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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Oct 03. 2020

살고 싶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관뒀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곳에서 달아났다.

집은 아주 작았다. 손님들이 앉았다 갈 공간은 없고, 카운터 앞에 사람 두어 명 정도가 지나갈 공간과 그 너머로 빵을 진열한 매대만이 있었다. 그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내게는 꽤 아늑한 공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손님들이 재잘대며 빵을 고르고, 그 빵들의 냄새가 맛있고 따뜻하고 포근하던 그 공간을 잠시나마 사랑했다.

코로나로 뒤집어진 시기라는 특수성 때문에 손님은 많지 않았다. 아니, 많지 않은 셈이었다. 사장님과 제빵사님,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의 말에 의하면 코로나 전보다 손님이 절반 가량으로 줄었다고 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일한 빵집은 관광지로 소문이 난 시장에 있는, 이 지역 사람이라면 알 사람은 아는 꽤 유명한 빵집이었다. 그런 만큼 원래는 손님이 쉴새없이 몰려들고 빵이 나오는 시간이면 몇십 분 전부터도 옆의 옆 가게까지 줄을 늘어섰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석 달 동안 가장 많이 늘어선 손님은 대략 열 팀 정도였다. 그게 절반도 더 줄어든 수라는 걸 떠올릴 때마다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절반으로 줄어든 손님이라지만 이제 겨우 우울을 헤치고 나와 일을 해 보겠다고 꾸역꾸역 움직이기 시작한 내게는 이만한 손님도 집채만한 파도 같았다. 말 그대로 파도처럼 몰려드는 사람들에 나는 이리 휘청, 저리 휘청이며 정신을 못 차렸다. 마침 바로 이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이 미술학원이었던지라 내게 느껴지는 무게는 더욱 남달랐다. 매일 보는 아이들을 계속 보면 되는 미술학원과 매일같이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는 빵집은 달랐고, 말을 안 듣는 아이와 말을 안 들어주는 어른은 또 달랐다.

사장님은 처음부터 내게 말씀하셨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든 분들이 많이 오신다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다거나, 반말을 한다거나 하는 불상사는 아주 당연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그래도 웬만해선 참고, 친절하게 응대하되 정작 요구사항을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들이 느낄 친절이란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 같은데, 그 어긋나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라니. 어려운 미션이었다. 하지만 할 수 있다고 호기롭게 외쳤다. 못 해내면 어쩔 텐가. 일은 어차피 닥쳐올 것인데.

실제로 많은 손님들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비닐봉지에 왜 돈을 받냐며 고래고래 호통을 치던 할아버지, 아이가 만진 빵을 모르쇠하고 다른 빵만 사서 나가던 아이 엄마, 내가 여기 단골인데 빵 하나쯤은 서비스로 줘야 하지 않겠냐던 아저씨, 이천 원만 주고 천오백 원은 나중에 주겠다며 냅다 빵을 쥐고 나가버리던 할머니, 우르르 몰려와 아가씨 어쩌구 하며 자기들끼리 미친놈 파친놈 낄낄거리던 취객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모든 손님들보다 나를 고통스럽게 한 건 같이 일하는 동료였다. 아주 작은 매장이었기에 제빵사 한 명과 매장 판매 아르바이트 한 명 단 둘이서 근무를 했는데, 그 중 한 사람과 일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잠깐 왔다 지나치는 손님의 괴롭힘은 에이, 하고 잊어버리면 그만이었지만 근무 내내 붙어 일하는 사람의 괴롭힘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일단 그녀는 무엇이든 한 번 더 되묻는 것을 가만 넘어가지 않았다. 절대 쉽게 대답해 주거나 알려 주지도 않았다. 모든 걸 단번에 알아듣고 해낼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았기 때문에, 근무 초반에 몇 가지를 되물었다. 죄송한데, 이거 어떻게 하는 거라고 하셨죠? 여기까진 기억이 나는데, 라며 머쓱하게 질문을 하면 늘 그랬다.


그거 내가 저번에 알려주지 않았어? 왜 기억을 못 하지?

말했잖아. 뭐지? 말했는데? 말해줬는데?

