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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율 Sep 04. 2024

우리가 먹은 것

장편 연재소설 <이 계절을 너머> 3화

두 시간 만에 눈이 뜨였다. 고기 냄새와 그것을 씹는 소리가 플랫폼에 넘실거렸다. 다들 삼삼오오 둥글게 모여 앉았는데 무리 밖에 있는 윤은 그들의 등만 보였다. 우물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처럼 목이 아래로 꺾여 뒤통수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윤에게서 가장 가까운 남자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윤이 부스럭 소리를 내며 앉자 남자가 그를 돌아보았다. 방금 머리를 감고 온 듯 머리카락이 구불구불하게 이마에 붙어 있었다. 샴푸 냄새 대신 땀 냄새, 그리고 희미한 피비린내가 나는 머리였다. 씹던 고기를 삼키자 그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 자고 있길래 안 깨웠습니다. 밖에서 먹을 걸 좀 구해왔는데 한 입 드시죠.


남자는 핏기 묻은 투명한 비닐을 윤에게 건넸다. 손바닥 절반 만한 크기의 고기가 세 점 담겨있었다.


- 이게 뭡니까.

- 밖에서 가져온 겁니다. 내일부터는 같이 나갑시다. 사람이 많을수록 음식 구하기는 더 쉽습니다.


윤은 비닐을 열고 손을 넣어 한꺼번에 고기 세 점을 덥석 집어 든 후 입 안에 넣고 우적우적 씹어 넘기고 싶었다. 딱딱하거나 눅은 에너지바로만 연명하던 윤의 위장이 고기를 보고 흥분하며 울렁거렸다. 그러나 윤은 가지고 있는 모든 자제심을 발휘해 봉지를 남자에게 다시 건넸다. 이걸 받아먹으면 내일도 이들과 함께 걸어야 한다. 이 의심스러운 고기를 - 이게 무엇인지 아직 모르지만 - 구하러도 같이 나가야 한다. 윤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세차게 털면 식욕이 떨어져 나가기라도 할 듯 강박적으로 마음속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내저었다. 그래서인지 목소리가 조금 떨려서 나왔다.


- 전 괜찮습니다.


남자는 두 눈썹을 위로 양 입꼬리는 아래로 살짝 내리며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다.


- 먹어두는 게 좋을 텐데요.

- 속이 좀 안 좋아서요.


남자가 고기를 받아 아내에게 줬다. 그녀가 고기 한 점을 딸에게, 또 한 점을 남편에게, 마지막 한 점을 손으로 찢어 작은 조각을 아들에게 배분했다. 찢긴 큰 조각은 자신의 입에 넣었다. 그때 여자아이가 딸꾹질하듯 몸을 두 번 들썩이더니 웩, 하고 먹은 걸 토했다. 울음을 터뜨리다가 한 번 더 우웩, 속엣것을 게웠다. 덜 씹힌 고깃덩이가 위액과 섞여 나왔다. 시큼한 토 냄새에 남자아이는 코를 틀어막았다. 엄마가 딸을 데리고 계단 쪽으로 가서 등을 두드리고 입을 닦아 주었다. 남자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딸의 토사물을 치웠다.


- 도대체 매일 가져오는 이 고기, 정체가 뭐야. 다 썩어 문드러진 정육점이라도 턴 거야? 애가 왜 저렇게 토하는 거냐고.


아이들을 재우고 여자가 남자를 사람 없는 쪽으로 끌고 가 물었다.


- 여태 잘 먹어놓고 왜 또 난리야. 지금 상황에서도 고급 스테이크 아니면 못 먹겠다는 거야? 지금이 예전이랑 같아? 갖다 주는 것만으로 고맙다 절해도 모자랄 판에. 에이씨.

- 먹더라도 뭔지는 알고 먹어야 될 거 아냐. 왜 맨날 남자들끼리만 쑥덕대고 올라갔다 와서 제대로 말도 안 해주는 건데?

- 말해주면? 같이 올라갈 거야? 아무리 아침 시간에 나간다고 해도 바깥공기가 얼마나 지옥불 같은 줄 알기나 해? 목숨 걸고 가서 가져온 걸 나눠주는 건데 꼭 이렇게 따지듯 캐물어야겠어?

- 그러니까 그냥 말을 하라고. 나 미치게 하지 말고!


