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마흔살 어른이
“내년이면 초등학교 가는데 이제 김치 먹는 연습도 해야지~”
고춧가루가 조금만 들어가도 “매워~ 매워~”하며 물을 찾는 7살 손녀딸에게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그럴 때면 일본인 아내는 내게 묻곤 한다.
"왜 매운 김치를 굳이 연습까지 하며 먹어야 해?"
아내는 한국 생활 초반에 한국 식당에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한다. 고급 식당이던 저렴한 길거리 식당이던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김치’가 먼저 세팅된다. 배추김치는 기본이고 총각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등 종류도 다양하다. 빨간 김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백김치와 물김치도 있다. 게다가 일본과 다르게 밑반찬으로 나온 김치는 무한 리필이 가능하다.
“사장님~ 제가 일본인인데, 제가 먹어도 이 김치 맛있어요!”
식당에서 아내가 김치 맛을 칭찬할 때면, 사장님은 어깨를 으쓱하며 비장한 눈빛으로 고춧가루와 배추 등 김치 재료의 원산지는 물론 자신만의 김치 담그기 비법까지 아내에게 알려준다.
“이렇게 맛 내는 거 쉬운 거 아니야~ 아휴~ 이거 힘들어~”란 말을 하며…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일본을 가지 못하고 있지만, 아내가 일본에 가서 친구들과 만나 한국 생활 이야기를 할 때면 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한국에는 특별한 가전제품이 있어! 김치 냉장고라고 하는데, 냉장고랑 조금 달라”
“뭐? 냉장고가 있는데 김치를 보관하는 냉장고라고? 부잣집만 있는 거 아냐?”
“아니야~ 우린 없는데, 대부분 결혼할 때 사더라. 그리고 안에 정말 김치가 가득이야!”
사실 나는 김치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김치 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란 노래를 이해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일본인과 결혼한 후 나는 김치를 사랑하게 됐다. 엄밀히 말하면 김치는 한국의 수많은 밑반찬 중 하나다. (이렇게 말하면 김치가 서운해하겠지?) 결혼 전, 엄마가 밥상을 차려줄 때면 한 종류 이상의 김치가 항상 상에 놓여있었다. 굳이 지금 먹지 않아도 된다. 다음 끼니에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반찬 중 하나니까.
일본인과 결혼해 분가를 했고, 우리 집 식탁은 자연스럽게 일본풍에 가까워졌다. 고추장과 고춧가루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간장을 주로 사용한다. 또, 마늘보다 미림으로 잡내를 없앤다. 바쁜 현대인의 가정답게 냉장고에는 다양한 종류의 밑반찬이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김치는 그 많은 밑반찬 중 하나가 됐다..
“점심에 김치 먹었는데 저녁에 또 먹어? 지겹지 않아?”
“그러네, 다른 반찬은 자주 먹으면 지겨운 데, 김치는 지겹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네?”
일본인 아내는 밥상을 차릴 때 김치를 꺼내는 습관이 없다 보니 김치도 돌아가며 내어지는 반찬 중 하나가 됐다. ‘있을 때 잘해’란 말이 이럴 때 하는 말인가? 김치가 안 보이니 김치가 더 생각나고 더 먹고 싶어 진다. 그래서 이제는 오늘은 뭘 먹을까를 고민하며 그날 먹고 싶은 김치를 냉장고에서 직접 꺼내 먹는다.
곧 김장철이다. 결혼하고 10년째 이맘때면 아내는 시어머니와 함께 김장을 한다. 아내는 김장날을 기다리기도 한다.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이는 김치에 대한 뿌듯함이 아닌, 김장하고 먹는 돼지고기 수육에 막걸리 한잔에 대한 기대 때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