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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Sep 16. 2020

살고 싶지 않아 글이라도 쓴다

죽고 싶은 건 아닌데, 살고 싶지도 않다.

누워 있어도 피곤하고 그렇다고 눈을 감으면 또 잠이 안 와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매일 동이 트는 걸 보고서야, 남들이 일어나는 시간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다. 그렇게 잠들면 하루를 내리 잔다. 자도 자도 자고 싶다. 깼다가 다시 자고, 또 누워 있다 까무룩 잠들기를 반복한다.


더는 허리가 아파서 못 잘 것 같다 싶을 때부터는 겨우 손가락을 까딱여 핸드폰을 본다. 특별히 보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새로 볼 의욕도 없다. 그래서 유튜브에 들어가 지나간 옛 드라마 클립을 보고 이미 수십 번도 더 봤던 예능 편집본을 또 본다. 넷플릭스를 들어가고 텔레비전을 켜 VOD를 틀어 봐도 똑같다. 무언가 새로운 작품을 둘러보고, 고르고, 드라마의 첫 회나 영화 하나를 보기 위해 한두 시간 남짓 집중할 집중력조차 부족하다. 한두 시간이 다 뭐야. 5분 이상은 집중을 못 한다. 하다못해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새로운 영상이 뜬 것조차 피곤하게 느끼고, 재생 바가 10분짜리인 걸 보고 포기하게 된다.


취미도 그렇다. 그렇게 영화를 좋아했는데, 그나마 영화를 좋아했는데 그것마저도 이제는 걱정부터 앞선다. 보다가 졸면 어쩌지, 집중 못 할 것 같은데, 발만 동동 구르다 발길을 돌린다. 이제 일은커녕 취미까지 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에 좌절한다.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영화관을 나서고 집까지 걷는 길은 여전히 피로하다.




매일매일이 잠결이다. 반쯤 잠에 젖어 있고, 또 나머지 반쯤은 겨우 붙든 맨정신에 찌뿌둥한 몸뚱이를 바닥에 뭉개고 핸드폰에 영혼을 뺏긴다. 체력은 또 얼마나 엉망인지. 집에서 5분 거리인 정류장까지 뛰어야 했던 날은 숨이 차서 쓰러질 뻔했다. 버스에 앉아 열 정거장 정도를 지나칠 동안에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가뜩이나 좋지 않던 체력인데, 언제 이렇게 밑바닥을 찍어 버린 건지 모르겠다. 의욕 제로에 체력까지 이 수준이니 집에서 꼼짝을 안 한다. 그저 내 방, 거실, 화장실, 부엌……. 만보기 앱은 100을 넘기기도 힘들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무조건 배달 앱부터 본다. 밥솥에 밥이 있는지, 냉장고에 어떤 반찬이 있는지는 모른다. 궁금하지도 않다. 그냥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시킨다. 그리고 먹는다. 맛있다고 즐거워하지만 그때뿐이고, 다 먹고 나면 눈앞에 즐비한 일회용품들을 보며 허탈감에 휩싸인다. 얼마 안 있어 또 배가 헛헛해진다. 배가 고픈 게 아닌 걸 아는데, 그냥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아무거나 입안에 욱여넣고 싶은 허전한 심리에 불과한 걸 아는데도 다시 앱을 켜고 이번엔 카페 메뉴를 시킨다. 배달은 참 쉽다. 달랑 한 줄의 메모만 남기면 집 앞으로 조용히 모든 것들이 도착한다. 그걸 가져다 또 먹는다. 사실 먹지 않아도 됐는데, 배부른 상태인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입에 넣는다.


그렇게 온종일 바닥에 엉덩이 아님 등을 딱 붙이고 기생충처럼 산다. 기생충이 맞지. 부모에게 기생하는 기생충. 기생에도 염치가 없어 캥거루 새끼마냥 앞주머니에 올라타고도 모자라 남은 등딱지까지 떼먹는다. 허리가 굽다 못해 다리까지 후들거릴 내 부모를 뻔히 알면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미칠 것 같은 무력감.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사람을 만나는 일련의 생산적인 일까지는 상상할 수도 없고, 그저 내 손으로 밥 한 끼 차려 먹고 방을 치우는 일조차 버겁다. 그래서 쓰레기장 같은 방 안에 아직 다 뜯지도 못한 택배 상자들을 쌓아 두고 산다. 쓰레기 같은 내게 쓰레기장 같은 이 방이 딱 알맞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다 어느 날엔가 내 부모가 견디지 못해 어느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 다큐 프로그램에 나를 제보할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하면서. '쓰레기장 속에 사는 고도 비만녀', 뭐 이런 타이틀로 텔레비전에 팔릴지도 모르겠다고 한탄하면서.


전엔 흥미로웠던 것들이 이젠 하나도 흥미롭지 않다. 삶에 재미있는 게 단 하나도 없다. 보고 싶은 사람도 없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나마 정말이지 해야 할 것들은 외면하고 싶다.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고 싹 다 잊어버리고만 싶다. 그냥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




나는 지금 바닥에 잠겨 있다. 늪에 빠져 있다. 이게 죽음의 전조라면 차라리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싶을 정도로 괴롭고 무력하다. 이 대재앙의 코로나 시대에도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어떻게든 부지런히 살아가는데, 나만은 숨만 붙은 채 살아가길 포기했다. 생의 시간은 흐르는데 나의 시간은 멈춰 서 있다. 이대로 모든 게 영영 멈춰 버릴까 두렵다. 지옥 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울다가 웃다가 글이라도 쓴다. 이것밖에 써지질 않아서. 그 어떤 사랑도, 이별도, 삶의 철학과 고뇌도 지금의 내게는 없어서. 텅 비어버린 머릿속에서 나오는 신세 한탄을 줄줄이 적어 내린다.


죽고 싶은 건 아닌데, 살고 싶지도 않다.


살고 싶지 않아.

글이라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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