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세차게 겨울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약속이 있어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올라가던 나는 늘 그렇듯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가고 있었다. 딱히 플레이리스트라는게 없었고, 랜덤 셔플로 노래를 듣는편이라 잔잔한 노래와 리듬감 있는 노래들이 교차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흐릿한 쟂빛 하늘에 전철 창밖을 적시는 빗줄기와 전철 안 특유의 소란스러움만이 가득했다. 한참을 그렇게 가고 있었다. 그때 한 때 질리도록 들었던 Pink sweats의 <17>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무엇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 노래 가사들을 들으며, 전 연인과의 연애시절이 생각났다. 우리가 봄밤 이태원에서 강남역으로 향하는 한 밤의 택시에서 들었던 그 노래 가사와 분위기가 문득 선명히 떠올랐다. 아마 비오는 날씨로 인해 감성적이 된 것이리라.
노래의 가사는 바람을 피우지 않겠다고,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속삭이는 노래였으나 우리의 이별에는 해당사항이 없는 노래가사였다. 그렇게 한때 사랑했던 연인과의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감상에 젖는게 썩 유쾌하지는 않았으나 그 순간은 우리의 영화와 같은 순간이었기에 또 애잔하게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그 사람을 그리워서도 아닌 그 시절의 내가 너무나도 예뻐보여서였다.
그와 헤어지고 한 번의 연애를 더 했었다. 짧은 만남이었기 때문에 연애라고 말하기는 무색하긴 하지만 그 이후 나는 쉽사리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지 못한다. 차라리 혼자인게 편하다는 자기방어적인 마음만 지닌채 그렇게 사람들을 만났다.
이어폰에서 우리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시절 가장 환했고, 싱그러웠던 내 모습이 추운 겨울날씨와 대비가 되며 그리워지는 날이다.
무미건조한 나날들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며 그렇게 노래가 끝날 때 쯤 나는 내려야하는 역에 도착했다.
나의 짧은 추억팔이는 그렇게 끝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