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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쥴 Oct 15. 2023

6.아버지는 눈이 멀어도,딸을 인당수에 세우지 않는다.

갈등의 시작

  

팬데믹


건강한 사람들이 쓰러져나갔다.


초기에 방심했던 사람들도 믿기 어려운 죽음들을 목격하며 공포에 휩싸였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서로의 거리를 지킨 채 만남을 자제했지만 심각한 중증환자들이 발생했다.

누군가는 사회전체를 위해 밤낮없이 시스템을 재정비했고, 누군가는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지키다 쓰러졌다.

위기를 맞은 소상공인들도 있었지만 몇몇 정치인과 기업들은 발 빠르게 기회를 포착했다. 내가 속한 사업부¹가 그러했다. 쏟아지는 업무는 주말까지 밀렸다.


위기와 기회는 공존한다.

위기가 닥치면 그것을 기회로 삼으려는 자들도 만나게 된다. 나의 개인적인 위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세가 잦아들고 마스크를 벗게 되자, 우리는 해방감과 함께 그 불편했던 시간들을 빠르게 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격리된 우리 가족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아이들만의 세상


초중고생 세 아이의 엄마인 내 핸드폰의 학교어플들²로 코로나19 관련 공지가 쉴 새 없이 울렸다.
같은 학급이나, 겹치는 동선에서의 확진자 발생은 아이의 일상을 강제로 멈추게 했다. 코로나 검사를 진행하고 보건소의 통보를 받을 때까지 아이는 혼자 집에 있어야 했는데, 어린 막내를 집에 혼자 두는 건 쉽지 않았다. 아이들의 학교와 학원 스케줄이 관리가 불가능할 것 같다 싶더니, 전국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선포되었고, 결국 모든 학생들의 수업이 원격으로 전환되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세명의 아이들은 집에 있는 것이 익숙한 터였다. 학교 급식을 대체할 점심이 걱정이긴 했지만 잔뜩 반찬을 만들어 놓으면 자기들끼리 잘 챙겨 먹었다. 간편식이나 배달 음식도 때로는 좋은 해결책이었다.




남편의 격리


서울대 병원의 신경과에서 시도된 여러 치료법은 뚜렷한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진단명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루게릭(ALS)³같은 운동신경원병(MND)⁴이나 NMOSD⁵같은 염증성 질환을 배제(R/O)⁶한 신경과에서는 다시 신경외과에 컨설트⁷ 를 넣었고, 림프종⁸ 가능성을 고려하여 MTX⁹ 항암 치료를 해보기로 했다.

이후 두 차례의 항암 치료를 받고 촬영한 MRI 사진에서는, 종양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약간 작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물리적인 증상도 개선되어, 강직증상이 완화되고 호프만싸인¹⁰ 역시 사라졌다. 우리는 항암 치료를 끝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전국의 병원들은 정상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진료와 치료는 모두 지연되었으며, 입원 대기 기간은 길어졌다. 겨우 입원을 해서도 간호간병¹¹ 병동에서는 외부인의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3차, 4차로 항암치료가 이어졌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남편의 마비는 상반신 전체로 퍼져나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항암 휴지기¹²때 남편이 있던 재활병원은 그의 재입원을 거부했다.

우리는 급하게 다른 요양 병원을 찾아야 했다.


새로운 요양병원으로 옮겼지만 남편은 그곳의 중국인 간병인과 잘 지내지 못했다. 점점 짧아지는 남편의 문자로 마비가 팔전체로 악화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울대 병원의 간호간병 병동에서는 하루 1시간 면회가 가능했지만 요양병원에서는 병원비를 계산하는 직원과 경비원 외에는 어느 누구도 접촉하거나 만날 수 없었다.


"케모포트¹³랑 필요한 것들 로비에 맡겨놨어. 매장에도 결재해 놨으니까 먹고 싶은 거나 더 필요한 거 있으면 간병인한테 갖다 달라고 해"

남편과 통화하고 간병인에게 알리면 얼마뒤 내려와 짐을 갖고 올라갔다.


남편은 이대로 오래 못 버틸 것이다.  


가족들은 서로 격리되어 갔다.




실종신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의 교육 공백을 우려한 교육청의 결정으로, 큰아이의 등교가 먼저 시작되었다. 큰아이의 1회기 차 심리 상담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아이의 눈빛은 여전히 불안했다. 학교생활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갖고 있는 아이를 다시 보내자니 걱정이 앞섰다.


