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이 오다
3월 1일 월요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삼일절 휴일이다. 일요일은 내가 일을 하지 않지만 카페는 연중무휴 돌아간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쇼케이스를 살펴본다. 주로 세 가지 종류의 케이크를 진열하고 있다. 티라미수만 남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당근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근처 마트에 가서 당근을 사 왔다. 당근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오일도 부족했다. 한창 시트를 만들던 와중이라 10그람 모자라는 오일은 빼고 작업을 마쳤다. 다행히 맛에는 큰 차이를 못 느꼈다. 내 기준에서.
치즈케이크도 반죽 시작. 항상 사용하던 앵커 크림치즈가 품절이라 다른 종류로 구입했는데 지난번 구울 때 모양이 영 이상하게 나와서 재료가 바뀐 탓이겠거니 하고 있다. 반죽기 날을 다른 걸로 끼워서 섞어봤는데 제대로 모양이 나왔다.
내가 만든 스콘을 좋아하는 경이 종업원의 안부를 물었다. 음성으로 나왔지만 자가격리 중이라는 말을 듣고 전화해서 놀려먹어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보드게임 멤버 혜, 정, 은이 안주를 싸들고 낮술을 하며 게임을 하러 모였다. 나에게도 마시라며 테라를 사줬다. 곧 60을 바라보는 그들 멤버들은 최근 한창 진행 중인 임플란트 치료와 손주들에 빠져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아직은 나에게 먼 것 같은 이야기. 그러나 곧 닥칠 일이다.
새로운 디저트 메뉴로 크로플을 만들까 해서 테스트로 6개 구워 먹어보았다.
3월 2일 화요일
수집해 놓은 계란 흰자가 충분해서 언제든 마카롱 작업이 가능하게 된 지 꽤 시간이 지났다. 전반적으로 잘 팔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구색을 맞춰놓느라 두 가지 종류를 만들어 놓는데, 항상 시작하기 전에는 망설여진다. 조금 너저분하게 늘어놔야 하고 작업하는 중간에 손님이 와서 흐름이 끊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으로 손님이 없을 것 같은 날을 정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
둘째 딸의 친구 엄마인 숙이 와서 잠깐 수다를 떤 것 외에는 다행히 오전 내내 손님이 없어서 작업은 순조롭게 마쳤다. 이제 굽는 일만 남았다.
디저트 만드는 카페 치고는 가진 오븐이 꽤나 검소하여 한 번에 한 판만 넣을 수 있다. 그러니 건조하고 굽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내 퇴근시간 직전까지 끝나지 않은 때도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만든 양이 많지 않으니 시간 내에 마칠 수 있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라면 인턴 직원 설이 출근했다는 것. 아마도 누군가 이 회사의 재정상태를 살펴본 다면 과연 직원 월급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이지만 각자 분야의 자유로운 탐색을 하기 위해 직원이 있어야겠다는 결론을 냈다. 카페라는 게 보기는 좋아 보여도 결국 감옥 같은 것이라서 자리를 한 시라도 비울 수가 없다. 손님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숨통이 트이는 건 사실이니까.
곧 직원은 될 것이지만 한 달 동안 카페 업무를 익힐 시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것저것 설명을 많이 했지만 결국 부딪쳐서 일해봐야 확실히 배울 것이다. 겨우 커피 내리는 거 하나 배운 후 처음 혼자 카페에 있었던 작년의 나를 생각하면 그렇다는 거다.
종업원이 없는 관계로 커피 내리는 건 알려주지 못했다. 포스기 사용법을 설명하다가 손님이 준 돈을 입력하고 자동으로 잔돈을 계산하는 방법을 설이 찾아내 알려주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걸 몰라서 안 돌아가는 머리로 계산을 하고 포인트로 삭감해가며 되도록 잔돈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데. 인턴의 실력이 나보다 더 뛰어나길 기대해볼 만하다.
4월까지 운영하기로 했던 종업원 카페는 자가 격리해야 하는 9일까지 휴업하고 단골에게 나눠준 커피 쿠폰을 사용할 시간을 준 후 이달 내로 정리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크로플 8개를 만들어서 또 다 먹었다. 판매를 위해 포크와 나이프를 구입했다.
3월 3일 수요일
어제 퇴근 이후로 케이크가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너무 오래 진열한 듯한 티라미수를 해치워야겠다. 단골 장이 같이 없애주었다.
