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2월 넷째 주

일기를 쓰기 시작하다

by Baker Lee

2월 23일 화요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희망도서를 신청했는데 구입을 했으니 빌려가라 문자가 온 거다.


요즘 나는 책을 사지 않는다. 집에 있는 책도 다 정리하는 중이다. 책이란,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산다고 해서 다 읽는 건 아니니까.


주로 거래하는 인터넷 서점을 가끔 보다 보면 신간 중 읽어보고 싶은 책이 나온다. 그럴 때는 공공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한다. 한 달에 두 권까지 신청할 수 있다. 신청하고 대략 2주 정도 시간이 지나면 책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몇 주 전에 신청한 책은 <서점 일기>. 스코틀랜드 중고 서점 주인이 쓴 1년 간의 일기다. 저녁 독서 시간으로 빼놓은 30분 동안 책을 읽었다. 이렇게 솔직한 일기라니.


좋은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며 늘 뭔가 트집 잡을 것을 찾아 헤매는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싫으면 싫은 느낌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서점 주인의 신랄한 말투가 너무 재미있었다.


올 한 해 할 일이 생겼다. 일지를 남겨야겠다.


2월 24일 수요일


내가 9시 30분에 문을 열고 3시까지 근무하는 이 카페는 개업한 지 9개월 되는 지방 읍내 카페다. 카페는 개인 소유는 아니다. 법인이고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운영 주체는 민감독과 나. 월급을 받지 않는 협력 멤버가 있는데 민감독의 남편 종업원 최 씨와 내 남편 포토 박이다. 종업원은 카페 운영 경험이 있으며 지금도 개인 카페를 하고 있다.(올 4월까지만 운영할 계획) 주된 업무는 카페 영업. 민감독은 영상 촬영 편집 일을 주로 한다. 포토 박은 사진 스튜디오 운영 경험이 있으며 카페 절반은 스튜디오로 꾸몄다. 혼자 공부하고 배우면서 빵과 케이크를 만드는 나는 베이커 Lee이다. 그래서 이 카페는 스튜디오가 있는 카페다.


부부와 갓난아기를 안은 할머니가 들어왔다. 아메리카노 아이스와 딸기 스무디는 테이크아웃 잔에 주문하고 아포가토는 매장에서 먹었다. 음료를 10%나 할인해주면서 주문금액의 5%나 적립해주는 회원가입을 권유하였으나 거절당했다. 다시 올 손님들은 아니었나 보다. 카페 곳곳에 걸린 인물사진들을 훑어보던 할머니는 사진은 예약을 하고 찍는 건지 물어보았다. 가족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자주 방문하는 정과 친구는 늘 먹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커피를 내리는 사람은 나와 민감독과 종업원인데, 이미 3명이 내려주는 커피를 맛본 그들은 커피 맛의 순위를 매겼다며 원픽은 바로 나라고 말해주고 쿨하게 퇴장했다.


2월 25일 목요일


인근 면 단위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대도시처럼 몇십 명, 몇 백 명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한 명이라도 나오면 다들 겁을 먹고 집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비가 오려고 날도 흐린 데다 카페에는 손님이 없어서 전반적으로 분위기 다운.


2월 26일 금요일


문화예술 지소(지역 사무소)를 운영하는 병이 처음 이곳을 들렀다. 그가 대안장터를 꾸릴 때 나는 마카롱을 팔았고 그가 농산물 꾸러미를 배달할 때 누룽지를 팔았다. 이제 병은 문화예술 쪽 사업을 주로 하고 있다. 사장님을 만나러 왔다고 하는데, 아직 카페가 누구 사장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카페 찐 단골 장이 왔다. 근처 자동차 정비소 부품 사장 장은 늘 첫 번째 카페 손님이다. 단골인 것은 좋으나 말 상대를 해줘야 해서 가끔 피곤할 때가 있다. 오늘은 마침 병이 있어서 장의 말 상대가 되어 주었다. 무척 고마운 일이다.


스튜디오는 사진 클래스를 운영한다. 지난해 2개의 클래스를 운영했고 수강한 사람들이 모여 사진 전시회도 조촐하게 열었다. 코로나 상황이라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할 수가 없었는데, 그래도 전시회가 끝나갈 때 초청 강연회를 열었다. 그게 올 1월의 일이다. 포토박과 친분이 있는 작가가 와서 음식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2박 3일 일정으로 이곳에 와주었고 우리는 강연료와 식비, 숙박비를 내주었다. 근처에 문을 연, 핫 한 빵집에 데려가 빵을 사주었는데, 결국 작가의 인스타그램에는 우리 카페에 대한 소개 대신 빵집만 등장했다. 스스로 팔로워도 적고 영향력은 1도 없다며 한껏 낮은 자세로 말했음에도 홍보가 하나도 필요 없는 빵집만이 나왔다는 사실에 조금 기분이 안 좋았다. 오늘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가 또 그 빵집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기분이 완전히 상해버렸다.


밤 10시 넘어 재난 문자가 왔다. 한 카페를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내용이다. 바로 종업원이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카페다. 종업원은 본인 카페에서 3시까지 일하고 알바에게 자리를 내주고 여기 읍내 카페로 넘어와서 12시 마감까지 일을 한다. 확진자가 다녀간 시간은 오후 3시 40분이라 동선이 겹치진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검사를 했다고 한다. 결과는 내일 오전에 나온다.


2월 27일 토요일


아침에 집에 물이 안 나왔다. 마을 상수도에 문제가 생겼는지 이장에게 문의했다. 마을 상수도 물탱크를 이장이 왔다 갔다 했으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마당에 있는 계량기 함을 열어 수도꼭지를 틀었다 잠갔다를 해봤더니 갑자기 물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밥을 못 먹고 나왔다. 카페에서 시리얼을 먹었다. 카페에는 우유가 항상 있으니 비상식량으로 시리얼을 구비해놓길 잘한 거 같다.

찐 단골 장이 10시 오픈 시간 전에 왔다. 아침에 물이 안 나온 얘기를 건넸다. 섣불리 꺼낸 그 이야기가 시골 상하수도 공급을 설명하고 상수도에 넣어오던 불소를 제거하는 운동을 해서 결국 불소를 제거한 이야기로 이어져 수영장 소독 문제를 걸고넘어지고 공무원의 안일한 태도를 문제 삼다가 청년들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는 곳에서 끝맺었다. 내가 만든 케이크를 얻어먹은 대가다.


종업원의 검사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으나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격리 대상이 되었다. 결국 3월 9일까지 일을 못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3시 이후 교대하고 나오면 되는데 그날따라 손님이 있어서 좀 더 일을 하고 있던 와중이었단다. 확진자의 친구가 음료를 주문했고 그 주문을 종업원이 받아서 음료를 건네었으며 확진자와 친구는 카운터 바로 앞 테이블에서 마셨던 것. 종업원은 주로 코 아래 마스크를 쓰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 버릇을 고쳤으면 좋겠다.


몇 번을 왔는지 알 수 없는 손님이 회원가입을 늦게 알려주었다며 분개했다. 개업 초반에는 열심히 회원가입을 권했는데 이제는 잘 안 하게 된다. 나중에 곰곰이 할인율을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너무 많이 할인을 해주고 있으며 적립 또한 도가 지나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이 카페의 장점이라며 민감독은 말하지만 어쨌든 과한 건 사실이다. 이제 와서 바꿀 수가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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