걱정은 곧 현실이 되었다.

큰아이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이는 2교시가 끝나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학교 안팎을 샅샅이 찾아가며 아이와 연락을 시도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물었다.

 "혹시 엄마 전화는 받는지, 아이가 집으로 돌아갔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나요?"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문자에도 답이 없었다. 심장이 또다시 철렁 내여 앉았다. 집으로 향하는 운전대를 꽉 움켜잡으며 "정신 똑바로 차리자"를 계속 되뇌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12에 전화를 걸어 실종신고를 하고 경찰에게 며칠 전에 찍은 아이의 사진을 전달했다.

간식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사진 속 아이를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 지역 경찰, 청소년 담당경찰들이 동원되어 수색을 시작했다.


동생들과 할머니가 함께 계속 전화했지만 아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때 심리 상담 선생님이 떠올랐다. 비록 늦은 밤이었지만, 상담 선생님께 전화를 해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님은 센터장¹⁴ 님과 함께 바로 달려와 주셨고 전문가들 답게 경찰과 직접 연락을 취해 아이의 행방을 찾았다. 어느 누구의 연락도 안 받던 아이가 상담선생님의 문자에 짧은 답을 보낸 것이다.


"어머니, 아이가 문자에 답을 했어요. 위치 정보를 경찰과 공유했고, 지금은 아이의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일단 마음을 놓으세요."


아이는 어느 상가 건물에 혼자 있었다고 했다.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고생했다" 해주라고 선생님은 당부했다.

그렇게 그다음 날 새벽, 눈이 퉁퉁 불어서 돌아온 아이에게 라면을 끓여주었다.

아이는 내내 굶은 듯 뜨거운 면발을 삼키며 훌쩍였다.



희생과 선택


아이의 실종 사건 일주일 뒤 남편의 생일이었다.

휴일 점심시간에 맞춰 면회를 하기 위해 아직은 불안한 아이들 세명을 집에 남겨두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남편은 간호간병¹¹ 병동에서 혼자 항암치료를 감당하고 있었지만 중국인 간병이인이 있는 요양병원보다 이곳이 더 좋다고 했다.
남편의 점심식사와 양치질을 도운 뒤 커튼을 치고 케이크 초에 불을 붙여 둘만의 생일 파티를 했다.

조금 더 오래 머무를 수 있게 허락해 준 간호사들에게도 케이크를 돌리고 남편옆에 머물렀다.


"이번 항암이 끝나면 집으로 가야겠어. 요양병원 중국 놈들이 날 병신 취급해."

불편함과 답답함을 내뱉으며 남편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는 새로 옮긴 요양병원에서 남편이 어려움을 느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들만 있는 집으로 남편을 데려올 경우 아이들에게, 특히 큰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고민하고 있었다.


상담 선생님은 간병인을 고용하더라도 아이들과 환자를 살필 어른이 한 명 더 필요하다고 했다.

환자와 아이들을 보호해 줄 어른이 없다면 무력해 질 수 있다는 선생님의 의견은 일리가 있었다.

80kg가 넘는 남편을 간병해 줄 사람으로 남성 활동보조인이 올 터였다. 딸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아이들만 있을 때 만약 아버님이 잘못되시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수도 있어요."

이미 큰애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남편, 양쪽 모두 도움이 필요했다.
남편에게 지금 당장은 무리가 있으니 일단 요양병원으로 가자고 했으나, 남편은 큰아이가 있으니 문제가 없다며 바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큰애도 힘들어하고 있어. 심리적으로도 안정적이지 않아서 불안 불안해. 그 아이마저 문제가 생기면 나도 못 버텨" 라며 남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장모님이 와서 봐주면 되겠네,”라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엄마도 아픈 아빠 간병을 하시면서 아이들 챙겨주시는데... 이미 너무 애를 많이 쓰고 계셔. 그것보다는 어머님이 오셔서 자길 좀 돌봐주시면 어떨까?”


그러나 남편은 단호했다.

“우리 엄마는 안 돼. 나이도 있고, 몸도 안 좋아. 장모님이 도와주는 게 나아.”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도 아파, 아버지는 더 아파. 아버님이랑 어머님은 건강하시잖아. 그리고 돌봐야 할 손주도 없잖아.”


남편은 곤란한지 이야기했다.

 “그럼, 자기가 우리 엄마한테 이야기해 봐.”

.

“하지만 당신이 어머님 아들인데, 직접 하는 게 더 좋지 않겠어?”

