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겜돌이였다. 초등학교 때 몇 달 동안 학교 대신 오락실로 등교를 했고, 계속 학교에 오지 않자 담임선생님께서는 집으로 전화를 하셨다. 엄마는 아들을 찾아 온 동네 오락실을 헤매고 다니셨다.
그 시절 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가지고 하루 종일 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를 즐겼다고 한다. 오락실에서 단돈 백 원으로 너무 오래 있으니 오락실 사장님이 백 원을 내어주며 다른 데 가서 놀라고 내쫓기도 했다는 둥, ‘스트리트 파이터’를 잘하는 애가 이 동네 오락실에 있다는 게 소문이 나면서 서로 대결을 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둥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썰을 자랑스레 내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게임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하루는 아버지가 그래 그렇게 좋아하는 오락 어디 한 번 오락 실컷 해봐라, 하고선 동전을 잔뜩 챙겨서 남편의 손을 잡고 함께 오락실로 데려가 원 없이 게임을 하게 해 주셨고, 그 순간 지금껏 인생의 전부로 느껴지던 게임이 갑자기 재미없고 시시해지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누군가 어서 빨리 하라고 하면 원래 하려고 마음먹었던 일도 하기 싫어지는 경험을 살면서 우리는 한 번쯤은 겪어봤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호기심’. 그 호기심을 ‘금기’하면 더 강하게 원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가진 본능일지도 모른다.
‘게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어른의 시각, ‘게임 좀 그만하라’고 이야기하는 어른의 목소리는 아이들이 게임에 몰래, 그리고 더 깊게 빠지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일찍 잠이 드는 척하다가 보호자가 잠이 들면 다시 일어나서 게임을 하는 아이, 보호자가 보는 앞에서는 휴대폰을 안 보는 척하다가 화장실에 가지고 들어가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아이, 집 밖에서 휴대폰을 손에 놓지 않는 아이, 친구들과 계정을 주고받거나 모르는 사람과 게임 아이템을 거래하는 아이를 정말 많이 만났다.
그런 아이들이 정말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과연 보호자에게 도와달라고 선뜻 손을 내밀 수 있을까?
패밀리링크와 같은 스마트폰 제어 어플이 있지만, 아이들은 이미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하지 말라고 하면 할수록 몰래 할 수 있는 방법을 정말 놀랍고도 창의적인 방식으로 다양하게 찾아낸다. 게다가 스마트폰을 통제하는 건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지금껏 내가 경험한 것들을 모두 종합해 내릴 수 있는 결론으로 게임과몰입 예방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하는 것’이다.
늘 말이 없고, 학교에 있었던 일을 물어도 관심도 대답도 없던 둘째는 오늘 급식으로 나온 반찬이 뭐였냐고 물어도 모른다고 대답하던 아이였고, 게임 외에는 어떤 일에도 흥미가 없어 보이던 아이였다. 엄마나 아빠가 묻는 건 다 대답하기 싫어하던 아이가 이렇게나 말이 많고 심지어 빠르고 신나 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였던가 하고 깜짝 놀랐던 순간은 아이가 좋아하는 ‘브롤스타즈’를 아이에게 처음 배운 날이었다.
아이에게 엄마는 늘 무언가를 시키는, 가르치는, 지시하는 사람이었다. 게임 앞에서 어설프고 서툴게 뚝딱거리는 엄마의 모습에 아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이땐 이렇게 해야지’, ‘엄마 내 뒤에 숨어있어’. ‘내가 움직이라고 할 때 움직여.’라고 명령했고, 그 목소리에는 의기양양함과 자신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또 한 가지 우리 둘째는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글로 표현하기를 굉장히 어려워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기를 쓰거나 독후감을 쓰는 시간을 굉장히 불편해했고, 아이는 글 쓰는 시간이 나는 그걸 지켜보는 시간이 힘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네가 좋아하는 게임에 대해서 한 번 써볼래?라고 했더니 한 자리에서 30분을 엎드려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에 대해서 줄줄이 스케치북 한 페이지를 빼곡하게 채워왔다.
아이와 게임을 함께 하면 일단 아이와 대화할 시간이 많아진다. 초등학교 시기에 아이와 게임으로 쌓은 정서적 유대감은 아이가 중학교에 올라가 사춘기에 접어들 즈음에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아직까지 중학교 1학년, 2학년 남자아이 둘과 큰 갈등 없이 지낼 수 있는 결정적 이유가 나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와 게임을 함께 하면 보호자가 자연스럽게 게임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하루에 30분, 1시간이라는 제한적인 시간이 아니라 플레이 특성에 따라 유연하게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아이 스스로 시간을 주도하고 관리할 수 있게 보호자가 도와줄 수 있다.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하면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게임’을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게 되고 대화가 많아진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심지어 그 좋아하는 것이 보호자보다 내가 훨씬 잘하는 것) 함께 하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그 모든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
우리가 어떤 일에 빠져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때 우리는 ‘몰입’했다,라고 한다. ‘몰입’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고, ‘몰입’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온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에 몰입하는 순간은 우리를 즐겁게 해 주고, 우리에게 좋은 에너지를 준다.
‘몰입’이 ‘과몰입’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먼저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게임’을 즐기는 내 아이와 함께 즐거운 ‘몰입’에 빠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