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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다이어트-(2)

설명절을 마무리하며

by Johnstory

아내는 손이 크다.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 엄마가 끼니때마다 준비하는 반찬들이 떠오른다. 옛날 소시지, 꼬막 등. 아내의 음식준비는 <부족함 없음>이 컨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건 아내의 다이어트 실패 이유와는 관련이 없다. 그러나 순환의 관점에서 생각했을 때 매우 높은 확률로 나와 아내의 과체중에 기여한다.


사당역 전주전집이 떠올랐다



쌓여있는 음식들을 보며 만족감을 느끼는 난 먹는 것을 즐긴다.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남김없이 먹으려 노력하나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적당히 먹고 남겨서 문제 될 것이 있겠냐마는 결과적으로 적지 않은 양을 먹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나의 체중은 증가한다. 그러니 점점 운동을 꺼려하고 맛있는 음식을 찾게 된다. 아내는 더 열심히 준비한다. 그리고 아내로서도 이건 매일 똑같은 수준으로 유지/반복할 수가 없는 과정이다. 그럴 때 우리는 배달음식을 주문한다. 자극적인 맛과 함께 설거지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편안함은 덤이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생각에 민망해지나 이것이 그간의 사실이다. 아내는 거절하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이번 설연휴에 '너또다'라는 말을 알게 됐다. 씁쓸하고 부끄럽고 이렇게 계속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마흔여섯 그리고 서른아홉. 아내 역시 삶의 채움보다 비워내는 여백의 의미를 알아가는 중이다. 공간과 물건에 대한 다이어트는 매우 성공이었다. 입지 않는 옷과 활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정리하여 모 단체에 기부하였다. 기부영수증으로 인정받는 기부금 세액공제는 덤이다.

깨끗하게 읽은 책들을 모아 중고서점에 되팔기도 했다. 아내는 읽고 보고 느꼈다면 그 기억과 감정은 내 안에 남는다고 생각한다. 모아둠으로 기억하려는 행동에 대해 매우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런 아내의 생각에 동의하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으나, 어느 순간 나 자신에게 묻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소유하려 하는가




일상의 이러한 습관이 다이어트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 도대체 난 그리고 아내는 무엇을 위해 과식을 하는가. 사과 한 개로 하루를 난다는 배우도 있는데, 단지 그를 대중 앞에 서는 사람이다 우리와는 '다른' 사람으로 정의하는 게 맞는 것일까. 생존을 위해 필요한 만큼,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살 수는 없는 것인가. 먹는 것에 대해 관대해지는 것의 위험성은 내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객관성과 중립성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살이 찌는 것과 운동하는 것에 예민하던 아내는 시간이 지나면서 관대함 지수가 매우 상승했다. 물론 그 덕에 재미가 있었고 웃었으며 화목해지기도 했다. 예민할 틈이 없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이런 얘기를 명절 전부터 나누던 터라 이번 설연휴는 1일 1식으로 잘 마무리했다. 어떤 날은 1식의 시간이 다소 길기는 했으나, 이전과 비교해 보면 매우 양호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눈에 띄는 체중감량은 없다. 나나 아내나 '이 정도'의 수준에 해당하는 것의 수 배는 더 애써야 조금씩의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아내의 체중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걱정은 그녀의 건강을 향해 있다.

종종 두통을 겪고 어지럼증이 있는 아내의 이런 현상이 오늘의 식습관 그리고 체중과 무관할 수 없다고 본다. 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나로선 '균형점'에 대한 생각을 한다. 영양 균형이 아닌 '먹고 마시고 비우는' 것의 균형이다. 몸과 마음의 건강에는 이 균형이론이 적용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를테면 몸에 무언가를 넣었다면 그것을 비워내고 쉴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먹는 것뿐 아니라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 한 가지에 대해 생각하며 머리가 무거워졌다면 이 또한 비워낼 수 있는 휴식이 필요한 것이다. 하루이틀 단식을 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말을 보내는 식으로 몸과 마음에게도 충분히 쉴 수 있는 여유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간의 아내의 삶은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노력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나대로 회사에서 일하고 나의 고민과 어려움들을 이고 안고 살았다. 아내는 내가 없는 시간 동안 두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생각의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니 이런 생각조차 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의 옆에는 늘 나와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 셋에게 아내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대체 이게 아내의 다이어트와 무슨 상관이냐고? 아내에겐 균형점을 실험하고 고민하고 시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 균형이 무너지면 무언가로 억압된 심리적 요인들을 해소할 기제가 필요한데 그것이 '자극적인 음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달고 짜고 기름에 튀기고 보기에도 매력적인 그런 음식들 말이다. 그보다 따뜻한 차를 마시고 러닝머신 위를 달리거나 양재천을 두세 시간 걷고 도서관에서 여유 있게 책을 보고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저녁에 느긋하게 들어와 반신욕을 하며 마스크팩을 붙이고 침대 위에 평온하게 누워있는 시간들이 아내의 건강한 삶을 책임질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이쯤에서 생각해 보면 부부의 다이어트는 개별적이지 않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협력이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개인적인 노력이 상대의 노력과 잘 결합되어야 한다. 응원과 견제와 각성을 주는 대상으로 서로 존재한다면 원하는 성과를 내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아내의 명절이 지나간다. 새로운 한 해가 지난 시간들보다 낫길 기도한다. 그러기 위해서 아내의 다이어트는 비단 '먹는 것'을 조절하고 더 많이 '운동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에 비중을 둘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마음의 여유는 실질적인 시간의 여유에서 찾아온다. 24시간 분주하게 움직이는 와중에 마음의 여유를 생각할 겨를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기 위해 나 또한 아내'만'의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균형점을 떠올리자. 과체중, 비만이라고 하는 것 또한 결국 어느 곳에서 균형이 무너진 결과일 테니 말이다. 마음의 건강과 여유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내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에 대한 알아차림이 없다면 무의식적으로 음식냄새에 반응하고 배고프지 않아도 먹을 '때'가 되었다는 착각으로 쉴 새 없이 뭔가를 집어 먹게 될 것이다.


알아차림으로 균형점을 유지하고 주기적으로 몸과 마음이 적절히 쉴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하자



아내의 자신에 대한 인지로 무너진 균형점을 찾아가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길 바란다. 더불어 그 과정에서 필요한 도움 또한 나의 몫임을 알고 할 수 있는 조력을 다해야겠다. 우리 가족의 의미 있는 설명절을 위해 고생한 아내가 오래도록 나의 옆에서 함께 건강하게 나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2025 설명절을 추억하며 음식을 준비해 준 외며느리 아내에게 무한한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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