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대한민국 국토종주 _ Day 3.
Day 3. 수안보에서 문경 53.9km
전날 밤 수안보 온천에서의 온천욕으로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다시 출발 준비를 한다. 오늘은 국토종주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높이 362m의 소조령과 높이 548m의 이화령, 두 고개를 넘어야 되는 날이다. 특히 이화령은 약 5km의 오르막길을 올라야 하는 난이도 상(上)의 코스다. 하루 평균 100km 정도를 달리는 것으로 목표를 잡았지만, 오늘만큼은 업힐을 고려해 50km 남짓 떨어진 문경을 목적지로 잡았다.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각오를 다지며 출발했는데, 이상하게 자전거가 페달을 밟아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처음엔 몸이 덜 풀렸나, 오르막이라서 그런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뒷바퀴에 펑크가 난 것이었다. 종주를 하면서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하필 오늘같이 중요한 날, 산뜻하게 출발하려는 지금일까 싶었다.
당황한 나와는 달리 남편은 침착하게 자전거를 길가에 세우더니 장비들을 꺼냈다. 자전거에서 바퀴를 분리하고 준비해온 여분의 타이어를 꺼내 교체했다. 땡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불평 한 번 안 하고 고치는 모습이 든든했다. 나 혼자였으면 분명 망연자실, 어쩔 줄 몰라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타이어 펑크로 출발이 늦어지긴 했지만, 우리는 더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업힐인 소조령이 눈 앞에 나타났다. 완만한 오르막이 끝도 없이 길게 느껴졌다. 중간에 내리막이나 평지가 있으면 쉬면서 갈 수 있는데, 오르막만 계속되니 너무 힘에 부쳤다. ‘어쩌다 평지를 놔두고 산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을까.’ 온갖 생각이 들면서 자전거를 처음 타게 된 계기가 떠올랐다.
남편과 아직 사귀고 있던 시점이었다. 자전거를 함께 타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예쁜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나란히 달리는 커플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따스한 햇살 아래 시원한 바람에 머리가 날리는, 그런 ‘샤랄라 한’ 자전거 데이트 말이다. 하지만 실제는 내가 상상한 모습과 차원이 달랐다. 남편(당시 남자 친구)은 나를 뒤에서 바짝 추격하며 “페달을 밟아! 쉬지 말고 밟아!”라며 채찍질을 하고 있었고, 나는 앞만 보고 열심히 페달을 돌리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자전거가 어느새 재미가 붙더니 지금의 국토종주까지 이어진 것이다.
우리보다 앞쪽에는 아빠와 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는 힘들다고 투덜거렸고, 아빠는 채찍질도 했다가 어르고 달랬다가 하면서 앞에서 이끌고 있었다. 처음 한강에서 자전거를 탈 때의 나와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오늘의 두 번째 업힐이자 국토종주의 하이라이트. 이화령은 꼬불꼬불한 길이 산을 돌고 돌아 정상까지 이어져 있었다. 왼발에는 ‘천천히’, 오른발에는 ‘꾸준히’를 마음속으로 되뇌며 페달을 밟았지만, 영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는 느낌이었다. 가끔씩 옆으로 지나가는 차량의 엔진 소리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이미 소조령에서 많은 에너지를 쏟은 탓에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다행히 중간쯤 아래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 쉬어 가기로 했다. 아래를 보니 ‘그래도 많이 올라왔구나’ 싶었다. 나는 기운을 차리기 위해 ‘에너지바’와 ‘양갱’ 같은 간식을 챙겨 먹었고, 에너지 보충제인 ‘파워젤’도 먹었다. ‘파워젤’은 이름에서 오는 플라세보 효과인지 모르겠지만, 오르막을 오를 때 하나씩 짜서 먹으면 없던 힘도 생기게 했다. 그렇게 파워젤의 힘을 빌려 사력을 다해 페달을 밟은 끝에, 마침내 548미터 고지 이화령 정상에 당도했다.
‘드디어 정상이구나! 해냈구나!’ 말로 하기 힘든 벅찬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내쉬는 가쁜 숨 사이사이 웃음이 묻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먼저 도착한 자전거 라이더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마도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들에게 사진과 메시지를 보냈으리라. ‘다들 참 대단하다’ 싶어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인증 수첩에 도장을 찍고, 사진도 찍고. 이제는 내리막길을 시원하게 내달리는 일만 남았다. 아, 이 맛에 언덕을 오르는 건가 싶다.
[자전거 타러 어디까지 가 봤니_ 1편. 대한민국 국토종주]
계속 이어집니다.
자전거 국토종주 7일 일정
3일 차: 수안보 - 문경 53.9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