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변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남편 환자침대를 둘 57평 아파트 넓은 거실 가운데에는 검은 그랜드피아노가 자릴 차지하고 있었다.
동향이어서 그런지 집전체가 어둡게 내려앉아있었다.
혹은 오랜만의 시집 방문이었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손에 들고 있던 욕창방지 매트의 가방이 내 마음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시집으로 들어갈 남편 퇴원 준비는 만만치 않았다.
주소지가 바뀐 보장구¹와 활동보조인² 신청을 위한 장애심사가 까다롭게 진행됐다.
남편의 환자식, 휴지 키친타월, 기저귀, 비닐장갑등의 환자용 물품 모두를 주문해 준비해둬야했다. 남편이 쓸 식기도 따로 장만해 달라고 하셨고 그것을 소독할 자외선 소독기까지 주문 했다.
경기도 위아래 끝에서 끝. 차로는 한 시간 반, 대중교통으로는 두 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 한때 남편 없이도 주말마다 꼭 1박을 하며 찾아갔던 그 길. 이제 그 길을 다시 혼자 다녀야 했다.
시모는 우리 집으로 오시는 대신, 본가에서 남편을 보겠다고 했다.
예전의 폭력적인 말투 그대로, 당신 아들을 저렇게 만들어놨다는 비난을 더 자주 받아야 할 테지만 다른 대안은 찾을 수 없었다.
시집에 남편을 두고 돌아오는 날, 남편은 나에게 걱정 말라며 주말에 보자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일주일 만에 응급실에 실려갔고 거기서 바로 중환자실로 보내졌다.
폐렴이었다.
남편의 목까지 올라온 마비가 연하장애³를 일으켰다. 뭔가를 먹을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음식물의 일부가 기도로 조금씩 넘어가고 있었고 그로 인해 생긴 염증이 호흡기 전체로 번지고 있었다.
자가호흡이 안 되는 응급상황 속에서 목에 구멍을 뚫고 인공호흡기를 연결해야만 했다. 남편은 중환자실에서 잘 버텨주었고, 급성 폐렴도 차츰 호전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뇌간 연수⁴에서 발견된 병변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남편이 다시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중환자실에서 버텨준 남편을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남편이 일반병실로 올라오자마자 나는 혼자 서울대학교 병원 신경외과로 찾아가 최대한 빨리 뭐라도 해달라고 사정했다.
담당교수님은 2주 뒤로 방사선 치료 일정을 잡아주셨다.
그 주말 시부의 생신이었다. 케이크를 사들고 시집에 들렸다.
시집 거실엔 남편이 있어야 할 침대가 텅 비어 있었다.
"너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시부가 나에게 물었다.
"저거 앞으로 사람 구실 못해. 돈만 많이 들어갈 거다. 우리도 돈이 없어. 여기다 갔다 놓고 뭘 어쩌겠다는 거야."
나는 시모 시부 마저 우릴 외면할까 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제가 엊그제 서울대병원 방사선과 치료를 예약을 하고 왔어요. 이제 조금만 더 회복하면 거기서 추가 치료를 할 수 있어요. 도와주세요"
시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용없어.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살아봐야 뭐 하겠어"
"애들이 있잖아요! 아빠가 있는것과 없는것을 어떻게 비교하겠어요. 있어만 줘도 충분해요!"
나의 울음 섞인 호소에 시부는 이제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이 중환자실에서 위기를 겪고 있을 때,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지인이 가보라는 유명한 명리학자를 만났다. 점쟁이는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일반병실로 올라온 남편에게 그때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년엔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좋아진데"
남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공호흡기를 달아 목에 구멍이 난 상태여서 남편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문자도 못하고 전화도 못하니 간병인이나 시집식구들의 도움이 없으면 안부를 물을 수도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서울대학교 병원 신경외과 교수와 면담한 녹취를 들려주며 빨리 회복해서 방사선 치료를 받자고 했다.
하지만 방사선 치료는 연기됐다.
남편은 폐렴이 재발해 다시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아이들과 있을 때에는 아이들에게 집중했고 출근을 해서는 미친 듯이 일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아이들과 회사, 남편과 병원을 오가는 전화와 메시지에 답했지만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 내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중환자실에서 온 전화 한 통이 나를 순식간에 병원으로 소환해 얼어붙게 했다.
