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대하는 첫번째 단계
이 모든 건 다 시가의 짓이라고 호소하고 다녔다.
남편이 나에게 이렇게 할리가 없었다.
그가 나에게 섭섭한 순간들이 있을 수는 있어도 단한번도 이혼을 하잔다거나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며 탓하지 않았다.
상실을 받아들이는 제1단계 :
부인(Denial)¹
자신에게 일어난 고통을 인정하지 않는 단계다.
이 같은 부정에는 심리적 이득이 있다. 인간은 고통이나 충격, 배신을 한순간 또는 하루 만에 받아들이기 어렵다. 때문에 일단 부정을 할 경우 닥친 고통을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느껴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²
주말을 맞아, 일상의 소음을 뒤로한 채, 아이들을 데리고 근교 계곡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 기억이 근 3 년 전으로 희미했다.
나무들 사이로 흙냄새가 올라오는 국도에 접어들자, 아이들은 손을 창밖으로 내밀고 함박웃음을 길 위에 퍼트렸다.
여자 혼자 세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걸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이 잠시 들었다가 계곡에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그동안 데리고 나오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나는 노트북을 펴고 변호사에게 전달할 서류와 내용들을 정리했다.
큰아이가 내 주변을 쭈빗쭈빗 맴돌더니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아빠가 이혼하제?"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빠가 엄마한테 그럴 사람이니? 게다가 너희 세명도 데리고 있는데."
나의 말에 아이 얼굴이 밝아지며 대답했다.
"그건 아니지"
며칠 뒤 큰아이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큰아이가 담인 선생님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상황과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선생님께 말했다.
학교에서는 큰아이가 불안할 때마다 보건실에서 쉴 수 있도록 조치해 주셨다. 청소년심리센터³에도 추가 지원을 요청하여 심리치료를 이어나갔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은 이 소송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 보였다. 대체 무엇을 하고 싶어서 위자료를 요구하며 소송을 벌이겠는가. 사지마비로 혼자서 스마트폰 조작도 할 수 없는 남편은 모든 금융 거래나 일상의 활동도 시가사람들이 대신하고 있을 터였다.
다른 여자가 생긴 것도 아닌데 처자식만 잃게 되는 이런 소송을 남편이 원할리 없었다.
이혼 소장에 적힌 남편 쪽 변호사 사무실을 검색하자, ‘이혼 전문’이라는 수식어로 가득한 광고 글과 배너들이 화면을 뒤덮었다. 사지마비 상태인 남편이 직접 인터넷을 뒤져 변호사와 상담하는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시모와 시부의 요청에 냉담하게 “알아서 해”라고 동의하는 남편과, 인터넷을 뒤져 변호사를 찾는 시누, 서초동의 사무실로 달려가 상담을 받은 뒤, 서둘러 남편 통장에서 수임료를 이체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소장을 받은 건 남편과 마지막 통화 뒤 나흘만이였다⁴. 남편이 그 이전에 헤어지자는 말이나 그럴 기미를 보였다면, 지금과 같이 당황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급하게 작성된 체크박스형식의 약식 소장 한 달 뒤, 구체적인 내용의 추가 송장이 날라 왔다.
서면에 적힌 남편과 나의 이야기들은 우리를 시기질투하는 누군가의 관점에서, 우리가 22살 때부터 쌓아온 이야기 중 아주 단편적인 부분만을, 제3자가 알 수 있는 겉면의 일부로만 왜곡되어 있었다.
교제 중 양가 부모님 만남 이후 결혼한 원고와 피고⁵
그들 서면의 첫 단락이 부모님에서 시작되었듯,
그들이 시작한 이혼 소송은 시부모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가 부모님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는가.
원고의 적극적인 구애 표현에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원고가 학교를 졸업할 때쯤에 함께 하는 미래에 대해 꿈꾸게 되었고, 곧 독립적으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 원고와 피고 서로 공감한 뒤, 자연스럽게 양가에 인사를 드리게 된 것이지, 중매결혼처럼 부모님들께 인사드리는 것이 계기가 되어 결혼을 한 것이 아닙니다. (피고의 서면 中)
22살에 만나 27살에 결혼했다.
양가 부모님들의 만남은 우리가 함께 쓴 이야기에 스쳐 지나간 순간일 뿐이었다.
우리 가족의 삶과 부부사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표면적인 정보만을 바탕으로 한 서면 진술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서면엔 남편 자신의 투병에 대한 어려움과 심경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남편을 유기했다는 거짓 주장과 적개심만 가득했다. 진정 남편이 작성했다면 그 어려운 시기 동안의 고민과 힘들었던 순간들이 분명히 담겨있을 것이었다. 나는 남편이 진심으로 느낀 감정과 생각, 그의 진정한 마음을 알고 싶었다.
