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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Nov 05. 2022

애도의 끝에 들리는 목소리

편혜영의 <포도밭 묘지>(2022)를 읽고

본 독후감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커멓게 죽은 가지로 감싸인 파이프 지지대가 비석처럼 꽂혀 있는 포도밭에 수영, 윤주, ‘나’, 세 사람이 서 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말이 들린다. “아무도 죽지 마.”(p.34) 수영이었나, 윤주였나, ‘나’는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뒤를 돌아보지만 두 사람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한오였을까. 죽은 한오가 남겨진 친구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이었을까.    

 

   편혜영 작가는 어느 북 토크에서 “아무도 죽지 마”는 잘 쓰인 소설이라면 나오지 말았어야 할 대사라고 말했다. 작가의 생각이 직접적으로 투영된 말이기 때문이라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이 대사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작가가 많은 설명을 하진 않았지만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어떤 말은 안에 담아놓을 수 없고 세상에 들리도록 발화되어야 한다는 것. ‘성실하지만 가난한 사람’(p.27)이 노동 현장에서 거듭 죽어 나가는 현실에 경각심을, 유령의 미약한 소망의 형태로라도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 소설에서 죽어 유령이 된 이는 한오다. 그녀는 네 명 중 가장 ‘전략’적으로 살아왔다. 상고 졸업생들이 꿈꾸는 은행에 취직하고도 대학에 입학해 일과 학업을 병행했고, 여의도 본사에 발령받아 동기들의 부러움을 샀으며, 높은 급수의 펜글씨 자격증도 가지고 있어 직장에서 유용하게 활용했고, 고액의 고객 유치와 진급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한오는 학교 선생들이 명명한 어떠한 ‘미자’(p.16) - 미취업자, 미취득자, 미용모자 – 에도 해당되지 않았지만, 불행하게도 망자가 되고 말았다. 미래의 더 높은 삶을 지향하며 아등바등 세운 전략이 하나같이 맞아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행에선 대학 학력을 인정해주지 않았고 특기는 시대가 바뀌며 무용해졌고 업무 능력만 뒤처지는 결과를 낳았다. 실적은 윗사람에게 빼앗기고 진급 평가는 야박했다. ‘얻어터지기 전에는 누구나 전략이 있는 법’(p.9)이라는 권투선수 타이슨의 말이 이런 식으로 들어맞을 줄은 그녀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전략과 성공담은 신기루였고 얻어터지는 것이 도래할 운명이었으며, ‘성실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최악의 노동자가 되기 십상’(p.27)이었다니.     


   다른 세 명의 삶이라고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그만두자’(p.19)고 생각하면서 꿈도 적성도 아닌 백화점 판매직을 전전하는 ‘나’, ‘용모 단정’에 걸려 우등생에서 미자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고 지금은 기약도 없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수영, 열세 살이나 많은 남자와 결혼해 시댁과 마찰을 겪는 윤주. 한오의 기일에 만난 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만나지 못하는 동안 모두 비슷한 시간을 보냈다는’(p.27) 걸 안다. ‘솜이 다 꺼진 방석’ 같기도 하고 포도밭에 방치되어 ‘건포도’처럼 시커멓게 쪼그라든 포도송이 같기도 하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비슷한 모양의 방석을 깔고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인생의 어느 시기가 되면 알아서 다른 자리를 찾아갈 줄 알았다. 그때 우리가 가능하리라 여겼던 인생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애초에 그런 것이 있기는 했을까. (p.34)     


   가능하리라 여겼던 인생과 허망한 죽음 사이의 간극이 아득하다. 한오의 죽음은 이미 벌어진 일이라고 쳐도 남은 세 사람의 인생엔 어떤 변화의 가능성이 있을까? 과연 그녀들에게 다른 자리가 주어질까? 안타깝지만 소설 속 이야기의 전개에 따르면 그런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들은 한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이뤄진 이 짧은 여정에서조차 한오가 들렀던 식당도, 낭이 장군 묘소도 찾지 못한다. 목적지를 잃은 이들이 당도한 곳이 하필 저 황량한 ‘포도밭 묘지’다.    


   마지막으로 기대볼 만한 것은 ‘나’를 돌려세운 목소리, “아무도 죽지 마.”다. 희미한 '포도의 단내'처럼 세 사람 주위의 공기를 환기하는 말. 어쩌면 이것이 무용한 전략을 멈추고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나는 세 사람이 미래에 대한 허무감이나 과거를 향한 회한에 젖기보단 현재를 직시하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행복을 미래로 유예하면서 현재의 시간을 희생하지 않기를 바랐다. 한오가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도 비슷한 마음이리라 짐작한다.      


   이 소설이 현실과 맞닿는 지점은 역시, 성실하게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가 죽음을 맞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는 사회적 바람이다. 연이어 들리는 청년들의 황망한 사망 소식은 ‘아무도 죽지 않는’ 사회가 이토록 요원한가 하는 비관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아무도 죽지 마”라는 외침에 목소리를 더하게 된다. 죽음을 애도하는 이 길의 끝이 더 나은 사회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란다.     


<<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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