"안녕하세요. 보호자님이시죠? "
"방금 환자분 어머님이 환자 인공호흡기를 떼 달라고 부탁을 하셨어요. "
"혹시 알고 계신가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아니, 아니에요. 떼면 안 돼요. 절대 떼면 안 됩니다. 지금 호흡이 어려운 거지 다른 건 회복하고 있잖아요. 저희 어머님이 뭔가 오해를 하시고 그러셨을 것 같아요"
간호사는 안심했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죠? 저희가 이상해서 전화를 드려봤어요.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연명치료를 안 하시겠다고, 인공호흡기를 떼 달라고 하셔서요."
"제가 어머님께 다시 잘 설명드릴게요. 저희 남편 절대 포기하면 안 돼요. 방사선 치료도 받아야 해요."
나는 제차 간호사에게 남편을 부탁했다.
시모가 왜 그런 요청을 했을까?
어떻게 이야기하면 시모가 납득할 수 있게 상황을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다가 시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돈은 걱정 마세요. 제 월급으로 병원비와 간병인 비도 다 내고 있고 부족한 것은 아범 장애연금 90만 원으로 보충하면 돼요. 그리고 활동 보조인 바우처가 325만 원 나올 거예요. 그걸로 사람 구해서 도움 받으면 꾸려나갈 수 있어요." 나의 말에 시모는 안심하는듯 했다.
전화를 끊었지만 두근거리는 심장은 '현재에 머무르기' 따위로 진정될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떨리는 손에 약통 감추고 회사사람들 몰래 여자화장실 마지막 칸으로 갔다.
화장실 변기에 앉으니 시모, 시부의 얼굴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말도 안 돼'
아무것도 모르고 병원에 누워있을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토요일 아침,
친오빠와 함께 남편이 있는 병원으로 갔다.
대학병원 교수인 오빠가 시모에게 설명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오빠는 그곳 의료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의 부탁대로 시모에게 지금 남편의 상태가 연명치료 상태도 아니며 위급한 상태는 넘겼다고 의사로서 설명했다.
하지만 시모는 오빠의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본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생전 찾아오지 않던 애가 이제 와서 뭐 하는 거냐, 내 아들이 번돈을 얘가 모두 쓰고 있지 않냐"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오빠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보고 급하게 시어머니의 말을 막았다.
시모의 왜곡, 억측이 가득한 오랜 레파토리에, 오빠가 흥분해 상황이 나빠질까 싶어 서둘러 오빠를 돌려보냈다.
다시 남편이 있는 병실로 올라왔을 때,
시부와 시누도 도착해있었다.
인사를 드리자 나를 기다렸다는듯이 앉아있던 간병인 보조 침대에서 모두 일어났다.
남편은 잠들어 있었다.
"너, 이리로 따라와"
시부가 나에게 손짓하며 병실을 나갔다.
병동 로비에 도착하자 시부는 나에게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내앞에 시부와 시누가 섰고 시모가 내 옆쪽에 앉았다.
시부와 시모가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애를 저지경을 만들어 놨어!"
"너 이제 어떻게 할꺼야!! 우리 아들 저렇게 만들어 놓고 어떻게 할꺼냐고!!"
"생전 교회도 안 나오고 헌금도 안 내고, 이제 와서 우리한테 쟤를 버려?"
"네가 꼬셔서 쟤가 저렇게 된 거자나!"
병동의 환자들과 간병인들이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시부와 시모는 사람들이 모여들자 더 큰소리로 손짓을 하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년이 남편 잡아먹는 년이예요! 남편 단물 다 빨아먹더니, 쓸모 없어졌다고 다시 우리한테 버리는 년이야! 이년이 아주 나쁜년이야!"
팔장을 끼고 있던 시누는 모여드는 사람들을 향해 다른 쪽으로 가라며 손을 휘저었다.
나는 남편에게 인사도 못하고 정신없이 도망쳐 나왔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 한동안 병원 1층 구석에 숨어있었다.
시부, 시모의 욕설이 나오던 그 거친 입과 이빨,
작정하듯 사납게 치켜올라간 핏줄선 흰자위와 탁한 눈동자가,
한동안 내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엄마 언제와'
큰아이에게 메세지가 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운전 할 수 있을까. 애들한테 가야하는데.'