그 대신, 재산 형성의 주요 공헌자가 남편이었다는 주장과 그것의 관리는 내가 단독으로 했기에⁶재산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도록 재산조회를 요청하고 있었다. 게다가 뜬금없는 시모의 레퍼토리, 내가 과거 남편은 원치 않던 사업을 종용⁷했고 그로 인한 재산의 손실이 크다는 왜곡된 그들의 주장이 서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를 부당하게 비난해 온 시부모의 말, 의사 아들로부터 충분한 경제적인 대가도 받지 못하고 며느리만 호강을 하게 되었다며 혼인기간내내 나를 괴롭혀왔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그러나 서면 중 가장 가슴 아린 부분은 형식적으로 언급된 아이들이었다.
'원고는 투병중이므로 아이들의 양육권은 피고가 갖기를 원합니다.'
상대방은 이후 서면에서 그동안 남편이 아이들과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래서 자신과 아이들 사이에는 강한 유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환자이므로 피고를 아이들을 양육자로 지정한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환자인 자신이 아이들을 맘껏 볼 수 있는 조치를 취해달라거나, 어떻게 하겠다는 실질적인 방안이나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반대로, 남편 계좌와 연계된 아이들의 신한포니카드⁸가 갑작스럽게 정지되었다. 아이들이 용돈을 받고, 교통카드로 쓰던 것이었다. 아이들은 카드가 작동하지 않는다며 놀람과 혼란 속에서 내게 연락해 왔다.
용돈은 내가 이체하고 있었지만, 그 내용을 모르는 자에 의해 아무런 예고도, 아이들에 대한 배려도 없이 카드가 갑자기 정지된 것이었다.
곧이어, 남편과 아이들의 핸드폰 결합이 해지되면서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아이들로부터 전화가 안된다는 다급한 와이파이 메시지가 쏟아졌다.
'엄마. 와이파이는 되는데 전화나 다른 메세지는 안되요.'
나를 통해 아이들과 소통하던 남편은 소송이 시작됨과 동시에 그 연결을 끊어버렸다.
아이들에게 어떠한 연락도 따로 하지 않았다.
나는 법원에 사전면접교섭⁹과 상담신청을 했다.
가. 현재 원고가 사건본인¹⁰들에게 어떠한 연락도 취하지 않고 있는 사정
가사조사 보고서 상 원고가 면접교섭에 대해 사건본인¹¹들의 안정과 복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자유롭게 진행하고자 한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하나, 실제로는 이와 달리 사건본인들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는 상황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인 사건본인 ㅇㅇㅇ의 수능 날 피고가 너무도 마음이 아파서 11. 18. 원고에게 격려 메시지라도 남겨주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이후 이틀 후인 11. 20. 소송 이후 처음으로 원고가 사건본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피고 사전처분요청서 中)
코로나19 때문에 환자와의 상담조치는 받아들여지기 힘들어 보였다.
다행히 재판부는 아동상담만은 받아들여주었다.
소송 시작 후 8개월이 지나 상담사가 아이들의 상담을 시작했다.
그리고 각각의 부모를 만났다.
상대방은 아이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진것이 나때문이라고 서면에 적어왔다.
그들은 무엇을 꺼리길래 손주들에게 연락조차 안하며 아빠의 상태 공유도 안해주는걸까.
아이들도 더이상 아빠와 프라이빗하게 통화나 문자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다.
한편으로는, 원고는 왜 사건본인들로부터 먼저 별도의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인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사건본인들은 각자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고, 굳이 피고가 중간에서 간여하지 않더라도 사건본인들이 원고에게 직접 연락을 할 수 있을 것임이 자명합니다.
원고는 병세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사건본인들을 많이 돌보아왔으므로 사건본인들과 사이가 좋고 유대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사건본인들로부터 먼저 연락이 오지도 않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피고가 사건본인들과 원고의 연락에 모종의 통제를 가하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의심할 따름입니다. (원고 11월 서면 5p)
시모와 남편은 소송 서면에 적은 것과 같이, 아이들이 아빠에게 연락하지 않는 것은 나의 이간질 때문이라고 상담사에게 말했다.
상담사는 바로 그들을 야단쳤다.
"적극적으로 관계를 챙겨야 하는 것은 부모입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연락을 해야지, 아이들이 부모에게 연락하기를 바라서는 안 돼요."
