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식사는 변변치 못해도 자식에게만큼은 세상 가장 좋은 거 먹이려는 게 부모 맘인데,
코알라 어미는 새끼에게 지 똥을 먹입니다.
정성스레 숟갈로 떠다 먹이는 건 아니지만, 어미 배에 달라붙어 젖을 빠는 아기 코알라는 펩이라고 부르는 엄마 똥이 나오면 재빨리 냠냠합니다. 신체발부를 뛰어넘는 신체분변 수지부모인가요. 이 지극한 효심과 지독한 모성 사이엔 이유가 있습니다. 코알라의 평생 식단 유칼립투스 잎에는 독성이 있는데 새끼의 소화기관은 아직 해독 미생물을 보유하지 못했기에 제 몸으로 직접 달인 따끈한 생약을 먹이는 겁니다. 개똥은 약에 쓰려면 없을지 몰라도 코알라 똥은 진짜 약입니다.
돌이켜보면
한 세대 전만 해도 웬만큼 흙 묻은 건 고민도 않고 잘도 털어 먹었습니다. 남보다 잽싸게 먼저 주워야 했으니 5초 법칙보다도 빨랐으려나요. 밥상에 아이가 먹기 딱딱한 반찬이 있으면 엄마나 할머니가 대신 꼭꼭 씹어주셔도 별 거부반응 없었습니다. 엄마 손이 약손이고 엄마 밥이 약밥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속 바닷새 새끼들은 반쯤 소화된 생선을 힘들게 게워내는 어미 새들의 수고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99.99% 멸균이라니 무조건 좋은 줄로만 믿고 가습기 세정제 안방에 날리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고통받고 있는지요. 일부러 아이 침대 옆에 두었던 부모들의 가슴 치는 자책은 시간이 지난다고 줄어들 수 있을까요? 음식점 행주 대충 닦은 식탁 위가 더럽다고 가지런히 세팅한 미백 휴지 위 수저는 과연 얼마나 덜 해로울까요? 배꼽에 낀 때 잘못 후벼 파다간 더 큰 병난다고, 좀 냄새나고 좀 더러워도 씩씩하게 잘만 뛰놀던 시골 코흘리개들, 그땐 아토피란 말이 있기는 했었던가요.
위생적으로 청결한 것 분명 중요하지만, 적당히 지저분함 좀 묻히고 사는 것도 어느 정도 괜찮지 않을까요? 박멸, 종식, 척결, 이런 극단적 개념은 자연의 눈으로 보면 무식한 언어였구나, 지난 3년 간 비싼 값을 지불하고 우리 배웠지 않았나요? 위드 코로나, 이번에야 처음 알게 된 섭리일까요? 위드 박테리아, 위드 바이러스, 인류 역사상 수도 없는 대가를 치르고도 무시해 온 무균의 신화. 우리가 건강한 똥을 눌 수 있는 건 우리 대장 안의 균들이 건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 우린 압니다.
강한 게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게 강한 거라 했던가요?
똥은 강합니다.
입에서 시작해 밑에 다다르기까지 효과 만점의 각종 소화효소, 타액, 위산, 담즙, 장내 미생물, 저작 운동, 연동 운동, 분절 운동, 강력한 탈수 과정까지 다 거치고도 살아남은 최후의 산물입니다.
거 교양 없이 드럽게 지저분한 얘기 한다고 눈살 찌푸리실까봐 교양인답게 고지 말씀 드리고 가겠습니다.
⚠️ 이하 글에선 해당 단어가 정상적으로 계속 사용될 예정입니다.
우린 반사적으로 똥 얘기를 꺼립니다.
사실은 어릴 때부터 젤 재밌어했으면서 말이죠. 방송에서도 '똥'이라고 자막을 못 쓰고 희한하게 글자에 '똥' 블러 처리를 하거나 ♧ 모양 그림으로 대체합니다. 굳이 그림으로 그린 게 더 더러워 보이는데두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관련 이야기를 해야 될 때면 배설물이나 대변 같은 한자어로 바꿔 부릅니다. 배설물이라 하면 좀 배워 보이고 분변이라고 하면 세상 물정 더 분별할 줄 알아 보이나요? 똑같은 생리현상인데 채널을 아무리 돌려도 걸신들린 먹방은 끝없이 튀어나오면서 우리 몸 건강히 작동하는 자연 증거는 쉬쉬하는 거 일종의 위선 아닐까요? 쉬쉬해서 말인데 귀여운 '끙가' 정도로 순치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호부호똥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똥을 똥이라 부르지- 못하는 똥길동이 되어서야 어디 소신껏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겠습니까.
