"사랑받는 데만 집착하지 말고, 너 자신부터 사랑해 봐. 너 자신을 존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데 진심으로 널 좋아해 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만하면 괜찮아. 잘할 수 있어.'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 때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주문을 외웠다. 그렇게 몇 달을 반복하다 보니 표정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라는 문장의 의미가 생생하게 와닿았다. 지금도 나의 운명을 온전히 껴안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사랑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