그 뒤로도 시모와 시누가 비슷한 이야기를 몇번 더 꺼냈지만 남편이 그때마다 제제하더라는 이야기를 상담사로 부터 전해들 수 있었다.
상담사는 환자인 남편의 안전을 위해 시가로 아이들이 가서 아빠를 만나되, 간병인 외 다른 시가식구들은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사전면접교섭이 시작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시가로 갔고 아이들이 상담사와 올라가는 것을 확인한 뒤 그곳을 급히 빠져나왔다. 행여 시가 사람들이 나타나 또 욕설을 퍼붓지는 않을까 심장이 두근거렸다. 눈에 띄지 않는 골목 뒤에 차를 세우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오랜만에 해우하는 아이들과 남편을 떠올리니 기대감과 걱정이 교차했다.
서로의 연락이 없던 아빠와 아이들은 상담사의 세심하고 능숙한 도움을 받으며 재회했다.
오랜만에 아이들을 만난 남편은 상담사에게 말했다.
"시원한 맥주를 한잔 마신 것처럼 기분이 좋네요"
문제는 두번째 사전면접교섭 진행과정에서 발생했다.
면접교섭 한 시간 전, 상담 선생님이 코로나 환자 밀접접촉자로 분류되면서 갑작스럽게 계획이 변경되었다.
아이들만 친가로 들어가야 할 상황이 되자 차 안에 있던 큰아이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큰아이를 동생들과 함께 들여보내놓고 걱정이 되어 상담사에게 전화를 했다.
상담사는 남편에게 전화하여 큰애에 대해 물었고, 남편은 아이가 오지 않았다고 답했다.
아빠는 아이가 두 시간 동안 화장실에서 혼자 울고 있었던 것을 모르고 있었다.
상담사가 없으면 아무도 아이들과 아빠를 도와주지 않았다.
면접교섭은 남편이 재입원하면서 중단되었다.
남편의 상태가 어떤지, 다시 중환자실로 간 것은 아닌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이들과 함께 남편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상담사가 시가의 식구들과 연락하여 그의 상태를 전해주었다. 폐렴에 걸렸지만, 잘 극복하여 시가로 돌아왔다는 안도의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남편의 거리가 다시 벌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비난만 하며 면접교섭에 소극적으로 나오는 원고 측에게 적극적인 태도를 요청했다.
새로 교체된 판사도 환자라고 해서 아버지의 의무가 없는 것은 아니라며 남편의 태도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우리는 남편쪽 대리인에게도 아이들에 대한 협조를 계속 부탁했다.
대리인은 곤란해했다.
"왜 이런 걸로 귀찮게 하냐고 오히려 화를 내시더라고요."
이혼이 바로 될것 같이 이야기하더니 이것저것 자꾸 뭘 시키냐며 협조하길 꺼려한다는것이 었다.
변호사가 상대하는 사람이 시누인지 남편인지도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적법하게 작성된 위임장이 있는지, 있다면 제출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끝까지 제출하지 못했다.
상대방 변호사는 중간에 사임했다.
이혼소장을 받은 직후, 지인이 알려주는 양재동의 한 법률 사무실로 달려갔다. 5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작고 마른 체구의 변호사가 엄마와 나를 맞아주셨다.
까만 피부에 약간 창백한 얼굴의 변호사님은 우리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자세히 상담해 주셨다. 그러나 사건은 수임하실 수 없다고 하셨다. 낙담하신 엄마가 옆건물 법무법인에라도 들려봐야겠다 하시자, 변호사님은, 만약 거길 가면 이변호사를 만나 보라고 하셨다.
나는 왜 우리 사건을 맡지 않으시려고 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짧은 답변을 주셨지만 변호사님의 먹빛 얼굴색이 나머지를 설명해 주었다.
상담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가는 우리에게 변호사는 조언을 덧붙이셨다.
"환자들은 판사의 마음을 기울게 합니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예요."
주변 지인들의 추천으로 여러 변호사들을 만났다.
회사일로 시간내기 어려운 나를 대신해 때때로 엄마와 삼촌이 상담을 받고 오셨다. 난 엄마에게 변호사를 만나면 내 케이스와 비슷한 사건의 경험이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진행을 얼마나 현실적으로 예측해 주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엄마는 이변호사님의 에너지 넘치는 상담이 믿음이 갔다며 직접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이변호사님을 만났다.
변호사님은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저는 남편과 헤어질 이유가 없어요"
내 대답을 들은 변호사님은 단호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법적 조치들은 무엇이 있는지 설명해 주셨다.
나는 왜 다른 분들이 이변호사님을 추천해 줬는지 알 것 같았다.
