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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세대』부터 브런치에 대한 소회까지

글이 조금 정신없어요

by 이지

요즘은 책을 읽고 있다.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세대』라는 책이다. 2024년에 나온 비교적 신간으로,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기도 했고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많이 되었던 작품이다. 한 5년 전부터 조너선 하이트가 책에서 일컫는 '화성의 아이들'을 나도 만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개인의 문제인가 싶었던 것이 그런 아이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되면서 사회의 문제인가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그 고민을 조금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은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을 통해서였고, 이후 책을 읽으며 '화성의 아이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자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만났을 때 더 효과적으로 소통해 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화성의 아이들'이라는 표현에 대해 설명을 조금 더 덧붙이자면, 아동기 시절을 스마트폰과 함께 보낸 아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90년대 생인 나도 z세대에 포함이 되는데도 (그러나 모든 세대가 그렇듯 불분명하다.) 이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다. 2014년에 '인스타그램'이라는 앱이 생기면서 우리의 스마트폰 이용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었는데, 나는 이미 그때 성인이었다. 고로 나의 아동기 시절에는 해봐야 플립폰이 있었고, 그마저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모든 아이들에게 보급되었다. 더 어릴 때의 나는 휴대폰도 없이, 부모나 다른 어른들의 감시도 없이 친구들과 함께 학교 운동장과 놀이터에서 뛰어놀았다. 우리가 만든 이상한 놀이들과 규칙들을 따랐고, 친구와 싸웠다가 화해했고, 면대면의 상호 작용 방식을 익히는 데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화성의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유아동기를 보냈고, 부모나 다른 어른들의 감시를 받으면서만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허용된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이상한 놀이들과 규칙들을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은 어른들의 기준 하에 적합해야만 따를 수 있고, 면대면 대신에 스마트폰을 통한 1대 다자의 소통에 더 익숙하며, 친구와 싸웠다가 화해하는 것도 우리가 겪었던 그것들과는 대단히 다른 방식이다.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 방식보다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을 어떻게 피력하는지, 또 어떻게 숨기는지 등에 더 익숙한 아이들은 거의 우리와는 다른 행성에서 자란 것과 비할 바 없어서 '화성의 아이들'이라고 비유하게 되었다.


어쨌든, 『불안세대』라는 책은 스마트폰 기반의 아동기를 보내지 않은 우리에게도 굉장히 유효한 책이다. 아직 마지막 장까지 다 읽지 않았지만 (책이 좀 어려워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기 때문에 좀 느리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유효했다. 소셜 미디어와 스마트폰, 온라인 게임 등은 물론 아동기의 아이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지만 성인인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책을 읽으며 매 순간 '헉, 나도 이런데!' 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디지털 디톡스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며 조금씩 실천해보고 있다.


우선은 방에 있는 멀티탭의 정리함을 샀다. 이게 뭔 디지털 디톡스냐고 묻는다면... 한국말을 끝까지 들어보시라... 원래는 전선이 너저분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전선 끄트머리(기계에 연결하는 부분)를 최대한 당겨왔다. 모든 기기들은 내 침대에 올려져 있었다. 잠 자기 전이나 잠깐 깼을 때, 혹은 아침에 눈을 떠서 누워 있는 상태로 팔만 뻗으면 모든 기기들을 집을 수 있었다. 휴대폰은 물론이고 아이패드, 애플 워치, 에어팟, 이북 리더기 등등을 말이다. 고로 잠 자기 전 스크린 타임이 늘면서 수면에 방해가 됐고, 잠깐 깼을 때 릴스라도 한 편 봤다가는 영원히 다시 잠들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해야 했다. 혹여나 잘 자고 일어난 후 개운한 때라도 휴대폰을 집으면 영영 소셜 미디어에 갇혀 (일정이 없을 땐) 1~2시간씩 날려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멀티탭 정리함에 기계들을 거치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걸로 골랐다. 모든 기계를 이제 그쪽에 올려둘 생각이다. 누워서 절대 손이 안 닿는 거리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몸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불편한 동작 하나를 추가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기기들의 방해를 덜어보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휴대폰에서 불필요한 알람들을 모두 껐다. 최저가를 알려주고 광고를 띄우는 쇼핑앱, 잘 사용하지 않는 메신저, 별의별 것을 다 알려주는 소셜 미디어 앱 등이 주로 타깃이었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에 대한 비판이 주인 책을 읽으면서도 잠깐 진동이라도 울리면 눈이 돌아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현타'가 왔다. 내 주의력을 이렇게 쉽게 뺏기다니... 억울한 심정이 되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모든 알람을 끌 순 없으니 최대한 불필요한 것들이라도 줄여보자 싶었다. 확실히 휴대폰에 알람이 덜 울리니 모든 면에서 집중을 하는 게 편하다. 이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두고 있다. 물론 앞서 말했듯 모든 연락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 최대한 가까이 있되 눈에만 잘 띄지 않는 식이다. 예를 들어 책상이라면, 책상에 휴대폰을 올려는 두되 그 위에 필통을 올려서 가려버린다든가 하는 식이다. 희한하게도 휴대폰이 눈에 띄면 열어보고 싶다. 무아지경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도 말이다. 어, 나 아까 릴스에서 이런 거 봤던 것 같은데... 맞나? 하고 괜히 자꾸 손이 간다. 내 무의식을 의식이 이길 수 없다면 무의식이 작동할 수 없게 얇디얇은 방어막이라도 쳐보고자 했다. 생각보다 효과는 있다. 휴대폰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시야에 띄는 것보다 유의미한 집중력 차이를 느꼈다. 혹여 궁금하시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니 한 번쯤 시도해 보시길 바란다.


