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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Aug 09. 2022

연산문제집을 푸는 여덟살에 대한 엄마의 매너

  휴가철의 한 가운데, 한가한 팔월의 첫 주이다. 학교는 여름방학이 한창인데다 학원들도 일주일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학원 라이딩을 다니는 차와 학생들의 분주한 걸음으로 가득하던 학교 앞에도 쉼이 찾아온 듯했다. 이 한가함의 풍경은 다소 불연속적으로 툭 하고 놓였다. 그 단호한 불연속이 꽤나 어색했다. 연극에서 막과 막 사이를 단호하게 구분짓는 듯한 뭉툭한 커튼이 툭 하고 내려앉아 우리에게 분명히 말했다. 

  ‘아직 열기가 남은 내 마음이 휘발되지 않도록 단단히 쥐어둬. 그러다 잘 가라앉은 결정들을 바라보고 단단히 모아놔. 그리고 다음 막에 쏟을 에너지를 모아둬. 무엇보다 일단 지금은 쉬어.’

나는 곧추세웠던 허리도 조금은 누그러트리고 앉아서, 또는 누워서 시간을 내 손 위에 올려놓아보기로 한다. 느슨하고 나른하게. 뜨거운 여름에도 우리의 지구는 참 다정하다.      


  여름휴가를 팔월 중순으로 넘겨둔 나와 여덟살이 사는 우리 집의 여름에 쉬는 시간이 가득 채워졌다. 아침이란 분주하게 고양이 세수를 하고 급하게 로션을 바르고, 서둘러 신발을 신고 나가느라 툭 닫히는 현관문에 눈길과 손길 한번 내어줄 여유가 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소파에 앉아 있다. 그래, 나는 어느 정도 반쯤 누워있고 아이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종이 접기에 한창이다. 나는 소파에 반쯤 누워 창밖의 무성한 초록을 보며 여름 태양의 에너지에 감탄하고 동시에 오늘은 얼마나 더울지 예상한다.

  “주윤, 엄마 커피 부탁해. 오늘도 마일드!”

며칠 전, 커피머신 사용법에 흥미를 보인 여덟 살은 “네!”하고 종이접기를 하다 말고 커피머신 앞으로 갔다. 여름 더위의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지 않은 듯 명랑한 여덟 살의 걸음이 담긴 커피는 달다.

  “고마워!”     



  우리는 눈길 가는 대로 생각을 하고, 문득 하고 싶은 것이 보이면 시작한다. 이 여름, 나와 여덟 살의 방학은 여름의 사치로 가득하다.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아침 시간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황홀하고 우아한 사치. 게다가 게으르고, 여유롭고, 그리고 덥고 습하게.        


        

  나는 커피를 가져다준 여덟 살을 꼬옥 안고 볼을 비비며 말했다.

  “주윤아, 우리 방학하니까 좋다. 이렇게 학교도 안 가고, 학원도 안 가고 둘이 매일 노는 거 어때? 엄마는 좋은데.”

  “네에? 엄마, 저 멍청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저는 지금 배울 때잖아요.”     


     

  아...! 내 사치의 황홀함은 이렇게 금이 갔다. 아들의 거리두기. 놀아도 엄마랑은 안 놀겠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엄마랑 온종일 노느니 차라리 공부를 하겠다는 말 아닌가. 순간 훅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K-엄마다. 역시 언제나 기회는 의도치 않은 순간에 찾아오기 마련이고, 기회는 잡는 자의 몫. K-엄마는 야무지게 그 기회를 잡기로 한다. 



  그래, 그렇다면 우리 할 일을 시작해볼까.          

  “주윤! 지금 8시 20분이잖아. 9시까지 종이접기 하고 우리 할 일을 해볼까?”

  “할 일?”

  “응! 바로바로 바로~~~~~!!! 연산이지!”

  “오! 노!”

 “주윤이가 지금 공부할 때라고 했잖아. 놀기도 하고 할 일도 하고! 그래야 하지?”          