"앞으로 많이 힘드실 거예요"
변호사님은 앞으로 읽게 될 서면들에 너무 상처받지 말라고 하셨다. 대체로 이혼을 원하지 않는 쪽은 상대방의 공격에 힘든 시간을 겪는다며 나에게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일러주셨다.
그 조언대로, 새로운 서면이 도착할 때마다 마치 전기충격을 받은 것처럼 온몸이 저렸다.
정신을 못 차리는 나를 대신해 변호사님이 싸워주셨다.
원고는 최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피고가 “원고가 치료 방법이 없어 퇴원을 한 상황”이라는 취지의 문구 하나를 가지고 피고가 원고의 사망을 기정 사실화 한다는 식의 지극히 부당한 주장을 하였습니다.
원고는 이에 대해 반증도 제출하지 못하면서 그러한 의미의 말을 하였다는 식으로 지속적으로 피고의 인격과 삶을 악의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법정에 제출하는 서면에 있어 그 최소한의 기준을 지켜주기를 다시 한번 원고 측에 촉구하는 바입니다.
피고를 인격적으로 공격한다고 하여 정상적인 혼인생활이 파탄으로 변경될 수 없으며, 부인인 피고와 자녀들인 사건본인에게 평생의 상처가 될 수 있는 악의적인 서면의 제출은 중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피고의 4차 준비서면 )中
과거부터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오던 억울함과 상처를 변호사님을 통해 조금은 떨쳐버릴 수 있었다.
늦은 밤 불안에 휩싸여 급하게 전화했을 때도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소송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상황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세심하게 알려주셨다.
지난 삶을 외면당하여 상처받았을 때, 그들의 거짓말에 분노하거나, 균형을 잃고 비틀거릴 때, 변호사님의 도움으로 길을 잃지 않았다.
법원에서는 나의 법정 대리인으로, 일상에서는 나의 심정 대리인으로 함께해 주셨다.
조정날 법원 옆 카페에서 눈물범벅이 된 나를 긴 시간 달래주셨던 변호사님의 따뜻함이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다.
1. 상실을 받아들이는 5단계
엘리자베스 Kübler-Ross가 그녀의 1969년의 책 "On Death and Dying"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2. ‘애도의 대가’가 말하는 상실을 겪어내는 6 단계 중
3. 지역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남아있는 당시 상황 기록
4. 남편이 시댁으로 돌아간 이후 했던 수차례의 통화에도 나에게 섭섭하다는 언급은 전혀 없었다. 나는 통화 녹취 중 하나를 제출했다.
5. 우리는 독립된 주체로 서로 공감한 뒤, 자연스럽게 양 가에 인사를 드리게 된 것이지, 중매결혼처럼 혼인이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1) 교제 중 부모님 만남 이후 결혼한 원고와 피고
원고는 학교 선배와 우연히 동석하여 피고를 만나 알고 지내다가 연인관계로 발전했습니다. 부모님께 서로를 소개해드린 것이 계기가 되어 쌍방의 부모 간 혼담이 빠르게 오갔고, 원고는 다소 정황이 없었으나 당시 피고의 개방적이 고 밝은 성격이 맘에 들어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원고는 원래 결혼하여 행 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주변에 말하고 다닐 정도로 혼 인생활과 가정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었는데, 피고는 나중에 원고에게 "자신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원고 두 번째 서면 中)
6. 남편은 응급실 생활이 힘들다며 개업했지만 결국 다시 응급실로 돌아갔다.
7. 내 계좌의 거래내역은 남편 문자로 알림이 설정되어 있었다. 공동으로 관리했기에 재산내역을 모르는 것은 시가 식구들이지 남편이 아니었다.
8. 신한에서 발급하는 청소년 전용 후불 교통 체크카드로 남편 계좌와 연동되어 있었다. 그것 외에도 아이들 학원비를 결제하던 에듀카드를 포함해 우리가 쓰던 카드를 모두 정지시켰다.
9. 면접교섭 사전처분
면접교섭권은 이혼 후 자녀를 직접 양육하지 않는 부모 일방이 자녀와 만날 수 있는 권리이다.
면접교섭 사전처분은 이혼 소송 중에 자녀를 만날 수 없는 경우, 법원에 신청하여 일정 기간 동안 자녀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강제집행력은 없으나, 거부할 경우에는 법원에서 강제로 이행할 수 있다.
10. 사건본인
특정 사건에서 당사자 또는 대상이 되는 사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이혼 소송에서 '사건본인'은 자녀를 의미하며, 상속 소송에서 '사건본인'은 상속인을 의미한다. 이는 사건의 성격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사용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해당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