후텁한 공기는 여자의 짜증과 남자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윤은 몰래 다가가 그들이 다투는 소리를 엿들었다. 혼자 다니더라도 저들처럼 바깥에서 먹을 걸 구하려면 여자가 궁금해하는 걸 윤도 알아야 했다.


- 좋아. 똑똑히 말해줄 테니까 잘 들어. 네가 일주일째 처먹고 있는 그 고기, 길바닥에 죽어 나자빠진 사람들 살덩이 떼어다가 자동차 보닛 위에서 구워온 거야. 이게 네가 걷고 싸고 지금 이렇게 남편한테 대드는 에너지를 공급한 고기라고.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윤은 고기를 먹지도 않았는데 구역질이 나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여자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동자에 초점도 흐려졌다. 여자의 얼굴을 본 남자가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 내가 말 안 한 이유를 알겠지? 넌 그냥 묻지도 생각하지도 말고 애들이나 잘 챙기면서 따라와. 내가 하는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니까.

- 지금까지 내가 먹은 게…, 우리 유진이가 먹은 게 사람 고기였다고?

- 그래서 뭐? 인육은 못 먹겠으니 굶어 죽기라도 하려고? 그게 유진이한테도 참 좋은 일이겠다.

- 그럼 나중엔?

- 나중에 뭐?

- 나중에 바깥에서 죽은 사람을 찾을 수 없을 때는 나도 잡아먹고 우리 유진이도 잡아먹고 그러겠다?


여자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지자 남자도 손바닥을 치켜올리며 윽박질렀다.


- 뭐야? 이게 뚫린 입이라고 막 지껄이고 있어. 내가 나만 좋자고 이래? 너랑 유진이, 선우 먹이려고 목숨 걸고 나갔다 오는 남편한테 그게 할 말이야? 어우씨.

- 한 대 치겠다? 쳐. 쳐 봐. 쳐 죽이고 내 살도 떼어먹어. 구워 먹든 삶아 먹든 어디 나까지 한 번 처먹어 봐. 치라고. 왜 못 쳐?


습기 찬 살과 살이 거세게 맞닿는 소리가 났다. 바로 이어 묵직하게 쿵 소리도 났다. 윤은 이쯤에서 그만 들어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조용히 자리로 돌아와 선로 쪽을 보고 모로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남자가 걸어와 눕는 소리, 조금 후에 여자가 걸어와 눕는 소리, 곧 남자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플랫폼 바닥 곳곳에서 개구리울음처럼 거친 코골이 합창이 이어졌다. 지금 코를 고는 사람들은 다 아까 인육을 구해온 남자들일 것이라고 윤은 근거 없이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는 인육을 먹게 될까. 에너지바가 다 떨어지고 배가 고파 죽을 것만 같을 때가 오면, 나도 회칼을 들고 죽은 사람의 살덩이를 썰게 될까. 죽은 사람은 없고 죽어가는 사람만 있다면, 나는 그에게 칼을 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도 똑같이 나를 보고 회칼을 들고 다가온다면 어떻게 될까. 누가 조금이라도 덜 굶주려서 더 세게 칼을 휘두를 수 있는지에 따라 누구의 살덩이가 누구의 입으로 들어가는지 갈리게 되겠지. 내가 이겨서 칼로 그를 썰어 먹고 기운을 차린다면 나는 남은 고깃덩이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나눠줄 것이다. 고마워하라고 큰소리칠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찌검할 것이다. 그리고는 힘차게 코를 골면서 단잠에 빠질 것이다.


윤은 담담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이상하지 않았다. 이런 세상에서는 이런 짓이 담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살 수 있고, 살아야만 이게 정말 담담해도 될 일이었는지 아닌지를 돌아볼 수 있다. 생존은 후회의 필수 조건이다. 후회 없이 죽느니 살아서 후회하자. 그렇지. 이게 맞지. 살아서 후회하느니 부끄럽지 않게 죽어버리자, 이런 말은 미친 더위에 덩달아 미쳐 버린 지금 세상을 살아본 적 없는 한가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생각이 잘 멈춰지지 않았다. 그만 생각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윤은 일부러 외면하는 중이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정말로 지옥에서 끝내 살아남을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말로 의연하게 타인을 품어내는 사람도, 의롭게 일찍 죽을지언정,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전자도 후자도 아니지만 세태를 따라 흘러가며 역시나 이런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사람만이 생각 속에 빠져 허우적댄다. 살아도 괴롭고 죽어도 추한 가엾은 종족, 윤은 여기 속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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