  시계는 나에겐 정속도로, 여덟 살에게는 마치 1초로 느껴지는 속도로 40분을 움직였고 9시가 되었다. 나는 친절히 연필과 지우개, 그리고 문제집을 가져다주었다. 선풍기를 주윤이의 다리에 맞춰주는 호의도 베풀었다. 하지만 책상에 앉은 여덟 살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색색의 색종이를 쥔 손이 연필을 야무지게 쥐기까지의 마음의 거리는 너무 멀다. 연산 앞에서 준비되지 않은 여덟 살의 마음이 짐작이 된다. 



  나는 내가 스크리닝 해야 하는 설문지를 가져다 주윤이의 옆에 앉았다.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의 불균형은 파국의 급행열차가 아니던가. 내가 빨래를 하면 남편이 청소기를 미는 것은 상식이고 양심이고 삶의 도리이며 염치 있는 행동이면서 기본이다. 따라서 여덟 살이 연산을 하면 나도 마땅히 할 일을 해야 여덟 살의 울퉁불퉁해진 마음을 달랠 수 있다.           



  “주윤! 한 번에 하나씩만 하는 거야. 지금은 연산에 눈길, 손길, 그리고 생각을 다 담는 거야. 집중해보자!”

  나는 여덟 살의 눈을 정확히 바라보며 목소리에 무게를 담아 조언을 가장한 잔소리 한 문장을 전했다. 그리고 이젠 신경 쓰지 않고 나의 할 일을 하겠다는 태도로 내 시선을 설문지에 가져왔다. 그렇게 나의 퍼포먼스는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주윤! 집중해야지! 주윤이의 할 일은 공부잖아. 할 일은 진심으로 하는 거야!”

  재차 주의를 주고 나는 나의 일을 계속했다. 정작 나는 반쯤 진심으로 반쯤은 퍼포먼스로. 이윽고 여덟 살은 처음보다 자세를 고쳐 앉고, 연필을 잡는 손에 힘을 실어가며 한 문제씩을 풀어갔다. 그리고 정작 나는, 갑자기 내지 않은 범칙금이 생각났고, 재산세가 떠올랐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지서를 보고는 납부 기한이 지났음을 확인하고 담당 관청에 전화를 걸어 계좌를 안내받고 세금을 납부했다. 그렇게 내 손에는 자연스럽게 연필이 아닌 핸드폰이 쥐어졌다.           



  그 순간, 내게는 핸드폰으로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이 떠올랐다. 그 일들은 갑자기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나는 잘 잊어버리니까 기억났을 때 하는 게 맞다. 나는 소파에 앉아 이번 주말에 아빠 생신 약속을 잡는 일을 한창 하고 있는데 아는 언니가 내일 우리 동네에 아이랑 같이 와야 하는데 아는 식당이 없다고 추천을 해달라는 메시지가 왔다. 나는 우리 동네에 아이랑 같이 갈만한 식당을 떠올려 알려주며 간단한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좀 오래 내 손가락은 타자와 이모티콘의 바다를 서핑했다.     



  “휴! 다 했어요!”

  어느새 주윤이는 오늘 풀어야 하는 뺄셈 연산 문제집 5장을 다 풀었다. 그리곤 다시 후련하고 가볍게 색색의 색종이를 손에 쥐었다. 정작 나는 설문지 몇 부를 보았을까. 갑자기 나의 진정성 없던 퍼포먼스가 떠올랐다. 나는 주윤이에게 진심으로 할 일을 하라고 했지만, 정작 나는 딴짓을 했다. 주윤이는 할 일을 해냈고 나는 그렇지 못한 것을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나는 책상으로 다시 가서 문제집 뒤에서 답안지를 꺼내어 오늘 여덟 살이 풀어낸 페이지의 답안을 열었다. 여덟 살의 손길과 생각이 연필로 꾹꾹 쓰인 숫자를 보았다. 붉은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칠 때마다 내 마음도 부끄러워 점점 동그랗게 붉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 붉은색이 직선? 어? 하나 더? 이거 받아 내림도 없는 뺄셈이라 완전 쉬운 건데 이게 무슨 일이야. 맙소사. 또 이건 뭐야. 왜 갑자기 이 문제만 안 풀었지? 빨간 곧은 직선의 등장에 나의 부끄러움은 황급히 휘발되었다. 어려운 문제가 아닌 반복된 연산 문제에서 오답은 실수가 분명하다. 그리고 주윤이는 전부터 문제를 풀 때 가끔 한 문제씩 빼놓고 푸는 모습을 보여왔다.

