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행복하다.
지난주 금요일에 퇴사를 하자마자 동생과 외국에 다녀왔다.
우울증을 이겨보고자 매일 쓰던 글은 반년 정도 지나니 어느 정도 틀에 박힌 것같이 늘 비슷한 내용만 써졌다. 글을 쓰던 초기에는 남편의 정신병에 대해서 어떻게든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애썼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에는 과거 회상을 통해 현실을 바로잡고자 복기하기 바빴다. 회사는 늘 똑같이 바빴고 행복한 신혼부부 연기는 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는 와중에 남편의 이혼 소장이 드디어 도착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변호사를 선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린 혼인 기간도 너무 짧고 아이도 없고 나눌 공동 재산도 없으니 우선 조정이혼 수수료인 330만 원을 변호사에게 입금했다. 공동 지출한 결혼 준비 비용 중 내가 먼저 지불한 3000만 원도 돌려받지 못했는데 변호사 수임료로 300만 원(부가세 별도)을 지출하다니. 이 상황에 감정을 싣자면 여전히 화가 나지만 추후에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그에게 받든 그의 부모 앞으로 달아둘 테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지리멸렬한 감정 따위가 아니라 눈앞에 헤쳐나가야 할 일들을 게임 퀘스트처럼 깨부수는 것뿐이다. 변호사를 선임했으니 골치 아픈 일은 당분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벌었다. 최근 내 관심사는 오로지 인수인계에 쏠려있었다. 하필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퇴사하게 되어서 일정상 퇴사를 앞두고도 야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 쓸 시간이 없었다. (물론 핑계다.)
그렇다. <일하는 30대 중반 여성>을 연재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꼬박 반년 다닌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다. 성과에 목숨 거는 팍팍한 회사 생활에 숨 막힐 때도 있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다닐 만한 회사였다. 고작 반년이지만 나름의 성과도 꽤 있었고 그로부터 얻은 성취감은 내 우울 치료에 커다란 자양분이 되었다.
하지만 서울이 싫어서, 서울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쉬이 잡히지 않았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 위치한 대기업 리스트를 찾아서 채용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졌다. 거의 반년의 긴 채용 과정 끝에 최종 합격 연락을 받았다.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 한 번도 대기업을 생각하지 않았고 소위 '네카라쿠배' IT기업 스타일이었다. 나한테 목적지는 대기업이 아니었다. 오로지 '탈 서울' 목표 하나뿐이었다.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훌쩍 떠나는 게 차라리 지금의 내 인생엔 더 도움 될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이었다.
입사까지 자유 시간은 고작 1주일. 인수인계가 늦어졌고 금요일 퇴근 시간까지 꽉 채워서 만근 했다. 백수 1주일 차. 그중 5일은 해외에 있었다. 여행 가서 몇 달 전부터 벼르고 별렀던 비싼 목걸이를 샀다. 사기 결혼 촌극 1년, 영혼이 살해당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중증 우울증에도 나는 단 한 번도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직을 했고, 계속 커리어를 발전시켜서 더 좋은 기회로 또 다른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나 자신이 몹시 기특해서 평소에 쉽게 살 수 없는 비싼 선물을 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난 1월부터 일을 했으니깐 한 달에 100만 원씩 모아서 500만 원 정도 하는 목걸이를 사야지. 평소 같았으면 생각도 못할 가격대의 금붙이를 목에 걸고선 믿기지 않아서 계속 한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해리포터 이마의 번개 모양 상처처럼, 살아남았다는 생존의 징표처럼. 나는 당당하고 기특한 생존자이니깐.
- 유효기간이 있는 백수 생활: 정말 행복하다.
이사고 나발이고 일단 지금은 마음껏 행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