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hnstory Nov 02. 2024

퇴사한 은행원의 만찬

8년이 걸린 인생의 안정화 작업

 집에서 아내가 간단히 만들어 준 미니버거와 음료가 만찬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감정적으론 대게 금요일 저녁, 혹은 긴 연휴를 앞두거나 휴가 전의 기분을 떠올려보면 될 것 같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꽤나 자주 그런 마음의 상태인 스스로를 볼 때마다 복 받았구나 싶기도 한 적이 있다. 복, 운과 같은 생각을 하다 보니 지난 시간들이 떠오른다. 난 남들보다 빠르지 못했던 탓에 대입수능시험도 한 번을 더 치렀고 입대도 늦었다. 그러다 보니 졸업도 그러했고 이는 늦은 취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요즘으로 따지자면 그리 늦은 편도 아니지만 당시로는 불안했다. 스물여덟, 은행원으로 시작하는 커리어가 그래서 더 감사했고 다행이었다.



그로부터 16년이 흘렀고 세 번의 이직을 했다.


어쩌면 곧 새로운 일을 벌이거나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랫동안 마음에만 쌓아왔던 내 미래에 대한 그림을 더 늦기 전에 그리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회사의 이런저런 상황으로 나의 결심은 굳어졌다. 시기의 문제였다. 언젠가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통해 일차적으로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가족을 책임져야 하고 나의 꿈도 이뤄야 한다.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강하게 마음에 새기고 열망하며 매일 그것을 달성하고 성공시키기 위한 실행을 해야 한다는 말은 내가 접한 자기 계발서에 공통적으로 실려있던 얘기들이었다. 그런데 지난 8년간 나는 정말 그렇게 살아왔기에 지금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인가라고 한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다. 순간순간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고 열심이었다. 대체로 그러했으나 종종 즉흥적인 선택, 직관을 따르는 선택에 나의 결정을 맡긴 적도 많았다. 매일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명상을 한다고 말하지만, 어떠어떠한 이유로 이행하지 못한 경우도 부지기수였고 그런 때 역시 난 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했었다. 성실함이 성공의 좋은 무기가 되는 것은 맞으나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사심 없이, 내게 주어진 시간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즐길 줄 아는 선택을 하는 경우 일이 더 잘 풀리기도 한다. 희한한 일이다. 욕심을 버리고 그 순간에 떠오른 순수한 생각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더니 굳은 열의를 갖고 임했을 때보다 결과가 좋았다. 어느 순간 이런 진실들을 계속해서 마주하게 되었고 내면에서 나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의 위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난 8년간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준 이유가 절실하게 매달린 노력과 나의 역량이 전부가 아닌 순수한 내면의 울림과 그것을 거스르지 않는 선택을 했던 것,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자 애썼기 때문이다.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대신 마음을 비워냈을 때 오히려 그 결과가 좋았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특정 상황과 모습에의 집착은 우리의 의도와 계획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올바른 방식으로의 접근 대신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하며 애초에 건강한 열망에서부터 시작한 행동은 변질되기 시작한다. 원하던 결과에서 멀어짐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고 마음을 비워냈을 때의 모습과 많은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저 내게 주어진 시간과 환경에 감사하며 오늘 해내야 하는 일 그 자체에 마음을 두고, 그 마음이 혼탁해지지 않도록 순수한 집중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다 보면 별 것 아니라는 선입견으로 바라볼 미니버거가 만찬처럼 느껴지게 되고, 아내에 대한 감사함과 사랑으로 이어지며, 그로인행 나의 마음이 풍요롭고 가정의 안온함이 감돌게 된다. 가벼운 간식을 만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라면 우리의 계획들은 생각보다 잘 풀려갈 것이다.







이전 04화 팀장의 괴롭힘에 은행 퇴사를 선택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