  ‘문제네 문제야. 집중을 했어야지. 이 쉬운 문제를. 그리고 문제 빼놓고 푸는 습관은 또 어떻게 고치면 좋아.’           


  나는 틀린 페이지를 접어두며 주윤이의 학습 성향에 대한 걱정을 수집하는 나를 발견했다. 사람들은 내가 지각하면 길이 막혀서이고, 타인이 지각하면 게으른 사람이라 생각한다. 즉 자신이 실수를 했을 때는 상황 탓을 하지만 타인의 실수에는 타인의 성향을 탓한다. 나는 빨간색의 직선 앞에서 내가 집중하지 않았던 행동은 잊고, 주윤이가 5장 중에 4문제 틀린 것, 그리고 1문제를 빼놓고 푼 것을 문제 삼아 주윤이의 성향을 탓하고 있었다.           



  내 논문을 지도해주셨던 심사위원 중 한 분의 교수님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다른 사람 논문을 여러 번 심사하다보면 보는 눈이 생기기는 해요. 이건 이렇게 써야 하고 저렇게 써야 하고. 그런 길이 보여요. 그래서 조언이랄까 지적을 할게 눈에 잘 보여요. 그런데, 정작 자기 논문을 잘 쓰기는 어려워요. 내 문장 하나 쓰기가 더 어려운 게 맞아요.”       


   

  다른 사람이 이미 해놓은 무엇인가에 나의 의견을 남기는 것은 자기 검증과 타당성이 필요함에 어려운 일이 맞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그 일의 첫 시작을 하는 일이다. 음식 맛을 보고 짜다, 싱겁다, 달다 하는 것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요리할 음식을 결정해서 구상하고 재료를 손질하는 일, 여름날 불 앞에 서서 조리하는 일, 그릇에 담아내는 일보다는 쉽다. 물론 제대로 된 평가는 성장을 돕는다. 하지만 제대로 된 평가라도 예의를 담아야 하는 건 맞다. 상대는 시작과 과정과 끝맺음을 해낸 사람이기에.  


    

  나의 여덟 살도 오늘 뺄셈 연산 5장을 해낸 어린이다. 여름 아침 날의 여유로운 호사를 잠시 접어두고, 손에서 종이접기도 놓아두고 연필을 잡았다. 여덟 살은 많이 노력했고 견뎠다. 하기 싫은 마음도 후-하고 불어서 날려 보내야 했고, 손에 딱딱한 연필을 쥐어야 했다. 눈으로는 흰 종이에 흑빛 숫자의 단조로움을 이겨내고 의미를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머리의 지시를 손으로 전달해서 종이에 꾹꾹 단정한 숫자를 적어냈다. 그것만으로도 여덟 살의 아침은 보람찬 것이 맞다.          



  나는 쉽게 답안을 보고, 동그라미와 직선을 그렸다. 나는 먼저 여덟 살의 과정에 예의를 갖추는 게 맞다. 그 후에야 나는 오답을 견디는 시간을 격려하고 응원해줄 자격이 생긴다. 그리곤 여덟 살이 다시 하고 싶은 일의 바다에 풍덩 빠지는 호사스러운 여름날의 오후를 위해 나는 잠시 비켜주는 것이 엄마의 매너이다.

아! 간식은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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