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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고양이 연근이

어젯밤 11시가 넘어서, 그날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 부랴부랴 일기 같은 글을 쓴다.

어제 막내와 진지한 대화를 나눈 뒤, 오늘 연근이를 데려왔다. 반려동물 이름을 음식 이름으로 지어주면 오래 산다는 말을 믿고, 막내가 지은 이름이 연근이다.


나는 텐션이 높은 딸의 깊은 그늘을 보았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환하게 보이려는 딸의 속은 많이 아팠던 모양이다. 반대로 나는 텐션이 너무 낮다. "도.레.미.파.솔.라.시.도!"로 비교적 순서대로 올라가는 사람과 낮은 "도"에서 높은 "도"로 올라가는 사람의 차이일까? 그 간극을 느끼는 딸의 마음을 알아버렸다.

“엄만, 공부를 못 해도 된다고? 그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그게 날 더 힘들게 하는 거야!”

“미안해, 몰랐어. 난, 어린 시절 엄마가 그렇게 말해줘서 그게 고마웠거든.”

나는 학창 시절 정서적으로 힘든 탓에 공부가 머리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엄마가 해주는 말은 고마웠지만, 딸에게는 아니었던 것이다.

“딸아, 잘할 수 있을 거야, 엄마가 응원할게!”

“그렇게 말했어야지. 내가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었는데. 엄만, 그동안 응원을 안 해줬잖아!”


나는 어릴 때 칭찬이나 응원을 흔하게 받는 환경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아픈 엄마 때문에 집안이 늘 불안했고, 아픈 엄마가 돌아가실까 봐 걱정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이들에게 격려보다는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을 수없이 했던 것 같다. 딸과의 대화를 통해, 나의 모습과 친정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도 엄마를 닮았구나.”

아이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존중과 사랑을 부어주어야겠다고 느꼈다.


고양이를 키우면 집안에 털이 많이 날리고 알레르기도 걱정된다. 특히 아들은 비염과 알레르기가 있어 계속 미뤄왔지만, 요즘 아들도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했다. 그래서 주말인 오늘, 막내와 아들에게 함께 고양이를 데려오라고 했다. 남편은 처음에 반대했지만, 내가 꼭 이번에는 키워야 할 것 같다고 하자, 허락해주었다.

막내에게 오빠가 군대 가거나 네가 대학 들어간 후, 21살이 돼서나 가능하다고 미뤘던 일이 오늘 이루어졌다. 딸은 그동안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지만, 희망만 갖고 참아왔던 터였다. 생각보다 빨리 일이 이루어지자, 딸은 바로 고양이를 데려오는 곳을 알아보고, 오늘 저녁 연근이를 데리고 왔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막내는 잘 치우지 않던 방을 말끔히 정리했다. 연근이가 해로울 일을 염려한 것이다.

동물보호소에서 데려온 연근이는 사람을 잘 따르고, 머리로 비비며 애교를 부리는 수다쟁이 고양이다. 밥도 먹고, 변도 보고, 하루도 안 돼 적응을 잘하니 고마웠다.


아들은 흰 암컷 고양이를 원했지만, 딸이 원하는 수컷 연근이를 데려왔다. 아들이 원했던 고양이는 연근이의 여자친구였다고 한다. 둘 다 데려오고 싶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조금 미안하다. 연근이는 2살 된 멋진 고양이로, 아빠가 된 경험도 있다고 했다. 아직 중성화 수술은 하지 않았다. 연근이 여자친구도 입양이 잘 돼 행복한 가정에서 지내길 바란다.

나는 연근이를 쓰다듬으며 말없이 속으로 전했다.

‘건강하게 잘 지내자. 누나를 잘 따라주고, 부탁한다!’


막내는 연근이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남을 더 배려하느라 늘 텐션이 높은 딸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연근이가 있어서, 나는 너무 감사했다.

막내가 ‘툭’하면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말하며 늘 희망고문을 했던 시간은 이제 끝났다. 나도 왜 안 되는지 매번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부모가 안 된다고 했던 것들이, 이렇게 절실히 필요할 때는 중요한 결정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딸이 학창 시절 고양이를 키워보지 못했다면, 커서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을 거다. 이렇게 서로 마음이 통하면, 연근이를 만나는 일도 하루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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