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의 모든 것(5) - 백수린

맺으며 - 끝내 우리는, 아주 환한 쪽으로

by 세잇

백수린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나면

언제나 비슷한 자리에 서게 된다.

무언가가 막 끝난 뒤이면서도

동시에 막 시작되려는 것 앞에 서 있는 기분.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의 시간

그러나 이미 한 번은 충분히 상처받은 뒤의 몸으로.


소설집 중 네 편의 소설을 따라가며 나는

자꾸 같은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우리는 왜 그토록 상실을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다시 사랑의 방향으로 몸을 틀게 되는가.
왜 이미 깨질 것을 알면서도 온기를 내어주고

이미 어긋날 것을 알면서도

타인의 문장을 읽으려 애쓰는가.


그 답은 언제나 거창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작아서 놓치기 쉬운 감각들 속에 숨어 있었다.


앵무새가 앉았다 떠난 마룻바닥의 미지근한 온기
눈을 감았을 때 눈꺼풀 위로 스며들던 겨울 햇살의 밝기
세 개의 다리로도 폴짝 뛰어오르던 강아지의 체온
목적지도 없이 걷다 우연히 혀끝에 닿았던 오디의 단맛.


이것들은 모두 삶이 계속된다는 증거가 된다.
완성되지 않았고 설명되지도 않지만

분명히 나를 통과해 간 어떤 것들.


우리는 흔히 삶을 하나의 완결된 서사로 만들고 싶어 한다.
상처는 극복되어야 하고 사랑은 증명되어야 하며

기다림은 반드시 보상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백수린 작가의 인물들은 끝내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남고

사과하지 못한 말을 품은 채로 돌아서며
끝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 계절을 더 머문다.


그 미완의 상태야말로 이 소설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정직한 얼굴이다.


옥미는 고립을 버리지 않는다.

다만 고립 속에서도 다시 상처받을 준비를 한다.

‘나’는 인주 언니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해하려 했던 시간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딸에게 완벽한 보호자가 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대신 부끄러움 속에서 사랑을 다시 배운다.
다혜는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

다만 하루를 조금 덜 아프게 사는 법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이들은 모두 더 나아진 존재가 아니라
조금 더 솔직해진 존재로 이야기를 마친다.


그래서 백수린 작가의 소설 속 빛은 언제나 낮게 깔려 있다.
눈부시게 비추지 않고 구원처럼 내려오지도 않는다.
그저 각자의 어둠을 통과해 지나가며

잠시 사물의 윤곽을 드러낼 뿐이다.


어쩌면 삶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확신이 아니라 망설임으로

성취가 아니라 체온으로 기억되는 시간들.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끝내 외면하지도 않았던 순간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상실할 것이다.
관계는 느슨해지고, 몸은 늙고, 어떤 사랑은 끝내 유예되지 못한 채 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머물다 간 자리를 가만히 만져보고
타인의 문장을 끝까지 읽어보려 하고
길을 잃은 날의 단맛을 기억해 내는 일.


그 일들이 모여 우리를 아주 환한 쪽으로 데려간다.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다리가 하나 모자라도 괜찮다고
오늘 하루가 조금 아프지 않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쪽으로.


소설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마음이 조용한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가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끝내지 않아도 되는 삶의 방식 하나를 배웠기 때문에.


미완의 계절을 통과하는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간다.
아주 작은 온기와, 아주 낮은 빛을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