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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Sep 22. 2020

살고 싶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아주아주 작지만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그냥 문득 그래야겠다 싶었다. 집에서 다달이 용돈이란 명목으로 삼십만 원씩을 받아 모든 돈을 배달음식에 탕진하는 코로나 발 히키코모리를 자처한 지 한 달 하고도 3주쯤이 지났을 때였다.


남들은 하던 아르바이트도 인력감축을 위해, 혹은 가게가 망해 잘리는 시국이었다. 더군다나 많은 아르바이트에서 좋아한다는 '용모단정'의 숨은 의미를 잘 알고, 그 의미를 내가 단 한 가지도 충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더 잘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했다. 이전까지 내 삶을 꾸려오던 것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모두 사라진 시간의 공백을 이겨내기가 버거웠기 때문이다.


자의로 성실할 줄을 몰랐다. 좋게 말하면 어떻게든 늘어지지 않고자 노력하며 살았고, 나쁘게 말하면 강제적인 요소 없이는 자립할 엄두를 못 내는 태생이 게으른 삶이었다. 그런 시간을 뒤로 하고 아르바이트도, 학교도, 학원도, 하다못해 그 흔한 약속도 없이 번아웃 두 달째. 태어나 처음 갖는 완전한 나태와 건강하지 못한 그 시간 속 생긴 우울을 어떻게든 덜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그거라도 해 보기로 했다.




알바천국 앱을 깔았다. 알바몬도 깔았다. 지도를 열고 집 근처부터 버스로 열 정거장 내외까지를 살폈다. 마땅한 자리가 한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뒤적였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헤매는 데에는 이골이 나 있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뛰어들었던 게 운전면허 취득도, 술집 순회도, 클럽 탐방도 아닌 아르바이트였고, 그 뒤로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지난 5년간 단 한 달도 쉬지 않고 했던 게 또 아르바이트였으니까. 한시도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던 그때의 부지런함은, 등록금과 용돈을 스스로 벌어 부모를 돕겠다던 알량한 포부는, 의욕은, 그 비슷한 긍정의 감정들은 다 어디로 갔나. 한숨이 나왔다. 당장은 손가락을 두드리는 일도 이렇게나 벅찬데.


간간이 그냥 그만둘까, 이대로 지낼까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다. 이대로 지내면 얼마나 쉬워. 그냥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좋잖아. 솔직히 편하잖아. 그런 생각도 불쑥불쑥 들곤 했다. 화는 많아도 정작 모질지는 못한 부모님은 집안의 기둥이 아니라 기왓장 한 장 보태기도 힘들 비만 백수 맏딸을 가끔 타박할지언정 앞으로도 얼마든지 두고 봐줄 것이었다.


하지만 몸이 편해지자고 마음을 죽어나게 할 수는 없었다. 유약한 인간이라 둘 다 깃털 한 오라기만큼도 아프고 싶지 않지만, 굳이 고르라면 나는 몸이 아픈 걸 택하는 쪽이었다. 차라리 몸이 조금이라도 바쁘고 힘들어야 우울한 생각이 덜 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고 노트북과 핸드폰을 번갈아 가며 눈이 빠지도록 알바맵을 돌아다니다가, 또 때려치우고 싶은 날들이 반복되었다. 며칠 뒤에야 지난 내 아르바이트 경력도 좀 쳐 줄 것 같고, 일도 할 만할 것 같고, 거리까지 적절한 곳을 겨우 두세 군데 찾아냈다.


이력서를 넣고, 문자를 보냈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동네 체인 빵집, 그리고 집 근처 마트. 세 군데였다. 가장 먼저 연락이 온 곳은 마트였다. 면접을 보러 가겠다 약속을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빵집에서도 연락이 왔다. 외출한 김에 두 곳의 면접을 한꺼번에 해결하고 싶었기에 이동 시간까지 고려해 같은 날 한 시간 간격으로 면접 약속을 잡았다. 이어 카페에서도 연락이 왔고, 대형 프랜차이즈답게 날짜를 정해주는 바람에 다음다음 주까지 면접이 늦어졌다. 상관은 없었다. 카페 특성상 나 같은 외형의 아르바이트생을 별로 원치 않을 것을 알았기에, 증명사진에 속아 부른 면접 따위야 아무려면 어쩌랴 싶었다. 실물을 보면 어차피 뽑지 않을 테니까.


며칠을 기다려 빵집과 마트의 면접 날이 됐다. 아무리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 봤다지만 면접은 또 오랜만이라 뭘 입고 가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곧 지금의 내 덩치에 어차피 걸칠 수 있는 건 헐렁한 츄리닝 바지에 후드 집업뿐이라는 걸 떠올렸다. 어쩔 수 없었다. 집 앞 슈퍼를 갈 때의 옷차림 그대로 가방만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이대로라면 아르바이트가 문제가 아니고, 취업할 때도 면접 복장을 갖춰 입을 수가 없겠구나. 정장 대여를 해도, 옷 한 벌을 맞춰 입을래도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은 없겠구나. 나는 지금 이런 사람이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빵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그새 불어난 체중만큼이나 무거웠다.