카페 건물 위층에는 문중 사무실이 있다. 매일 출근하는 어르신 두 사람이 있지만 그 외에 많은 어르신들이 들락날락하신다. 회의도 자주 열리는 것 같은데 가끔 대규모 어르신들이 카페에 들이닥쳐서 낮술로 맥주를 마실 때도 있고 점심 식사 후 차를 마실 때도 있다. 한동안 아이스크림을 많이 드셨는데 요즘에는 쌍화차만 주문한다. 우수 고객이지만 목소리가 크다는 단점이 있다.
인턴 설이 민감독에게 커피를 배웠다. 민감독이나 나나 바리스타에는 근접도 하지 않은 실력인데 남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좀 우스웠다. 본인의 방법이 정공법인 듯 말하는 게 거슬려 지난번 어떤 손님이 내 커피를 원픽으로 손꼽아준 이야기를 해주었다.
“커피를 연하게 먹는 사람이었나 보지.”
“아니, 아주 진하게 먹는 사람이었는데!”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화였다는 것을, 말을 내뱉은 순간 직감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침대에 누울 때까지 후회로 가득했다.
자다가 문득, 크로프 판매를 위해 포장 종이가 필요하다는 것이 생각났다. 검색을 하느라 잠을 설쳤다.
3월 4일 목요일
출근하고 보니 포스기에 새로운 메모가 붙여있었다. “일 매출 60만 원 월 매출 1,800만 원 연매출 2억 1,600만 원”
이곳의 현실을 모르는 희망에 가득 찬 설의 의지가 담겨있다. 지난달에 점집에 갔었는데, 자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카페에서 일하면 대박 날 것이란 말을 했다는 것. 그 외 조언들은 들으나 마나 한,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들이었지만 그 말만 믿어보기로 했다고.
내가 하고 있는 바느질 모임이 있는 목요일이다. 단골 장이 와서 이런저런 시답잖은 얘기를 하는 중에 바느질 회원 희가 와서 장에게 이미 들었던 얘기를 또 들어야 하는 고역을 치렀다. 모임이 끝난 후에는 설이 내려주는 커피를 기꺼이 구입해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밖에 나가 점심을 먹었다. 인턴의 힘이다. 비록 일이 서툴러서 혼자 두고 나갈 수는 없지만.
남은 인생을 버티기 위한 마지막 프로젝트, 집을 짓기 위해 농어촌 주택 개량 사업을 신청했다.
3월 5일 금요일
지방 소도시는 서서히 인구 소멸 화가 진행 중이다. 농촌 기반 지자체에서는 그래서 청년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모든 사업은 청년들에게 제공된다. 대도시와 달리 여기서의 청년이란 만 50세가 안 된 사람까지 포함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제 어디서도 청년 대접을 받지 못한다.
올해 나온 공모 정책들 중 청년들이 모여 활동하는 동아리들에게 지원해주는 것이 있다. 아는 청년들에게 지원서를 던져주었고 몇 가지 아이디어를 첨가하여 잘 작성하도록 압력을 넣었으며 선정이 되면 나 대신 활발한 활동을 해 줄 것을 부탁했다.
3월 6일 토요일
설의 출근 이후 카페 유리가 훤해졌다. 남자 화장실에 처박아 두었던 화분들이 빛을 보고 물을 먹기 시작했다. 민감독과 내가 공통적으로 잘하지 못하는 것은 식물 키우기. 다른 점이라면 못하기 때문에 화분이 들어오면 즉각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민감독은 분명 죽을 것을 알면서도 카페 안이 허전하지 않게 식물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그냥 죽을 때까지 식물 본연의 책임을 다하도록 놔둔다는 것이다. 이제 돌볼 사람이 나왔으니 여기서 죽어나가는 식물은 사라지리라.
카페가 궁금해 들렀다는 한 남자는 목에 다이아몬드 문신이 있었다. 어머니가 사는 집에 주말마다 내려와서 농사를 짓는다고 자신을 소개하고는, 오며 가며 운동을 하면서 카페를 눈여겨보았다고 한다. 사진에 관심을 보이고 카페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다고 몸 둘 바 모르게 칭찬을 했다. 작년 3개월 동안 셀프 인테리어 한 보람이 있다고나 할까. 뭔가를 마셔야 하는데 저녁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결국 아무것도 먹지 않고 가버렸다.
몇 주 전에 민감독이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라고 하루 근무를 부탁했었는데, 자가격리를 당해 나의 초과근무는 사라졌다. 겨울 내내 손바닥을 지배하던 주부 습진이 없어질 만큼 손님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