차갑게 식은 눈으로 그렇게 몇 번씩 물음표를 띄울 때마다 심장이 쿵 떨어졌다. 그렇다 보니 어쩌다 실수라도 한 번 하는 날이면 그 날은 퇴근하는 순간까지 그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정말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를 하면 괜찮다며, 나 그런 사람 아니라며 웃었다가도 몇 분 뒤에 다시 와서 그 이야길 꺼냈다. 하루 근무 다섯 시간 동안 그런 패턴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내가 너 싫어서, 너 짜증 나라고 계속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널 싫어해서 이러는 게 아니잖아. 알지?

난 너 좋아한다?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이야.

이런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으며.




손님이 없어도 내게는 매대를 정리하고, 중간 정산을 하거나 빵을 진열하는 등의 일이 있었지만, 손님만 없었다 하면 한순간도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특히 빵을 진열할 때가 가장 스트레스였다. 갓 나온 빵은 아주 뜨겁고 말랑하고 액체 같았기 때문에 떨어뜨리거나 모양이 망가지지 않게 진열할 때 꽤나 주의를 기울여야 했는데, 그때도 그 사람은 쉬지 않고 말을 걸었다. 온 정신이 빵에 쏠려 네네, 그렇죠, 조금이라도 짧고 단조로운 대답이 나왔다 하면 어김없이 그랬다.


내 이야기 듣기 싫구나?

알았어.

너 나랑 말하기 싫구나.

그럼 말을 하지 그랬어.

내가 눈치가 없었네.

실수로 빵 하나를 떨어뜨려 사장님도 넘어간 일을 본인이 다섯 시간을 갈군 것이 바로 어제 일이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가 빵 떨어뜨릴까 봐서……. 손사래를 치는 것도, 당연한 것을 변명하는 것도 뒤에 가서는 진절머리가 났다. 잠시만요, 저 이것만 하고요, 입꼬리에 쥐가 나도록 웃어가며 말해도 봤지만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전에 ㅇㅇ이는 진열하면서도 말 잘 했는데.

사실 내게 인수인계를 해 주고 간 그 친구와는 하루 걸러 하루 비교를 당했다. 걔는 이것도 이랬는데, 저것도 저랬는데. 그렇게 으쓱이곤 양념처럼 한 마디 얹었다. 물론 이월이도 잘하지. 잘하는데……. 말줄임표 하나하나가 총알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하루하루 근무일이 쌓이고 그 사람과의 시간도 쌓여갈수록 가슴은 갑갑해지고 정신은 피폐해졌다. 처음 인수인계를 받던 날, 셋이 함께 일하고서 둘이 함께 퇴근하던 길. 같이 일하시는 분도 좋은 분인 것 같아요. 마냥 해맑게 던진 말에 그 친구가 떠날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좋죠. 좋은데,

그 분이, 좀, 그래요.

그 친구는 고깃집에서 일했다고 했다. 정말 고되고 힘들었는데, 그래도 일 년을 일했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두 달을 일했다. 일을 정말 잘했는데, 나랑 잘 맞았는데, 라고 그 사람은 한참을, 대놓고 아쉬워했지만 나는 덕분에 그 이유를 뼈저리게 알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매일 그랬듯 본인이 일적으로 어떤 부분이 힘들다, 짜증 난다 하소연을 하기에 평소처럼 그러셨구나, 어떡해요, 하고 대답을 하던 중이었다. 그러자 눈을 끔뻑이며 한참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그게 다야?

가만 보면 항상 그러더라.

이월이는 별로 공감이 안 되나 보네.


하고 쌩하니 찬바람을 불며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공감, 공감. 그 공감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최선을 다해 공감해주겠다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비슷한 상황이 생겼다. 나는 있는대로 눈썹을 팔자로 찌그러뜨리며 대답했다. 맞아요, 저번에 저도 그랬는데. 그래도 너무 잘하시잖아요.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 같으면 그렇게 못 했을 거예요, 뭐 이런 뉘앙스로. 찰나의 순간 나는 판사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피의자가 된 심정이었다. 억겁 같던 몇 초 뒤에, 그녀는 대뜸 표정을 싹 굳히며 말했다.


