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3일 만에, 내가 직장 생활에 필수적인 역량을 갖추지 못한 인간임을 깨달았다. 회식에서는 소주를 소주잔이 아니라 냉면 그릇이나 물통으로 마신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신력이라는 지푸라기에 매달려 소주의 바다를 표류하다 버스 종점에 고립되길 여러 번. 그럼에도 알코올 분해 역량은 좀처럼 개발되지 않았다.
다음 위기는 글쓰기에서 왔다. 매일 한국어를 듣고 말하고 읽고 쓰니까, 국어는 잘하는 줄 알았는데 보고서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대학에서 문예 창작학을 전공하지 않을 걸 후회하며, 빨간 줄 가득한 초안을 고치고 또 고쳤다. 겨우 조금 발전했다 싶으면 상사가 바뀌고, 그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무한 루프라는 게 함정.
시대 변화에 따라 음주 문화도 많이 바뀌었고, 빠른 소통을 위해 보고서 쓰는 일도 많이 줄어든 지금. 새로운 위기를 맞았다. "열심히 한 건 알겠는데, 그래서 성과가 뭐야?" 막연하게 느낌이 온다. 이건 회사 생활이 끝날 때까지 잘하지 못할 것 같은.
프로는 결과로 말해야 한다
회사에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진 순간부터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넌 절박함이 부족해. 이런 걸 해 보면 좋겠다는 말은 그만하고, 얼마를 벌었는지만 말해. 방법은 나한테 물어봐도 소용없어. 나도 모르니까. 이제 네 뒤에는 아무도 없어. 스스로 해 내야지. 네가 책임지는 거야.
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아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않는 건지. 왜 수많은 시행착오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해야 하는 것인지. 걸음마 배우듯 넘어지고 상처 입으면서 혼자 배우는 것 밖에 방법이 없는 건지 정말 궁금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걸 강조하는 걸까. 성과를 내는 것이 너무도 힘들기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으로 자기만족을, 타인의 이해를 얻으려 하는 걸까. 단순한 사실을 복잡하게 만들어 변명거리를 찾아내는 것에 익숙해진 것 아닐까.
아주 작은 일과 아주 큰 일을 살펴보아라.
야구의 神이라 불리던 분이 그랬다. 리더는 모든 것을 결과로 말하는 사람이지, 과정을 일일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리더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하고, 그 길 위에서 게임은 선수가 하지만승패에 대한 책임은 감독이 지는 거라고.
전 세계 축구 감독들의 Boss라 불리는 분은 말했다. 열한 명의 선수들이 훈련에 최선을 다하고 체중을 유지하고 충분히 숙면을 취하고 정확한 시간에 경기장에 나타나기만 한다면 승리의 절반은 이룬 거라고. 그러나 놀랍게도 많은 구단들이 이 간단한 일을 해내지 못한다고.
예전에 함께 일했던 상사는, 리더가 되면 아무도 보지 않는 두 가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아주 작은 일과, 아주 큰 일. 다들 당연하다고 여겨서 신경 쓰지 않는 일을 꼼꼼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아무도 보지 못하는 큰 그림을 파악해 낼 수 있는 능력. 성과를 만들어 내는 일은 거기서 시작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