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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Jul 06. 2024

백수가 되자마자 500만 원이 넘는 목걸이를 샀다.

아무튼 행복하다.


지난주 금요일에 퇴사를 하자마자 동생과 외국에 다녀왔다.




우울증을 이겨보고자 매일 쓰던 글은 반년 정도 지나니 어느 정도 틀에 박힌 것같이 늘 비슷한 내용만 써졌다. 글을 쓰던 초기에는 남편의 정신병에 대해서 어떻게든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애썼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에는 과거 회상을 통해 현실을 바로잡고자 복기하기 바빴다. 회사는 늘 똑같이 바빴고 행복한 신혼부부 연기는 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는 와중에 남편의 이혼 소장이 드디어 도착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변호사를 선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린 혼인 기간도 너무 짧고 아이도 없고 나눌 공동 재산도 없으니 우선 조정이혼 수수료인 330만 원을 변호사에게 입금했다. 공동 지출한 결혼 준비 비용 중 내가 먼저 지불한 3000만 원도 돌려받지 못했는데 변호사 수임료로 300만 원(부가세 별도)을 지출하다니. 이 상황에 감정을 싣자면 여전히 화가 나지만 추후에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그에게 받든 그의 부모 앞으로 달아둘 테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지리멸렬한 감정 따위가 아니라 눈앞에 헤쳐나가야 할 일들을 게임 퀘스트처럼 깨부수는 것뿐이다. 변호사를 선임했으니 골치 아픈 일은 당분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벌었다. 최근 내 관심사는 오로지 인수인계에 쏠려있었다. 하필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퇴사하게 되어서 일정상 퇴사를 앞두고도 야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 쓸 시간이 없었다. (물론 핑계다.)




그렇다. <일하는 30대 중반 여성>을 연재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꼬박 반년 다닌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다. 성과에 목숨 거는 팍팍한 회사 생활에 숨 막힐 때도 있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다닐 만한 회사였다. 고작 반년이지만 나름의 성과도 꽤 있었고 그로부터 얻은 성취감은 내 우울 치료에 커다란 자양분이 되었다.


하지만 서울이 싫어서, 서울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쉬이 잡히지 않았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 위치한 대기업 리스트를 찾아서 채용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졌다. 거의 반년의 긴 채용 과정 끝에 최종 합격 연락을 받았다.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 한 번도 대기업을 생각하지 않았고 소위 '네카라쿠배' IT기업 스타일이었다. 나한테 목적지는 대기업이 아니었다. 오로지 '탈 서울' 목표 하나뿐이었다.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훌쩍 떠나는 게 차라리 지금의 내 인생엔 더 도움 될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이었다.




입사까지 자유 시간은 고작 1주일. 인수인계가 늦어졌고 금요일 퇴근 시간까지 꽉 채워서 만근 했다. 백수 1주일 차. 그중 5일은 해외에 있었다. 여행 가서 몇 달 전부터 벼르고 별렀던 비싼 목걸이를 샀다. 사기 결혼  촌극 1년, 영혼이 살해당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중증 우울증에도 나는 단 한 번도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직을 했고, 계속 커리어를 발전시켜서 더 좋은 기회로 또 다른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나 자신이 몹시 기특해서 평소에 쉽게 살 수 없는 비싼 선물을 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난 1월부터 일을 했으니깐 한 달에 100만 원씩 모아서 500만 원 정도 하는 목걸이를 사야지. 평소 같았으면 생각도 못할 가격대의 금붙이를 목에 걸고선 믿기지 않아서 계속 한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해리포터 이마의 번개 모양 상처처럼, 살아남았다는 생존의 징표처럼. 나는 당당하고 기특한 생존자이니깐.




- 유효기간이 있는 백수 생활: 정말 행복하다.

이사고 나발이고 일단 지금은 마음껏 행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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