그걸 그렇게 비교하면 어떡해?

너 그렇게 생각하니?

너랑 나는 달라.

너는 그냥 아르바이트고 나는 정직원이잖아.

순간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그대로 빗자루를 내려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어가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고 울고 싶었다. 대체 이 사람이 내게 원하는 게 뭘까. 실수 같은 것이야 극도로 싫어할 수 있다지만, 그런 건 내 잘못이라지만……. 나더러 뭘 어떻게 하라는 걸까. 어디까지 맞춰야 하지. 원하는 답이 뭐지. 여기서 평생을 일해도 그 사람이 원하는 그때그때의 의중을 알아맞힐 수 없을 것 같았다. 문득 이 빵집에서 유일하게 일 년을 넘게 일하고 있다는 아르바이트생이 떠올랐다. 이 사람이 그녀를 탐탁치 않아 한다는 것도.

걔는 일은 잘해. 잘하는데,

애가 딱딱해. 싸가지가 좀 없어. 말도 없고.

딱딱하고 싸가지가 없으니까, 당신과 대화가 없으니까 일 년을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누가 내게 이 사람을 서서히 싫어하는 데에 대한 죄책감을 좀 덜어가줬으면 했다. 처음부터 그 장수 아르바이트생처럼 굴었으면 좀 나았을까. 하지만 이럴 사람인 줄 누가 예상이나 했나.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럴 수 있는 성격의 위인이 못 되었다. 어차피 상상에 지나지 않을 뿐.

둘뿐인 제빵사는 주마다 교대로 시간을 바꿔 일했다. 그 사람과 일하는 주에는 매일 출근이 하기 싫어 몸을 뒤틀었고 퇴근 후에는 어김없이 노이로제에 시달렸다. 마음이 너무 지쳐 출근 두 시간 전부터 눈물이 났고 한 번은 출근을 앞두고 동생을 와락 끌어안고 울어버린 적도 있었다.

손님에게 하는 감정노동보다 주방에 갖다 바치는 감정노동이 더 고되니 웬갖 진상 손님을 응대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차라리 주방에서 말도 붙이지 못하게 손님들이 쉬지 않고 줄을 섰으면 싶었다. 앞서 코로나 이전에 비해 줄어든 손님의 수도 내게는 파도 같이 느껴졌다고 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는 걸 파악하고부터는 그깟 파도 따위 두렵지 않으니 파도가 아니라 쓰나미라도 몰려와 나를 일의 구렁텅이로 집어 삼켰으면 했다. 그만큼 사람을 말려 죽이는 눈빛과, 태도와, 화법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본인은 대부분 악의가 없이.




통유리창으로 부서지는 햇빛이 아름다워 잠시 행복했지만, 그 햇빛에 습기가 차는 빵 봉지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블라인드를 걷었다 올렸다를 반복하는 시간이었다. 빵 위로 펼쳐지는 빛바랜 무지개가 예뻐 가만 바라보고 있으면 한시의 틈도 주지 않고 말을 걸며 순간순간 내 숨을 옥죄던, 나를 신경쇠약 직전에 이르게 하던 동료가 있었다. 그게 다였다. 나는 더 이상 그 곳에서의 기억을 곱씹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내가 그만두게 되었다 전할 때 눈물을 보였다. 이월이 너무 좋았는데. 내 말도 잘 들어주고, 착하고, 일도 잘하고. 웃음이 나왔다. 당신이 나를 그렇게 생각했다고? 뒷골이 뻐근하다 못해 으깨질 것 같은 소리를 하는 그 사람을, 아니, 우리의 정직원님을 바라보며 나는 할 말이 없어 힘겹게 입꼬리를 바르작대며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여 주었다. 그래, 그래요. 그렇군요.

운이 좋게 취업이 되어 세 달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게 된 자리였지만 사실 취업이 되지 않았더라도 그로부터 한 달 안에 그만두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만큼 나는 자주 울었고 많이 괴로워했다.

살고 싶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관뒀다.

어떻게든 우울을 극복하고자 했던 의지를 죄 꺾다 못해 갈아 마셔버리는 사람 때문에 그나마도 더 살고 싶지 않아지기 전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곳에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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