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잃는 대신, 나를 잃지 않기로 했다
주문이 많은 식당에 도착했을 때,
실제로는 음식이 아직 조리중인 상황에도
'조리완료' 알림이 이미 떠 있는 경우가 있다.
가게에서 미리 버튼을 눌러둔 탓이다.
라이더 입장에선 난감하다.
시간은 흐를수록,
고객은 조용히 분노를 축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땐 마음이 급해진다.
대체 왜 완료라고 눌러놓은 건지,
도착해서 시간을 버리는 기분은 생각보다 뾰족하다.
특히 시간당 배달 건수에 미션이 걸려 있는 날이면,
그 몇 분의 정체가 더 크게 다가온다.
답답함이 쌓이고,
나도 모르게 표정에 짜증이 묻어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상황을 마주한 다른 라이더들 대부분은 조용했다.
누가 재촉하는 소리도,
가게를 향한 불평도 거의 들어보지 않았다.
오히려 벽에 기대 잠깐 숨을 고르거나,
아무 말 없이 잠깐 자리를 비켜주는 모습들이 익숙했다.
그때부터 문득문득 생각하게 됐다.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할까.
왜 이 기다림이, 나에게만 이렇게 날카롭게 다가올까.
며칠 전, 옥수동의 프랜차이즈 치킨집에서
비슷한 상황이 또 한 번 찾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조리완료 알림은 떠 있었고,
사장님은 “5분만요”를 반복하셨다.
두 번, 세 번 물어봐도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고,
사장님은 계속 분주했다.
홀에서는 단골로 보이는 손님들이
술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고,
사장님은 그쪽 서빙으로 정신이 없어 보였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결국 배민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솔직히 이럴 땐 뭔가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작은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오래 걸릴 경우 배차 취소하시면 됩니다”
라는 안내 한 줄뿐이었다.
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엔 그저 뭔가라도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기다림은 더 길어졌다.
10분 정도를 더 붙들려 있다가,
마침내 사장님께 음식을 받아들었고
오래 기다리게해 미안하다는 말에
나는 짧게, 형식적으로,
“네” 라고만 대답한 채 가게를 나섰다.
무언가 찝찝했다.
속으로는 ‘이게 뭔가’ 싶은 마음이 계속 맴돌았다.
그런데 문을 닫고 몇 걸음 옮긴 순간,
갑자기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나는 뒤돌아 다시 가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사장님을 향해 짧게 말했다.
“사장님, 수고 많으셨어요. 잘 배달해드릴게요.”
그 말에 사장님도 고개를 들며
“고맙습니다” 하시며 웃으셨다.
다시 가게를 등지고 차로 향하던 순간
신기하게도, 그 짧은 한마디로 기분이 바뀌었다.
누그러질 줄 몰랐던 짜증이 슬며시 사라졌고,
생각보다 오래 여운이 남았다.
그때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왜 많은 라이더들이 조용히 기다리는지,
왜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뒤로 물러서는지를.
그건 포기가 아니라, 경험 끝에 남은 선택이라는 걸.
조급함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그걸 안다는 건 생각보다 큰일이었다.
그래, 이런 게 무슨 대수라고,
하루만 지나도 생각조차 나지 않을 일인데,
저 사장님이 일부러 날 골탕 먹이려고 그런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그 순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내가 정한 것 같아서였을까.
기분이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