떨리는 손바닥을 내려다 봤다.
주먹을 세게 쥐니 괜찮을것 같았다.
남편이 퇴원하는 날,
지난 다구리에 정신을 못 차리던 나를 대신해 엄마가 병원비를 정산하고 오시겠다 했다.
밀린 업무에 연차도 내기 힘들었던 차였다.
감사와 걱정이 교차됐다.
혼자 가시지 말라는 나의 말에 외삼촌이 엄마와 함께 나섰다.
엄마는 남편에게 “애들 엄마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애들 엄마가 그렇게 말하던가요?“라고 반문했다. 엄마는 “당연하지”라고 답했지만, 남편은 여전히 못 미더워하며 휠체어 상태 그대로 차에 올라탔다고 했다.
그리고 시부는,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엄마와 삼촌 앞에서도 소리를 질렀다.
엄마와 삼촌은 그제야 당신들의 딸과 조카가 어떤 일을 당하고 있었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삼촌은 이제 저 사람들과 상종하지 말라고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고민 끝에 시누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사위를 집으로 보내라. 아내에게 주먹질하는 바깥사돈의 폭력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나에게 직접 폭언을 하는 것을 보니 사위도 그곳에 있으면 안 될것 같다. 사위를 여기로 보내라”고 전했다.
엄마는 그동안 마누라를 때리고 자식들에게 폭언을 일삼는 목사 사돈의 이야기를 말로만 들어오다가, 직접 그 행태를 목격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시누는 대답했다.
“사돈은 남편한테 안 맞으세요?”
시부, 시모, 시누는 그렇다 쳐도 남편은 데려와야 했다.
삼촌과 엄마,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시집으로 향했다.
시집에 가까워질수록 속이 울렁거리고 먹은 것도 없는데 토할 것 같았다.
아이들을 앞세워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이상하게도 그 날, 그 시간엔 몇 개의 장면들만 드믄드믄 기억에 있다.
남편손을 잡고 울던 어린 아들 모습과,
시부의 고함에 내 옆에서 고개를 떨구던 엄마.
삼촌할아버지 옆에 숨어 훌쩍이던 딸아이.
그리고 고개를 젓던 남편.
삼촌은 시집에 들어가기 전에 혹시 모르니 녹음기능을 켜자고 했다.
그 파일에는 시부의 폭언 중간중간 다 귀찮다는 듯이 녹음된 남편의 작은 목소리가 있다.
"다 나가.. 다 나가.."
남편에게 몇 번 전화를 했지만 시모가 받아 스피커폰으로 틀어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자도 모두 시모나 시누가 받아 알려주고, 적어 주고 있었다.
간병인과 남편만 있을 때 전화를 해야 했다.
남편도 가급적 낮에 전화를 하라고 했지만 낮에는 여유를 갖고 전화하기 힘들었다.
남편은 전화를 잘 받지 못하다가 퇴근길에 건 전화를 받았다.
나는 이번 방사선치료 효과가 없으면 차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남편은 내게 말했다.
"그 점쟁이가 돌팔인가 봐. 몸이 좋아지지 않아."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나를 맞아주는 아이들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식탁에는 우편물 서류가 하나 놓여있었다.
봉투는 이미 뜯어져 있었다.
청구취지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
원고와 피고는 7 : 3 으로 재산을 분할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를 지불한다.
아이들에 대한 양육자는 피고를 지정한다.
'이게 뭐지?'
1. 보장구(장애보장구)
장애인 보장구란 장애인들의 활동을 보장해 주는 기구
구입금액의 90%까지 지원하나 보조기기별로 정해진 최대 기준금액까지 지원하고 나머지 초과금은 장애인 본인부담
2. 활동보조인(장애인 활동 보조 서비스)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을 지원하여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가족의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
3. 연하장애
기도와 식도의 유기적인 움직임에 장애가 생겨서 음식물을 삼키지 못하거나 음식물이기 도로 넘어가게 되는 것.
4. 뇌간의 연수 Medualla Oblongata (숨골)
뇌와 척수를 연결하는 부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호흡중추등 내장기능의 자율반사중추, 연하중추, 발음중추, 발한중추 등이 있다. 약 2.5 cm 되는 작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생체의 자동제어중추로서 생명의 유지에 직접 관여하는 중요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