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파라다이스를 찾는 방법, 카페 호랑이

by 최의연

서울은 내 고향이 아니다. 스무 살에 처음 상경한 뒤에도 서울은 나에게 한동안 여행지같은 곳이었다. 어느덧 12년이 넘어가는 서울살이가 아직도 여행처럼 느껴지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다. 하지만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얼른 답을 내리기 어렵다. 여행지였던 공간이 삶의 공간으로 변하는 것. 그건 새로운 세계가 파라다이스가 아니었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가장 서울다운 곳은 어디일까 생각해보면 서울을 가장 오래 경험한 사람들의 시간이 느껴지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에게는 종로 그리고 을지로다. 잔뼈 굵은 노인들의 느릿한 걸음걸이를 보고 있노라면 저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서울을 언제부터,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궁금해질 지경이다. 어느 봄날에 나는 충무로에서 만난 친구와 즉흥적으로 짧은 서울 탐방에 나선 적이 있는데, 무작정 을지로 세운상가까지 걸어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가 거기같네 병에 걸려버린 우리는 당초 목적지로 삼았던 세운상가에서 빗나가 대림상가에 불시착하고 말았는데, 때마침 기지를 발휘한 친구가 당황하지 않고 이 상가에 유명한 카페가 있다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용접 소리와 쇳가루 냄새가 퍼지는 동굴같은 통로를 지나 계단을 오르자 현대식으로 정돈된 상가가 밝은 햇살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늘어선 수많은 가게들 가운데서 유독 붐비던 작은 공간, 우리의 발길이 멎은 그곳은 카페 호랑이였다.


65a0789a080d4.jpeg?imgSeq=11674 - 어느 4월의 을지로 대림상가


라떼가 맛있는 집이라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어쩐지 마음의 고향 삼기에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힘겹게 인파를 뚫고 기다림 끝에 한모금 입에 머금은 라떼의 맛은 아, 여기 내 고향 삼고 싶다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고소했으니. 낯설었던 을지로의 풍경이 마음에 착 달라붙는 순간이었다.


지난 12년 동안 나는 서울 곳곳에서 살아보았다. 궁금했던 동네를 하나하나 정복하다시피 2년마다 이사를 다녔는데, 그건 내가 장소에도 소울메이트가 있을 것이라 믿었던 여행의 신조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정착할 만한 서울의 동네를 모색하는 작업의 일환이었다고나 할까. 언젠가는 호기롭게 내 주민등록증 뒷면에 서울의 모든 구를 적어 넣겠노라 선언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서울의 북서쪽에 도통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정이 들어버렸다. 목표의 절반 정도는 달성한 셈이다. 이렇듯 여러 동네를 전전해온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서울살이의 순간이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한 장면이 있다. 바야흐로 2016년, 대학을 졸업하고 막 사회초년생이 되었을 무렵이다. 월세 한푼이라도 아껴보겠다고 고향 친구와 함께 살 집을 구했는데, 해방촌의 투룸이었다. 20대 중반으로 열심히 넘어가고 있던 우리들. 뼛속을 파고드는 불안감 따위로 인해 잠 못이루던 밤마다 토해내듯 산책을 나가면 남산 둘레길에서 서울의 야경을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야경을 보면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저 수많은 불빛의 일원이 된 내가 대견하다고.


여긴 참 지루해.

- 영화 <천국보다 낯선> 중


그러나 불과 몇년 뒤, 서울의 야경은 참 지루해지고 마는데. 감성은 메마르고, 볼멘 불만만 진부한 감상처럼 떠올랐다. 저 많은 불빛 중에 내 한 몸 누일 곳 왜 없는가! 나는 더이상 수많은 불빛들의 일원이 아니었고, 저 불빛은 나를 내쫓는 무리들의 차가운 눈초리였으며, 나는 추방되었거나 식어버린 별일 뿐이었다. 급기야는 내가 서울 출신이 아니라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웠고, 서울이 아니더라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을 위안이자 훈장처럼 삼았다. 서울은 영영 내 집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영화 <천국보다 낯선>에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헛된 환상에 각자의 방식으로 대처하는 세 청년이 등장한다. 헝가리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에바는 사촌 윌리와 그의 친구 에디가 사는 뉴욕에 10일을 머무른 뒤 고모가 있는 클리블랜드로 떠난다. 먼저 미국에 정착해 자기 고향 헝가리의 정체성까지 숨긴 채 살아가던 윌리는 뉴욕을 자신의 보금자리라 생각하는 것 같지만 헝가리에서 온 사촌에게 금세 정이 들어 클리블랜드까지 그녀를 보러 가는 모습을 보면 결국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워진다. 반면 별다른 기대 없이 미국에 온 듯한 에바는 특유의 쿨함으로 일년만에 미국식 불친절에 완벽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녀의 퇴근길을 마중나온 윌리와 에디에게 카운터 문을 거칠게 밀치며 걸어오는 모습이 압권이다. 세 사람 중 그녀만큼 미국적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에바는 영화 내내 지루하다. 도박판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윌리와 에디와는 달리 에바에게는 파라다이스에 대한 기대 따위 없었으니까. 플로리다로 휴가를 떠난다는 생각에 신이 난 것도 잠시, 윌리와 에디에게 짐짝취급 당하며 온종일 모텔에만 머무르는 에바는 또다시 지루한 시간으로 회귀한다. 그러나 선택받은 자처럼 파라다이스로 가는 티켓을 손에 쥔 에바는 당장 유럽 어디로든 떠나기로 결심하지만, 결과적으로 얼떨결에 헝가리로 실려가는 건 윌리고, 에바는 미국에 머무른다. 왜 머무르는 건 에바였는가, 하면 에바는 완벽한 파라다이스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다. 이 영화는 새드무비인가? 아니, 이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다.


