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의 한쪽만 페인트를 칠하기로 했다.
나머지 세 면은 하얗기 때문이다.
그 한 면이 하얗지 않다는 소리는 아니다.
구구절절하게 들릴 지 모르겠으나
내가 본 그 한 면은 완벽하게 하얀 색이 아니다.
낡고 닳은 타인의 흔적이 못나게 흐려놓은
전이된 불완전의 색상인 것이다.
나의 눈알이 그 단면을 보고 있으면 무심하다가도
가끔은,
타들어갈듯이 그 잔상들을 뚫어져라 응시하게 되는 것이다.
한 군데가 아니다. 마치 그런 것 같다가도
사방에 흩뿌려진 오염된 그것들이 나를 되려 노려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은 새로운 색깔의 페인트를 잡화점에서 사 들고 왔다.
강박을 잠재워줄 고요한 색상.
당신이 생각하는 그 색상을 이 벽 한 면에 곱게 칠하여
더 이상 완벽하지 않은 하얀 색을 마주하지 않을 것이다.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다.
이 고요의 색이 다른 벽의 두 면과 천장의 순백의 가장자리에 침범하는 자신의 자국이 될까봐이다.
아직 페인트 롤러는 하얀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