나의 말을 남편은 썩 내켜하지 않아 했다.


격리된 병실에서 중국인 간병인이 자기를 무시한다 느껴 괴로워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또한 남에게 부탁이나 어려운 이야기를 못하는 성격을 잘 알기에 지금 상황을 힘들어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우리는 커튼으로 가려진 좁은 병상에서 고민과 감정을 좀 더 나누었다. 남편은 어머님에게 이야기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시어머니로부터 도와주겠다는 답이 왔다.



조던 피터슨의 말대로,

우리는 인생에서의 희생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무엇을 희생할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 선택이 옳고 그르건 간에 한 가지 명확한 건, 내가 한 선택은 모두 나의 몫이고, 내 삶의 여정에 선명한 발자국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우리 집 세 아이들이 좋아하는 덤블도어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을 통해 나타나는 거란다.”
- 해리포터 비밀의 방 中


선택이 바로 나다.



1. 제약회사의 온라인 서비스를 개발하는 시점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다. 외출을 못하는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몰렸다. 사업이 전년대비 30% 이상 성장했다.


2. e-알리미, 아이엠스쿨, 하이클래스등 학교마다 사용하는 서비스가 다르다.


3. 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근위측성 측색경화증

운동신경원병(MND) 중 가장 유명한 병으로 루게릭 병이라 불린다.

아래쪽(다리 힘 빠짐)에서 시작되거나 위쪽(발음이 어눌해진다던지, 삼킴 장애가 발행한다던지)에서 시작되어 근육이 모두 소진되며 사지마비나 호흡마비까지 진행된다. 아직까지 원인은 밝혀진 바가 없다.


4. 운동신경원병(Motor neuron’s disease)

신경세포 중 운동신경세포에만 문제가 생기는 질병들이 여기에 분류된다. 보통은 원인미상으로  1~5년에 걸쳐 운동세포만 서서히 죽는 양상을 보인다. 감각에는 이상이 없으며 저림이나 통증도 없다.


5. 시신경척수염범주질환(neuromyelitis optica spectrum disorders: NMOSD)

탈수초성(신경을 전선이라고 비유하면, 전선을 감싸는 막이 벗겨져 신호 전달이 안 되는 현상)질환으로, 주로 시신경과 뇌, 척수 신경에 발생하며 통증, 감각이상, 마비 등을 일으킨다.


6. 배제(Rule out)

의사들이 진단을 내릴 때 여러 개의 질병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해당 질병들을 배제하기 위해 쓰는 개념.

의심되는 질병 앞에 R/O를 붙이면 추적검사를 통해 해당 질병은 배제시키겠다는 의미이다.

일단 배제되면 나머지 의심되는 질환에 비중을 두고 치료한다.


7. 컨설트(consult) 

협의진료, 협진, 이라고 하며 다른 과나 다른 병원의 도움이 필요할 때 "컨설트를 넣어" 진료를 의뢰하거나 의견을 구한다.


8. 림포종 lymphoma

면역세포가 암세포 변이해 증식하는 종양으로 비교적 항암제에 잘 들어 관해(암 완치) 율이 높다.


9. MTX (methotrexate)

Vincristine, Procarbazine과 함께 척수강내 항암 주사요법으로 사용대는 대표적인 항암제.

원발성 중추신경계 림프종(Primary Central Nervous System Lymphoma)에도 사용된다.


10. 호프만 반사(Hoffmannsign)

운동신경 중 상위운동신경(Upper motor neuron, 위로 올라가는 운동신경)에 이상이 있을 때 관찰되는 반사이다. 뇌간의 연수(Brain Stem의 Medulla Oblongata)에 손상이 생기면 뇌로 올라가야 할 신호가 그 지점에서 끊겨 다시 아래로 내려가 항진반응(ex. 떨림, 튕김)이 보이게 된다.


11.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환자가 보호자나 개인 고용 간병인이 필요 없도록 병원의 간호인력에 의한 전문적인 간호서비스를 24시간 제공하는 제도.


12. 항암 휴지기(chemotherapy-free intervals)

항암제 투여 회차 사이에 두는 휴식 기간.


13. 케모포트

 약물주입(특히 항암제)및 수혈, 채혈을 위해 삽입된 관. 주기적으로 항암제를 안전하게 맞기 위해 삽입하는 기구로, 보통 심장 쪽의 피부 밑에 있으며 약물의 투입구만 피부 밖으로 노출시킨다.


14. 지역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남아있는 당시 상황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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