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으로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단어가 꽤 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딱 알맞다는 뜻의 ‘적당히’는 언제부터인가 ‘대충’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고, 바르게 다스리는 일을 말하는 ‘정치’는 회사에서 정작 해야 할 일에 소홀한 사람을 욕할 때 쓰인다.
'전략'은 어떤가? 이건 의미가 변질되었다기보다 실종된 것에 가깝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계획은 온데간데없다. 대신에 최신 이론, 유행하는 개념, 경영진의 희망사항, '있어 보이는' 단어들까지 모조리 가져다 넣은 덕분에, 여러 번 들어도 도대체 뭘 하라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회사의 전략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같은 인사말로 여긴다. 연말이면 모두들 전략을 말하지만, 그때만 지나면 잊고 사니까. 다음 해 연말이 가까워질 때나 다시 찾으니까.
전략에도 Size가 있다
군대에서는 상황판을 자주 사용한다. 날씨부터 적군의 동향까지, 다양한 정보들을 기록해 둔다. 거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 지휘관 강조사항이다. 회사로 비유하자면, 회의실 화이트보드 상단에 이런 것이 쓰여 있는 것과 같다. "이번 달 사장 강조사항" "임원 강조사항" "부장 강조사항"
각자 다른 걸 강조하는 부대도 있고, 똑같은 걸 단어만 바꿔가며 반복하는 부대도 있다. 그러나, 강한 부대는 상관의 강조사항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둔다. 사장 강조사항을 달성하기 위한 임원의 계획, 임원의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부장의 계획이 잘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리더는 변압기가 되어야 한다. 고압 전선에 흐르는 회사의 전략을, 부서나 개인 단위에서 실행할 수 있는 적당한 전압으로 줄여 부하직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어떤 농구 감독님의 작전 지시 같은 건 아무 의미가 없다. (두 가지만 잘하면 돼. 공격과 수비! 알겠지? 자, 파이팅)
나는 항상 거대한 목표를 실천 가능한 단계로 치밀하게 쪼개 놓았다. 에베레스트에 사람들을 데려다 놓고 정상을 가리키며 "좋아, 올라들 가게"라고 말하는 대장은 없다 - 알렉스 퍼거슨, 「리딩」中
전략의 목표는 결국 이기는 것이다.
전략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하직원들이 이길 수 있는 전략을 내놓는 것이다. 훌륭한 감독이라면 선수들에게 "너희들이 얼마나 열심히 뛰느냐에 따라 승패가 달라진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경기 전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놓고, 그에 따라 훈련을 시킬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회사에서는 직원들의 어깨에 승패의 책임을 얹는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노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는, 더 많은 당근과 더 아픈 채찍을 준비한다. 그리고 또다시 실패한다.
손자는 先勝求戰이라고 했다. 이기는 군대는 먼저 이겨놓고 싸움을 걸고, 지는 군대는 먼저 싸움을 건 후에 이기려고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