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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Apr 20. 2023

정해진 행복을 명랑하게 쥐어주는 일

  매일 오후 2시 40분이 되면 휴대폰이 징~~~ 하고 떨린다. 아침부터 오후 내내 차마 소리 내지 못하던 휴대폰은 그제야 나 여기 있다고 힘차게 손을 흔드는 중이다. 휴대폰 화면엔 ‘내 사랑 주윤’ 다섯 글자가 해사하게 떠올라있다. 와락 휴대폰을 쥘 시간이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올 주윤이의 목소리에 행복샤워를 할 시간이다.



  “주윤~어디예요!”

  “엄마, 학교 끝나고 이제 집에 도착했어요.”

  “어머나! 어쩜 이렇게 집에 잘 찾아가지? 이제 2학년 형님이 맞네^^”

  “이히히! 맞아요~”

  “오늘 학교는 어땠나요? “

  “좋았어요!"

  "오늘은 월요일이어서 더 좋겠네요? 피아노랑 수영 가면 되잖아요."

  "맞아요."

  "엄마가 냉장고에 붙여둔 쪽지 봤어요?"

  "네! 엄마는 어쩜 이런 걸 써놨어요."

  "이히히. 주윤이 보고 기분 좋으라고 그랬지요. 좋아요?"

  "네!"

  "우유, 바나나, 달걀흰자, 쿠키 간식 맛있게 먹고 쉬었다가 피아노 가요!"

  "네!"

  "내 사랑! 우리 곧 만나요! 사랑해!"

  "네!!"



  정해진 행복이 늘 그 자리, 그 시간에 있어준다는 것은 내 하루에 확실한 안도감을 내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오후 2시 40분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주윤이의 목소리는 무엇보다 명랑하게 내 오후 여기저기에 뛰어다닌다. 회색의 사무실이 어느새 너른 파스텔빛 연두색 초원이 된다. 어린 주윤이의 노랑 목소리가 귀에 닿고 마음에 닿는다. 마스크 속 내 볼은 나도 모르게 방긋 올라간다. 나는 사랑의 분홍 목소리를 주윤이에게 건넨다. 빈틈없던 네모난 휴대전화는 그 순간 가장 말랑말랑하고 눈부신, 고마운 의미가 된다.



  처음 들어본 전화기 속 주윤이 목소리는 깜짝 놀랄 만큼 어렸다. 주윤이의 목소리는 공기 중에 사뿐사뿐 날아다니듯 가볍고 맑았다. 아마도 오색의 실로폰에서 긴 직사각형을 지나 꽤나 작은 직사각형의 네모를 살짝 쳤을 때의 그 음이었다.



  새삼 내 주윤이가 어린아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나는 그걸 잊었던 모양이다. 내 눈앞의 아홉 살 주윤이는 내가 본모습 중 가장 큰 모습이어서 나는 주윤이에게 이'젠 형님이 되었네!',  '이제 다 컸네!'와 같은 말을 하곤 했었다. 아마도 다 컸기를 바라는 나의 바람이었을 수 있다. 어쩌면 아직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복직으로 올해 주윤이는 하교 후 집에 혼자 와서 한두 시간 정도는 혼자 간식을 먹고,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날들이 생겼다. 나는 이에 대한 안쓰러움과 걱정, 그리고 불안을 어느 정도 덜어내어 주윤이의 어깨에 나눠주고 있었다. '이젠 네가 다 컸으니, 2학년이니! 혼자 해야 하는 거야.'하고.



  엄마의 말에 으레 껏 그래야 하는 줄 아는 맑은 주윤이는 사부작사부작 작은 걸음을 걸어가며 제 몫을 해내고 있었다. 주윤이는 다행히 혼자 있는 시간에 제 손가락 크기의 도미노를 하거나 큐브를 하는 시간을 즐겼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혼자 한 시간쯤은 괜찮다고 말했다. 고마운 녀석.



  각자 제 역할을 해내는 게 중요한 성장이라지만, 그게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면 엄마 마음의 한편은 때때로 아리다. 아침에 고운 색의 포스트잇을 고르고, 최대한 어울리는 펜을 집어든다.

 "엄마의 사랑, 주윤! 간식과 엄마의 마음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오후 시간 보내. 사랑해, 주윤"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고운 글씨로 마음을 담는다. 5분이 1초 같은 아침시간, 그 분주함 속에 중요한 정적이 흐르는 시간이다. 오롯한 내 시간, 내 마음을 담는 시간이다. 그렇게 행복한 의식을 치르고 포스트잇을 보냉백과 냉장고에 붙여 놓고 문을 나선다. 뿌듯하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고맙고 감사하다.



  오늘도 오후 2시 40분이 되면, 나에겐 정해진 행복이 찾아온다. 주윤이에게도 빨간 간식박스를 열었을 때, 그 확실한 행복이 열렸으면 좋겠다. 우리 서로 그렇게 서로에게 확실한 행복을 쥐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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