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함을 자랑하던 벚꽃이 며칠 사이에 조용히 사라졌다. 출근길에 만나던 벚꽃도 이젠 녹색 잎들이 대신한다.
오래전,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사랑으로 치유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일 년 내내 꽃을 피우기 위해 웅크리고 기다리는 벚꽃처럼 사랑도 뜨겁게 불타오르는 순간을 위해 참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세상이 변하는 속도만큼 인간관계도 빠르게 변하거나 퇴색하는 것 같다. 잠시 만나다 안 보면 그만인 관계, 내가 먼저 손을 놓으면 언제든 쉽게 끊어질 수 있는 사이, 상대가 먼저 연락해 주길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인 관계 등등.
요즘 세대는 소개팅을 받거나 호감 가는 상대를 만나면 상대의 SNS 주소부터 물어본다고 한다. 소개팅 전에 연락을 얼마나 이어가야 할지, 원하는 조건의 사람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 연애에 대한 고민은 이전 세대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모임에서 알게 되어 십 년 넘게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가 있다. 나랑 성향은 많이 다르지만 관심사가 비슷하고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 노력 중이다. 갑자기 일하던 매장이 폐업하는 바람에 타지로 이직하게 된 그 친구는 한동안 타향살이가 외롭다며 내게 수시로 연락하고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지금은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틈틈이 돌아다닌다고 했다.
벚꽃이 지고난 자리엔 흔적이 남는다. 집 앞에 홀로 핀 벚꽃나무도 이젠 푸른 잎이 무성하지만, 언젠가 다시 피어날 꽂을 그리며 내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견디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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