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과 애기똥풀
두 번째 남한산성 둘레길을 걸었다.
지난주에 왔었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날이 너무 차서
그냥 돌아갔고 날 좋은 오늘
간단한 샐러드와 김밥을 싸 가지고 나선 길
어느새 만발한 봄
모든 것이 싱글싱글하다.
숲이 익숙한 아이에게 숲에서 아는 꽃을 만나면 소개해달라고 했다.
ㅡ엄마, 애기똥풀 알아? 나 그거 알아!
ㅡ애기똥풀?! 엄마는 모르는데, 시윤이가 이따가 알려줘.
ㅡ알았어. 애기똥풀은 그림을 그려야 돼~~~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무슨 소리 인가 싶었는데
숲에서 정말 애기똥풀을 만났고,
꽃줄기를 꺾어다가 손바닥에 그림을 그려준다.
꽃줄기 사이로 흘러내린 노란 꽃물이
대롱대롱 달려있는 모양이 마치 정말 물감을 머금은 붓 같았다.
손바닥에 노랗게 새겨진 꽃물은
정말 애기 똥 색이랑 꼭 같았다!!! 신기하기도 해라.
서른일곱에 아들에게 배운 자연
남한산성 둘레길을 따라 제법 걸었다.
자기가 길앞잡이라며 저만치 앞서 나가 뒤돌아보고
얼마만큼 거리가 좁혀지면 또 저만치 앞서나가고
춤추듯이 움직이는 발걸음이 명랑하다.
오르막길도 만만치 않은데 금세 지치는 건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다.
얼마 후면 어린이날이고, 진작부터 고대하던 선물 때문에 아이들이 부쩍 들떴다.
어린이날 갖고 싶은 선물을 사주겠다고 하니 엄청 신나 하면서
엄마 생일 땐 자기가 선물을 해주겠다는 큰 아이, 그 순간을 놓칠 내가 아니지.
ㅡ시윤아, 생일까지 기다릴 것도 없어. 어린이날 지나고 세 밤만 자면 어버이날이야. 그때 준비해 줘~
ㅡ음. 알았어. 엄마, 근데 엄마는 무슨 선물이 받고 싶어?
ㅡ저번에 말했잖아, 작고 반짝이는 거
ㅡ아, 반지!!
ㅡ그래!! 안 잊어버렸네?
ㅡ근데, 나는 돈이 없는데
ㅡ돈으로 사지 않아도 되는 반지도 있어. 풀꽃 반지나 종이 반지나 어떤 거든 시윤이가 만들어주는 거면 좋아.
며칠 전의 이 짧은 대화를 기억하고 있던 녀석
정말로 멋진 풀꽃 반지를 내게 선물했다.
손가락보다 반지가 작아 금세 풀려버리자 또 다른 반지를 만들어와 끼어주면서
ㅡ그러니까 엄마 움직이지 말고 조심해야지, 끊어지지 않게
제법 어른스럽게 타이르기도 한다.
신이 나서 온몸을 정신없이 흔드는 아이들
쉴 새 없이 조잘조잘 떠들며 흥얼거리는 아이들
냉이 꽃을 꺾어 서로 경쟁하며 엄마에게 갖다 바치는 아이들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진 꽃잎을 주워와
주머니에 꼭 넣어 가지고 가라며 손바닥에 가만히 놓아주는 아이들
이 봄날, 이렇게 로맨틱하고 달달한 데이트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