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읽고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제목이 식상하지만.. 그만큼 귀에 쏘옥 박히는 문장이다.
이런 친숙함이 왜일까? 하였더니.. 아니나 다를까 80년대 후반 인기 있었던 대중가요 제목이란다. 그걸 난 인지하지 못했던 거다.
당근! 난 86년 3월에 첫 아이를 낳고 얼마 안 있어 미국에 갔고 94년 8월에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그간의 한국대중문화를 기억할 수 없다.
책의 제목이 주는 첫인상이 있다.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제목만 보면 흔한 멜로드라마인 듯하다.
그러나 이 책은 30대 젊은 작가들의 SF 장르 단편 소설 5편을 엮어놓은 것이다.
이런 예상을 뒤집는 파격성이 처음부터 흥미롭다.
과연 소재가 남다르다.
이유리의 작품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에선 감정 전이 센터에서 시술받는 두 절친여인과 그들이 겪는 남녀 간 사랑이야기를 다룬다.
김서해의 <폴터가이스트>는 ‘소리‘가 키워드다. 아주 어렸을 때 사고당한 충격이 신체의 오감을 뒤흔들어 시도 때도 없이 귀에 울려대는 소리에 시달리는 주인공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김초엽의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는 안드로이드 인간의 ‘피부이식’이 소재다.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의 경계에서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놓은 또 다른 안드로이드 인간이 갈등한다. 일련의 감정이 없는, 인간의 종속적 존재인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더불어 인간의 요구를 받들어 살아가면서 인간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이해’가 예상치 못한 ‘파격적 실행’으로 튀어나왔던 거다. 말하자면 거듭 반복되는 인간의 input에서 체득된 것들이 새로운 알고리즘을 형성해 불쑥 놀라운 output으로 튀어나오고~ 바로 그게 인간의 감정까지 전이된 결과물이 되었다는 게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안드로이드가 결국 사람의 ‘소망’까지 학습할 수 있다는 가정을 다루는 게 무척 흥미로왔다.
무엇보다 안드로이드의 가장 신뢰할만한 장치는 바로 ‘즉각적인 변화의 실행’이었다.
파격적 변화에 대해 주저함 없는 실행은 바로 결과- 그 이후에 대한 두려움 없는 안드로이드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설재인의 <미림 한 스푼>은 지구 종말을 목전에 둔 사람들의 모습을 다룬다. 얼핏 영화 <오징어 게임>의 많은 장면들을 연상케 하는 서바이벌 게임. 그 마지막 순간들을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시니컬하게 그려주고 있다.
마지막 책 천선란의 <뼈의 기록>은 단단한 서사 구조의 빼어난 수작이었다는 데 세 명의 독서회 회원들 모두 동의했다.
10대 어린이부터 8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이해할 수 있는 소재와 내용들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안드로이드 장의사 로비스가 수많은 망자들의 마지막 가는 길 - 품격 있는 장례를 위해 각 시체들을 씻고 관리해 주는 과정을 덤덤하게 반복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그 반복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각자의 죽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유가 다르고 과정이 다르고.. 무엇보다 사람이 다르다. 장의사 로비스는 비록 안드로이드라 할지라도 저들의 뼈와 살을 어루만지면서 저들의 지나왔던 인생을 알아차린다.
그러다 어느 날, 오랫동안 그의 곁에서 늘 마무리 청소를 담당했던 인간 모미 할머니가 죽자, 그녀의 시체를 똑같이, 그러나 또 다르게 처리하면서 그녀의 장례를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감히 실행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그 어떤 죽음보다 아름답고, 망자에게 딱 맞추어진 죽음 이후의 행보를 제시해 준다.
아무 연고자 없는 그녀 모미가 평소 ‘뜨거움’을 싫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로비스는 그녀를 차마 화장시킬 수 없었고,
또한 검은 나비처럼 우주를 날기를 꿈꾸었던 모미의 소망을 수차례 들어 알고 있는 바대로 과감하게 그녀를 우주 한가운데로 놓아두게 했던 것이다.
다섯 개의 단편을 이렇게 하나로 뭉뚱그려 이야기한다는 게 나로서는 무척 어렵다.
각 작품마다 색깔이 다르고, 서사가 다르며 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책을 덮으면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게 되는 이유는.. 뭐랄까.. 희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요즘 흔히 SF 영화에서 전해지는 위압적이고 종말론적인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상상하기보다..
감정 있는 인간의 이율배반적 모습을 뛰어넘어~
‘안드로이드’들의 학습된 ’의‘와 그 실행력으로 인해 새로운 ‘유토피아적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남녀노소 구분 없이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부언하고 싶다.
이 책의 제목을 살짝 바꾸어 말해보면 어떨까?
딱 한 단어만 바꾸면 충분할 것 같다. 이렇게!
<내게 남은 있는 사랑을 드릴게요>
남아있어서 주는 사랑이 아니라 원래 늘 지니고 있는 사랑이라서…
아니면 이렇게!
<내가 배운 사랑을 드릴게요>
실제인간이든 인조인간이든 늘 학습해야 생기고,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서..
SF 소설도 결국 이렇게 사랑을 노래해서 참 좋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