이게 재테크랑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신다면... 자기 발전도 재테크니까?라고 답해보겠다. 내 마음을 울리고 진동시키는 책은 무수히 많지만, 내 실생활에까지 영향을 주는 책은 잘 없지 않은가. 그런데 『불안세대』가 그 일을 해내고 있다. 타인을 이해해 보려 읽기 시작한 것이 나 자신의 반성까지 이어지는 게 참으로 신묘해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맞는 말'의 향연이라 몇 장은 찢어내서 침대 머리맡에 붙여두고 싶을 정도였다. 책에 낙서나 밑줄 긋는 걸 잘하지 않지만, 이 책은 정말 공부하는 마음으로 형광펜까지 그어가며 읽고 있다. 이 책에 대해서 뭔가를 쓰고 싶은 마음이 그득그득해져서 결국에는 이렇게 브런치에까지 글을 쓰게 되었다. 혹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있다면 정말로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책이다.


신기하게도 재테크의 일종으로 한창 열심히 하며 성과를 올리던 블로그는 멈췄고, 매 발행마다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감에 우거지 상으로 쓰던 브런치는 여전히 꾸준하게 쓰고 있다. 목적이 있는 글과 솔직한 에세이의 차이일까? 브런치가 재테크까지 이어질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은데, 그쪽으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감이 잘 안 온다. 이 브런치 북만 해도 재테크 관련이라고 허울 좋게 시작했지만 또 그렇게 통일성이 있지는 않으니. 사람들은 어떤 글을 읽고 싶을까? 고민을 해본다. 블로그를 쓰면서는 내가 발전한다는 느낌보다 스스로를 소모한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고, 브런치는 신기하게도 발전한다는 느낌을 준다. 매번 통일성 없는 에세이가 되어버렸는데도 그렇다. 어쨌든 긴 글을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는 상태로 연재를 하다 보니 생각을 다듬고, 글을 다듬고 하는 게 도움이 되는 걸까?


전에도 말했듯 나는 이 브런치 북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매주 어쩔 수 없이 나의 재테크 현황을 돌아보고 있는데, 그것도 참 도움이 된다. 뭔가 조금이라도 수익을 내거나 새로 알게 되는 게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으니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꾸만 재테크와 관련한 것들을 들여다보게 된다. 예전 글에서 얘기했던 '공부 창구'를 열어놓은 것들이 자꾸 강제적으로 들이닥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최근엔 '실현 수익만이 진짜 수익이다.'는 말을 알게 되었다. 몇 푼 안 되는 시드머니지만 주식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매번 빨간색에 몇 퍼센트 수익률이라고 써져 있는 화면만 보며 만족해하다가 실제로 고점에서 판매를 하고 실현 수익을 보니까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몇 푼 안 되는 돈이라도 팔아야 내 돈이고, 그렇게 돈으로 만들어야 다음 주식을 살 수 있다. 묵혀놓고 장기 투자를 하는 게 분명 큰 도움이 될 때도 있겠지만 시드머니가 적은 입장에서는 5~10%의 수익률을 내고 판 다음 새로운 주식으로 또 5~10%의 수익률을 올리며 시드머니를 조금씩 불려 나가는 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란 판단이 섰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장기 투자의 경지에도 오를 수 있겠지. 어차피 지금이야 시드머니가 적기 때문에 버는 돈들을 고스란히 재투자하고 있지만, 이걸 지속하다 보면 정말로 수입이 생기고 주식으로 번 돈으로 치킨도 사 먹고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이렇게 브런치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블로그도... 언젠가 다시 시작할 것이다. 나를 너무 소모하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하면 소소하게 재테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창구라는 걸 이미 몸소 알았으니 말이다. 물론 '너무 소모하지 않는 선'을 찾는 데에 또 많은 시행착오가 기다리고 있겠지만 'done is better than perfect' 아니겠는가. 스픽도 40일째 불꽃을 연속으로 태우며 열심히 하고 있고, 책도 꾸준히 읽고, 소비 통제도 나름대로 습관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모든 것이 이 브런치 북으로부터 파생된 좋은 영향들이다. 매주 누군가 내 글을 기다리며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도 그렇다. 읽는 사람이 있나? 싶은데도 매주 발행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참 신기하다. 인간에게는 마감이라는 게 필수적인 걸까 싶기도 하다. 오롯이 글을 쓰기 위해 내 생활을 갈고닦는 경험은 처음이라 기분이 묘하다. 어릴 적 영화 연출 수업을 들을 때 '남에게 보여지는 글을 꾸준히 쓰라'라고 말했던 선생님들이 원했던 효과가 이런 것이었을까?


이 브런치 북의 끝이 어디일지는 잘 모르겠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브런치 북의 소개 문구를 수정해야 하나 고민한다. 재테크를 너무 넓은 의미로 정의했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경제, 경영 등과는 전혀 무관한 예술 전공 출신이 제대로 된 재테크를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니까 이렇게 저렇게 경험을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대에 '돈'을 공부한다는 것은 세상을 공부하는 것과 동의어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쓴 모든 문장은 이 브런치 북에 어울리는 글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나의 이 공부가 누군가에게 울림으로 가닿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그러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이 글을 쓴다. 그리고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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