나와 친구는 카페 호랑이의 라떼를 한 잔 씩 손에 들고 대림상가와 세운상가를 잇는 다리에 앉아 청계천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대낮의 물살 위에서 부서지는 빛무리를 보며 그 언젠가 보았던 서울의 야경을 떠올렸다. 우리는 서울살이에서 겪고 있는 스트레스로 인해 인류애를 처참히 상실한 상태였고 우리와 관계 없는, 우리를 괴롭게 하지 않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기이한 생동감을 느끼며 묵은 스트레스를 털어냈다. 각자 지방 출신이고 서울토박이인 우리는 출신에 상관 없이 공감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는데 불현듯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하고 싶어했던 영화 일을 그만두기로 하고도 서울에 남아야 하는 이유. 이제 이곳이 내 보금자리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방금 아파트 복도에 노란불이 켜졌습니다
누군가 지나가고 있나봐요
아래를 지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빛을 밝혀주는 거라면
그런 기계를 고안한 게 사람이고 세상이라면 조금은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요

- <부재중 전화>, 정다연


서울의 빛은 오묘하다. 멀리서 보면 낯설기만 한 야경도 그 안에서 들여다보면 오직 나만을 위해 밝혀진 빛처럼도 느껴진다는 게. 해질녘 길을 걷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일제히 켜지는 가로등을 목도할 때 나는 일순간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제목은 서울보다 낯선. 장르는 코미디. 나는 파라다이스를 찾아 서울에 왔으나 끝내 알게된 것은 나에게 특별한 목적이 없었다는 사실 뿐. 어릴 적 나에게 서울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였으며, 온갖 가능성이 넘치는 파라다이스였다. 그러나 파라다이스에서 뭐가 하고 싶었냐고 물으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었을런지 모르겠다. 가능성이란 때로 뜬구름과 혼용되기도 하는 단어잖은가.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건 장소가 아니라 상태이지 않을까 싶다. 다시말해 파라다이스는 마르지 않도록 남겨두는 약간의 우물물 같은 것. 바닥을 쳐도 절망하지 않도록 남겨두는 한줌의 희망같은 것이다. 우리는 결코 파라다이스에 살 수 없다. 파라다이스는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도시의 대형 광고판처럼 다시금 움직일 동력을 주는 얄밉지만 그럼에도 구하고 싶은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대형 광고판은 특유의 가식적인 표현 방식때문에 절망의 상징으로도 자주 이용되곤 하지만 분명 우리는 수많은 개인을 타겟으로 한 그 광고판에서 안전함을 느끼는 때도 있다. 아주 늦은 밤에도 불 켜진 광고판 앞에서 우리는 아직 세상이 잠들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불빛이 나를 지켜보고 있음을 믿는다.


요즘 나는 노란 조명 아래서 카페 호랑이의 라떼를 마시며 써 내려갈 문장을 상상한다. 여행지에서 느낀 것들에 관한 에세이를 쓰는 지금 나의 기분은 파라다이스고, 지난 여행지들을 복기하고 있는 이곳 서울은 나의 보금자리다. 여전히 서울의 불빛은 가끔 낯설고 나의 주거 상태는 물 위에 뜬 듯 위태롭다. 하지만 어딜 가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세계는 낯설 것이고 파라다이스라고 믿었던 곳에는 결국 보금자리가 없어 위태로워질 것이다. 나는 내가 12년이나 기특하게 자리를 틀어 온 이 곳에서 순간 순간 스쳐 지나가는 파라다이스의 순간을 붙잡는 재미로 긴 지루함을 달래보기로 한다. 야경도 가끔 봐야 아름답다. 이제 또 다른 글 쓰러 가야겠다.

keyword
이전 08화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영도..., 카페 신기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