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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Oct 15. 2024

고통에 대하여

오래전,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작가 케빈 카터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다. 아프리카의 기아를 환기하려고 독수리와 아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단편적 이미지만 보고 그를 비인간적이라 비난하는 목소리를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수전 선택은 <타인의 고통>이라는 저서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다룬 '이미지 과잉' 속에 살고 있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이미지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타인의 불행에 무감각해지고 이들에 대한 연민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전쟁은 잡아 뜯어 속을 열어 놓고 들어내 놓는다고, 전쟁은 초토화한다고, 전쟁은 팔다리를 잘라버린다고, 전쟁은 황폐화시킨다고.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기자 출신 김인정 작가는 <고통 구경하는 사회>라는 책을 통해 타인의 불행과 재난이 어떻게 구경거리가 되는지 실제로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폭력은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이고, 구경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보는 일이다. 둘 다 보는 일이지만 목격이 가치중립적이라면, 구경할 때 눈은 흥밋거리와 관심거리를 찾는다. 실시간으로 참사가 벌어지던 때, 이태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검색하던 사람들이 피할 수 없었던 '불편한' 이미지들은 무엇을 보여준 걸까?


고통의 재현이란 사실 전달과 적극적 조명, 착취와 대상화라는 상이한 평가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추를 따라다는 일과도 같고, 구경과 대면 역시 현실에선 정확하게 갈라낼 수 없을 정도로 엉켜서 일어난다. 


-김인정, 고통 구경하는 사회



외설과 예술의 경계가 모호한 것처럼, 구경과 대면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힘들 것이다.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진실을 담아내고자 애쓰는 기자와 성공을 위한 먹잇감으로 현장을 이용하는 기자를 우리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타인의 고통을 지켜볼 수는 있어도 오락이나 유희로 전락시킬 권리는 없다는 점이다. 각종 뉴스나 인터넷에서 조회 수를 올리거나 이목을 끌기 위해 당사자의 동의나 허락 없이 이용되는 고통은 차고 넘쳐난다. 그럴수록 우리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좀 더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고통을 판다. 고통을 본다. 고통은 눈길을 끌고... 때로는 돈이 된다. 콘텐츠가 된 고통은 디지털 체계 속에서 클릭을 갈망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고통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자각은 죄책감과 무력감의 원천이 된다. 동시에 사건 바깥에서 비난하는 무고한 위치에 자신을 놓고 정의감에 빠져들거나, 거리감을 핑계로 죄책감으로부터 도망하기도 쉽다. (49)


구경하는 고통이 늘어날수록 쓸데없는 죄책감이 쌓이고 무력감은 우리 사회를 짓누른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건 좋지만, 그것이 우리 삶을 지배하도록 두거나 방관자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흔한 사고일수록 그 고통을 보는 일에 능숙해지고, 주기적으로 비슷한 소식을 들은 나머지 거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결국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언급되지 않는다는 패러독스에 빠진다. (94)


몇 달 사이에 직장에서 산재가 두 번 연달아 일어났고, 담당자인 내가 처리할 일은 더욱 많아졌다. 각종 서류 작업은 그렇다 쳐도, 사고 현장을 전해 듣고 후유증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해자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위험 요소가 산재한 곳이라 '그럴 수 있다'가 아니라, '그럼에도' 우리가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것은 모두의 안전이자 인간답게 살 권리이다. 무엇이 가장 시급한 문제인지는 집단의 특성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또한 가지고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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