티벳 사람들은 야크 똥을 땔감으로 씁니다. 아프리카 힘바족은 소똥으로 벽을 만듭니다. 바닷새들이 싼 똥이 축적돼 만들어진 구아노는 -새들이 떼로 사는 바위섬에 하얗게 페인트칠처럼 쌓여있는 그것입니다- 농업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늘려주는 천연비료로 쓰여, 한때 구아노 구하려고 남미에서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새똥 전쟁에서 진 볼리비아는 바다를 잃고 그만 내륙국이 되어 버렸습니다.
똥은 재창조의 원료입니다.
똥이 토양을 만듭니다. 똥으로 불을 지핍니다. 똥으로 집을 짓습니다. 똥으로 충해를 막습니다. 똥을 통해 자연이 순환합니다. 그래서 '또 + ㅇ', 원처럼 둥글게 또 순환하라고 그리 이름 붙였나 봅니다.
진딧물 똥은 개미에게 꿀입니다. 효모 똥은 우리에게 술입니다. 당을 에탄올로 바꾸는 효모의 대사 과정을 발효라는 멋진 용어로 바꿔 부르지만 그게 그겁니다. 앞에서 코알라 똥이 새끼에게 약이라고 했는데 우리네 똥도 실제 약으로 쓰입니다. 프로바이오틱스라고 장내 유익균이 어쩌고 유해균이 저쩌고 그런 얘기 언제부턴가 많이 하기 시작했죠? 유익 정상 장내세균을 이식하기 위한 똥 은행이란 데가 있습니다. 건강한 변을 기증받고 이식합니다. 소화장애뿐 아니라 노화방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어린 생쥐 똥을 늙은 생쥐에게 이식했더니 눈이 밝아지고 뇌가 젊어졌다나요. 심봉사 눈뜨는 소리 어디까지 믿어야 할진 모르겠지만, 대변 이식에 몇천만 원이라 하니 똥값이 금값인 건 확실합니다.
커피 좋아합니다. 비싸고 좋은 원두 여러 가지 있다지만 코피루왁이라고 들어보셨죠. 걘 왜 그리 비쌀까요?
세계 3대 똥 커피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사향고양이 똥 커피 ‘루왁’, 태국 코끼리 똥 커피 ‘블랙아이보리’, 베트남 사향 족제비 똥 커피 ‘위즐’. 이 중 젤 비싼 게 코끼리 똥 커피인데, 원두 1kg 얻기 위해 코끼리한테 커피 열매 33㎏을 먹인다니 가성비 정말 꽝입니다. 그래서 얼마냐고요? 커피 한 잔에 6만 원입니다.
순수 똥 양으로만 치면 코끼리가 단연 1등입니다. 매일 많게는 100kg을 싸는데 똥 덩어리 하나 무게가 1㎏이 넘습니다. 대나무 잎 편식가 팬더는 하루에 똥을 마흔 번 누는데 반대로 나무늘보는 일주일에 딱 한 번 내려와 일 보고 재빨리(!) 다시 올라갑니다. 변 보다가 퓨마한테 변 당하기 딱이거든요.
누군가 그랬다고 하네요. 예술은 정신적 똥이라고.
뭘 폄하하려는 말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기 똥을 정말 예술적으로다가 차용한 문학작품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 자유 지성인이었던 연암 박지원은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에서 분뇨를 져나르는 똥장수를 예덕 선생이라고 높여 불렀습니다. 예절 예(禮) 자가 아닙니다. 예덕의 예는 더러울 예(穢) 자입니다. 벼 화(禾) + 세월 세(歲)입니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고대 예맥족의 한자도 상동한 더러울 예(濊)를 씁니다. 먹고 썩어 거름 되고 게서 다시 움트면서 세월이 흐른 겁니다.
똥이라고 다 더럽고 냄새나는 건 아닙니다.
호랑나비 애벌레의 똥은 향긋한 냄새가 납니다. 탱자나무와 귤나무 잎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불쾌한 똥냄새의 원인물질은 인돌(indole)이라는 방향족 화합물인데 미량의 순수한 상태에서는 꽃냄새가 납니다. 옅으면 꽃향, 짙으면 똥내. 말 그대로 과유불급입니다.
용연향이란 것도 있습니다. 용연향은 향유고래의 창자 속에 먹고 남은 오징어 찌꺼기가 돌처럼 굳어진 것입니다. 이 고래 변비를 알코올에 녹이면 최고급 향료가 됩니다. 최고급 향수의 원료가 고래 똥이란 겁니다. 가치도 엄청납니다. 작년에 태국의 어떤 어부가 우연히 30kg짜리 용연향 덩어리를 건졌는데 15억 원 가치로 판정됐다고 합니다. 똥이 로또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똥 얘기가 넘 길면 그럴 것 같아 멋진 우주적 사건을 상기하며 이만 맺으려 합니다.
우리 모두는 별똥별에서 왔습니다.
We are all made of stardust.
수미쌍관 진짜 마지막으로, 코알라 친구 웜뱃의 귀여운 '큐브 똥'으로 마무리합니다.
Wombat poop cube. Why so curio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