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서리치게 추웠던 겨울은 이제 물러갈 채비를 한다. 무수히 많은 젊음들의 마음까지 얼릴 기세였지만, 어김없이 봄은 고개를 들이밀고 다가온다.
지난 한 달간 오랜만에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최근에 끝마친 인턴 동기들, 대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들, 대학교 후배, 교회 동갑 친구와 동생 등. 다들 나랑 동갑이거나 한두 살 어리거나 한두 살 많다.
어떤 이들은 토익 공부를 하고 무역 자격증 공부를 하고 기업에서 실시하는 취업 교육을 받는다.
이는 내가 속한 부류가 아니다.
누군가는 말한다. 대학교 4년의 교육을 받고 경험을 쌓았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정답은 나와야 하는 거라고.
나는 꿈이 없던 것이 아니었다. 꿈이 많았다. 영화감독을 꿈꿨고 잘 나가는 은행이나 증권사의 부동산 투자 팀장을 꿈꿨고 방송국 PD를 꿈꿨고 외교관을 꿈꿨다. 맥락 없는 꿈들이지만 순간순간 내 마음이 동하는 대로 꿈을 꿨었다.
집안에서 이미 한 사람이 고시의 쓴 맛을 봤기에 외무고시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었다. 방송국 PD가 되고 싶다고 했다가 가족들에게 온갖 자존심 구기는 말들을 들었다.
국제적인 업무를 하는 가고 싶은 기업들이 몇 있었지만 서류에서 모두 탈락했다. 이유를 묻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유는 분명했을 것이다. 나보다 더 적임자들을 뽑았을 것이다.
실패의 경험이 쌓이고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미치도록 가슴이 뛰게 하고 싶은 건 뭘까? 내 심장이 멈춘 건 아닐까? 고민하는 나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상식 공부를 하고 채용 공고를 매일 뒤져 보지만 그곳엔 가슴 뛰는 일이 없다. 누구든 나와 같았지만 어찌 됐든 선택을 했고 아무 길이든 일단 걸었던 걸까. 멈춰있는 것보단 일단 가는 게 낫다고 한다. 나도 동의하지만 나에겐 무엇인가 모를 두려움이 있다. 한 번 길을 들어서면 다시 되돌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짧은 인생 중에 조금 배운 것 같다.
내 또래의 많은 친구들이 같은 말을 한다. 무엇을 해야 내 인생이 행복할지 모르겠다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도 아니고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일에 대한 큰 만족을 느끼며 일이 힘에 부쳐도 이겨낼 만한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은데, 그게 도무지 뭔지 모르겠다는 거다.
대학교에 들어왔을 때 그리고 학교 생활을 하면서 졸업하면 무엇이든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이 분야 저 분야를 쑤셔가며 온갖 경험들을 해보고 방학마다 여행을 다니고 인턴십도 두 번을 했다.
하지만 내 나이 26살, 난 아무것도 되지 못했지만 졸업식을 했다. 대학생활은 모두 끝났고 이번 3월에 나를 받아줄 곳은 집 앞 도서관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나를 조금 비참하기도 하지만 아직 어떠한 선택을 하고 길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절대 후회하고 싶지 않다'라는 나만의 강박적인 생각과 기준이 내가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는지도 모른다. 완벽한 선택이란 없는 줄 알면서도 최대한 재고 따져서 완벽에 가까운 선택을 하고 싶어 이러는 것 같다.
내가 방황하는 것은 대학교 때 최선을 다하는 방법, 끈기를 가지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야 스물여섯 산 나의 인생을 실패했다 말하지 않으련다.
지금 당장 정답을 찾을 순 없을지라도, 나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삶을 살자.
20대에 들어서 처음으로 강의 시간표 없는, 아무런 짜여진 틀이 없는 3월을 맞이한다.
3월이여 오라, 예상치 못한 일들이여 내게로 오라. 이 백수가 흥미롭게 맞아주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