빵집에서는 데면데면하게 나를 맞았다. 증명사진은 생략하고 수기로 써서 가지고 간 이력서에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두 달 남짓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력이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몇 번 끄덕이긴 했지만, 표정이 지나치게 일관되었기에 내심 기대를 버렸다. 더군다나 면접을 마치고 나서기 직전, 사실 내가 오기 이전에 왔던 사람 중 하나를 뽑기로 이미 마음을 먹은 터라고, 그렇지만 혹시라도 자리가 나게 되면 연락할 수도 있으니 기다리라는 말을 하기에 헛걸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간 마트에서는 최저시급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4대 보험에 가입해야 최저시급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팔천 원만 줄 수 있다고. 나는 신중하게 그 말을 귀담아듣는 척 동그랗게 눈을 뜨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차갑게 식은 눈깔을 하고 사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최저시급도 안 준다니, 이게 무슨 말이야. 뉴스 기사에 숱하게 보이던, 인건비 때문에 그렇게 못 살겠다고 우는소리를 하는 자영업자들이 떠오르며 말 못 할 기분이 되어 가게를 나섰다. 두 군데 모두 합격 여부는 다음 주에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내심 알 수 있었다. 빵집은 나를 쓰지 않을 것 같았고, 마트는 설령 나를 부르더라도 가지 않을 것이었다.


다음 주가 되었다. 그 뒤로 다른 자리를 더 알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최근 들어 가장 큰 기력과 집중력을 세 곳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는 데 쏟은 뒤였기에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마지막 남은 카페는 사실 이전에도 다른 지점에서 면접을 본 적이 있던 곳이었다. 나는 등록금과 용돈을 벌기 위해, 그러니까 정말 돈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는데 그곳에서는 내게 흡사 정규직 직장인 수준의 책임감을 원했다. 집에 가서도 하루 한두 시간씩을 들여 꾸준히 공부하며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일해야 한다고. 그 말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고작 스무 살 남짓의 어린 학생들을 뽑아다가 주 5일 하루 네다섯 시간의 최저시급을 주고 쓰면서 어떻게 이런 걸 요구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2년 뒤 다시 앉게 된 다른 지점의 같은 카페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과거보다 머리가 굵어진 탓인지 그때보다 별로라는 생각이 더 빨리, 그리고 많이 들었다. 면접비 비슷한 개념처럼 제공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카페를 나서며 생각했다. 고객으로서 이 카페를 애용하는 사람이지만, 직원으로서는 오고 싶지 않다고. 내 짧은 생각이 무색하게 이번 역시도 이 카페에서는 나를 부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마트에서 연락이 왔지만 다른 핑계를 대고 거절했다. '어디 최저시급도 안 주고 사람을 부려먹으려고 하느냐'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으니까. 다행히 상대편에서도 별다른 액션 없이 전화를 끊어 안도했다. 이로써 용기를 내 면접을 본 아르바이트 세 자리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이제는 어쩌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좌절감과 무력감이 순간 덮쳐왔다. 세 군데를 몽땅 떨어진 것도 아니고, 한 군데는 직접 거절했고 한 군데는 면접을 보면서 갈 마음이 싹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그랬다. 고작 1/3의 성공이라는 생각이 나를 옥죄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우울함이 몰려와 잠시 울어야만 했다. 이미 자의만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병든 난데, 또다시 나를 집 밖으로 이끌어 줄 강제적인 요소조차 없는 무력하고 멍청한 시간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밤이 밤인지 낮이 낮인지도 모르는 패턴에 제동을 걸려던 시도마저 무산되고 계속해서 절여지던 무렵, 하루는 느지막이 눈을 떠 확인한 핸드폰에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빵집이었다. 다음 주부터 출근할 수 있겠냐는 문자를 읽고 또 읽었다. 이렇게 갑자기? 일주일이 넘게 지났는데? 이미 날아간 거 아니었나? 별생각이 다 들며 머리 위로 물음표가 숱하게 떠올랐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될 일이었다.


출근 가능하다고 대번에 답장을 보냈다. 보건증과 신분증, 통장 사본 등 처음 일을 시작할 때 거치는 절차를 몇 번 주고받고 나니 다음 주에 보자는 마무리 문자가 왔다. 답장을 보내는 내내 입가가 자꾸 꼼실거렸다. 뭐야, 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텁텁한 일상 속에 얼룩진 마음 한편이 조금이나마 맑게 개는 느낌이 들었다. 우습다면 우스운 일이었다. 일 5시간 주 3일짜리 아르바이트 하나에도 이렇게 가슴이 뛰다니. 이렇게나 뭐라도 된 것 같이 들뜨다니. 그동안 나를 스스로 어딘가에 쓸모있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할 일이, 그래서 스스로의 쓰임이 기뻐 설렐 일이 이다지도 없었나 싶었다.


이제 다음 주부터 나는 갈 곳이 있는 사람이다. 일을 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인력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내가 필요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별것 아닌 사실이, 죽은 듯 숨만 붙이고 살던 나를 꿈틀거리게 했다.


살고 싶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아주아주 작지만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내가 갑자기 살지 않으면 그날 빵을 팔 사람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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