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구를 값지게 쓰는 방법
이틀 연속 출퇴근 시 즐겨 신던 뉴발란스 2002RC를 신고 달려 보았다.
완벽하게 장거리 러닝도 가능하게 제작된 모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달리다 보니 기존에 갖고 있던 쿠션화 대비 접지력과 반발력이 좋았고 이틀이긴 했으나 이전 대비 평균 1분 정도 페이스가 빨라졌다. 의도적으로 속도에 비중을 두고 달린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최근 달리기를 하며 여러 가지 gear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하고해서 검색도 하고 필요한 경우 구매도 하게 되었는데, 결국 이는 같은 시간 달려도 피로가 덜하고 더 오래, 더 편하게 달리는 것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들 때이다.
그런데 어제, 오늘 달릴 때 신어보자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 없었던 신발을 신고 달린 결과가 의외로 좋았음이 여러 생각들을 하게 한다.
1. 비싼 장비보다 내게 맞는 장비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간접 경험의 정보도 중요하겠지만 가능한 범위에서 직접 경험을 해보는 것이 더 낫다.
2. 다수의 대중적 의견이 내게도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만의 방향과 속도가 있고, 이에 적합한 도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3.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감사함을 느낄 줄 아는 태도는 하루를 변화시킨다. 변화된 하루는 다음 날도 그것을 반복할 수 있도록 돕고 이는 일주일, 한 달,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다. 가장 작은 단위의 시간을 만족스럽게 해 줄 도구를 활용하도록 신경 쓰고, 생각지 못한 것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으니 열린 사고와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4. 이런 도구를 찾았다면 동일한 행동을 반복할 때 고정적으로 이런 도구를 사용한다. 고민과 선택의 시간을 압도적으로 줄여주고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 보다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나는 나 자신의 길을 가야 하며, 타인의 의견에 귀기울이되 하나의 참고자료 정도로 여기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는 달리기를 잘하지 못한다. 그저 천천히 오래 달리는 것이 좋다. 남들보다 빠르지는 않지만 꾸준히 달리는 것은 자신이 있다. 그렇다면 나의 하루를 채우는 도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한다.
늘어진 반팔티와 여유 있게 헐렁한 반바지, GPS 시계, 달릴 때 편한 안경, 갑자기 떠오른 좋은 생각들을 바로 기록할 수 있도록 돕는 다이어리와 만년필 그리고 블루투스 키보드 등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진정한 내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백 권의 책들과 연필, 인덱스 스티커, 형광펜은 독서를 통한 공부의 성과를 이끌어준다. 매우 소소하고 단편적이다. 복잡하지 않으나 강력하고, 부담스럽지 않기에 지속적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은행을 퇴사한 이후로 내가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기록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다면 독서를 통한 기록이었다. 난 좀 더 책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삶의 방향을 설계해 나갔다. 그리고 그때마다의 느낌들과 생각들을 자유롭게 기록했는데 지난 8년간 그것들이 나를 만들었다. 올 12월부터 그간의 기록과 공부를 토대로 1년여에 걸친 새로운 브런치북 연재를 계획 중이다. 이 또한 지난 기록들이 없었다면 쉽게 떠올리지 못했을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그 기록들을 통해 제2의 커리어를 그려가고자 하는 많은 이들과 나의 경험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마흔 중반 이후의 삶은 압도적 성장과 성공보다 공동체의 성장과 타인을 조력하는 것에 방점을 두는 인생으로 흘러가길 원한다. 저마다의 도구와 기록들이 모인 커뮤니티의 모습을 상상하니 이미 저만치 가있는 설렘이 나를 잡아끈다. 인생은 이렇게도 알 수 없는 일들의 이어짐이 창조되고 한 순간의 생각들로 새로운 길이 탄생한다.
본격적으로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이 와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나의 아이디어를 5년 된 아이폰 11 pro와 1만 원 정도에 구매한 블루투스키보드, 그리고 5천 원쯤 하는 휴대폰 거치대가 나의 미래를 그려주는 도구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다. 누구나 이런 감정으로 하루를 보내고 마무리하는 삶을 살며, 서로 도움을 주는 연결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가치와 효용은 말할 나위 없이 커져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