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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 나비 Jun 25. 2024

고구마 줄기에 쑥- 자란 정

텃밭에서 생길 일 1

텃밭은 버스로 세 정거장 거리에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구청에서 분양받아 3월에서 11월까지 경작할 수 있었는데, 세 번째 당첨이 되어 사용하고 있었다. 주로 텃밭에선 상추, 쑥갓, 방울토마토 등 채소를 키웠고 이틀에 한 번꼴로 가서 물을 주고 잡초도 뽑았다.      


텃밭을 이용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여름철 뙤약볕에서 작물을 가꾸는 일인데, 특히 모기와 싸우느라 고생이 많았다. 한 번은 모기 기피제를 뿌리고 가지 않아, 팔뚝과 다리에 스무 방 이상 모기에 쏘여 두드러기 증상처럼 온몸이 따갑고 오싹했던 체험. 그 체험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리고 벌에도 쏘였는데,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 꿈에도 상상치 못한 일이었다. 다행히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회복이 돼서 감사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되는 데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이기도 다.     




텃밭에서의 경험은 뭐니 뭐니 해도 작물이 주는 먹거리 사랑이 아닐까 한다. 운동도 할 겸 가까운 거리를 걸어와 물을 주고 가는 것뿐인데, 쑥쑥 티 나게 자라서 온 가족이 고기에 싸 먹는 쌈이 되고 반찬이 다. 그보다 더 큰 감사가 있었다면 이곳에서 만난 이웃과 정을 쌓고, 가족의 사랑을 재발견한 사건이었다. 먼저 이웃의 고마움에 대해서 느꼈던 점을 이야기하겠다.     


텃밭에선 고구마, 옥수수같이 특별히 못 심는 작물이 있었는데 작년에는 풀려서 심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고구마를 키우고 싶었지만, 고구마 모종을 사자니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양을 사야 했다. 그런데 텃밭을 사용하는 회원들 간의 대화 처인 카톡방에 어떤 분이 고구마 모종을 나누고 싶다고 글을 올린 것이다!

그분은 신문지에 고구마 순을 싸서 내 텃밭에 놓고 가셨다. 그분과 개인 톡을 주고받았는데, 자신이 필요한 양보다 많아서 나누고 싶었고 부족하면 더 주겠다고 했다. 시든 건 빼고 괜찮은 걸로 골라 넣었다고 메시지를 주셨는데 감동이었다!

 “마침 비가 와서 고구마 심기 안성맞춤이네요. 제가 도구가 없어서 찾다 보니 영상이 있어서요. ㅋ~ 모종을 물에 담갔다가 신문지 싸서 그늘에 두었는데, 아무래도 모종 가게에서 직접 사는 것보다 택배 받은 모종이라 시들었길래 괜찮은 모종만 골랐는데…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드린다고 해도 좋은 거 드리고 싶은데 저도 초보라 어떤 게 좋은 품종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내일 새벽에 텃밭에 갖다 놓을게요. 잘 심으세요.^^”     




나는 받은 것도 감동인데 더 주고 싶어 하는 그분의 마음에 더 감동했다. 그리고 고구마 순을 어떻게 땅에 심는지, 어떻게 키우는지도 알아보고 유튜브 동영상을 올려주셔서 그날은 그분 생각하면서 하루 종일 기뻤다.


고구마 모종을 심고 한 달쯤 지나서는 줄기를 수확할 수 있었고 순은 금세 자라서 싱싱하게 텃밭을 가득 메웠다. 순은 베어도 계속 자라서 고구마를 캐기 전 10월까지 고구마 줄기 볶음으로 자주 밥상에 올랐다. 생각나는 것만 해도 열 번은 더 밥상에 오른 것 같다.

이 삼일에 한 번꼴로 줄기를 끊어오는데도 여름의 햇살과 수분을 흠뻑 먹은 줄기는 새롭게 쑥쑥 자라 있어서 집에서 먹고도 남았다.


나는 집에 오는 지인들에게 고구마 줄기를 나누어줬다. 텃밭에 때면 두세 봉지에 가득 담아 오는 고구마 줄기, 집안일을 곧잘 도와주는 막내와 손이 까매지도록 다듬었고, 까맣게 물든 손이 봉숭아 물든 손톱처럼 다 지워지려면 일주일은 걸리는 것 같았다.

딸과의 추억도 만들고, 딸은 자기가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용돈도 벌었다. 한 번 고구마 줄기를 다듬을 때마다 천 원, 좀 더 많이 다듬으면 이천 원을 줬다. 딸도 은근히 그 시간을 기다렸다. 손도 까매지고 다리도 아파서 안 하겠다고 하면서도 용돈도 벌고, 고구마 줄기 까는 것에 중독이 됐는지 은근히 재밌어했다.     




올해 4월 말에 그분이 톡으로 연락을 주셨다. 다시는 톡을 주고받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분은 올해도 텃밭을 하는지 물었다. 나는 이번에는 쉬려고 신청을 안 했다고 말했다.

그분은 신청했지만 탈락했고, 고추 모종이 있어서 혹시 필요하면 주고 싶었다면 연락을 한 것이다.


직접 만나 뵌  분도 아닌데, 가족처럼 대해주셔서  정을 듬뿍 느꼈다.     

“담에 또 같이하게 되면 좋겠네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고구마 줄기로 이어진 정은 나와 우리 가족과 지인들에게까지 전해졌다.          

‘저도요. 다음에는 서로 모종도 나누고, 한 번 식사도 요. 정말 감사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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