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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예지 Aug 27. 2021

우리는 왜 우울할 때 스마트폰을 켤까?

우울함, 외로움, 무력감... 그 모든 것을 스마트폰으로 채울 수 있을까


예전의 제 모습이 생각납니다. 



무슨 문제든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우울증 같은 것은 잘 겪지 않았습니다. 그 흔한 산후우울증도 없었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생기면 친구들과 술 한잔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걸 없앨지를 생각하는 쪽을 택하곤 했어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맘이 편해지질 않았어요. 그렇게 하려고 했다기 보다 저라는 사람이 원래 그랬습니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지언정, 축 처져서 우울해하는 일은 별로 없었던 거였죠. 



그런 저도 집에서 육아를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시간관리를 잘 하지 못하면서 무기력증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우울증까진 아니어도, 하루하루 몸은 편한데, 뭔가 집중할 것도 없고 무력감이 느껴졌어요. 무언가 하고는 싶은데 뭘 해야 할지도, 어디서부터 움직여야 할 지도 스스로 정하지 못했습니다. 



책을 읽어야지...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봐도 딱히 목적의식이 없으니 적당히 보다가 덮곤 했습니다. 읽지 않는 기간이 늘수록 책을 읽는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눈으로는 따라가고 계속 페이지를 넘기는데 바로 앞장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고, 눈에서 읽은 활자가 머리에 닿지를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집안일을 다 하고 책을 봐야지'라고 생각했다가도 막상 일을 끝내면, 머리를 쓰기 싫고 TV부터 켜고 미드를 보기도 했습니다. 드라마도 잘 안 보던 제가 예능 프로그램도 챙겨 보기 시작했고요. 



그 패턴은 TV에서 유튜브로 옮겨갔습니다. 좋아하는 자기계발 강의, 투자 강의 보며 스스로 시간을 잘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 옆쪽으로 반짝거리는 연관 영상들을 클릭하고, 정말 '엉뚱한 데'에 시간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패턴과 원인, 상황이 너무나 명확한데, 당시에는 그런 생각조차 없었어요. 그냥 가만히 기다리면 '내가 할 일'이 '짠' 하고 나타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리고  익숙한 환경에서 매일 보는 사람들을 만나며, 익숙한 방식으로 시간을 쓰고 살았죠. 





수많은 직장인들을 보면, 매일 아침 바쁘게 출근하고 힘들게 일하고, 항상 피곤해 보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사는데, 대부분 사는 데 의미가 없고, 그냥 산다고 해요. 저보다 몇 살 위인 예전 동료에게 '직장을 꾸준히 다니는 것도 멋있다.'라고 했더니, '그냥 습관처럼 다니는 거야. 의미 없어.'라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보면, 삶에 의미라는 것을 찾고 사는 사람이 있긴 할까 싶습니다. 주변에서 찾기 쉽지 않아요. 



보통은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열정이 생기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는 것은 실행하기에는 참 모호한 행위입니다. 결과적으로 '내가 하는 일=내가 좋아하는 일'이 되는 것이지 갑자기 딱 찾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스티브 잡스는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라'라고 했지요. 또는 '사랑하는 일을 하라'라고 표현되기도 합니다. 





삶에 의미가 없는 것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거창한 것을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실력을 키우고 싶은 것 정도로 정하면 됩니다. '5~10년 뒤 내가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이 분야에서 어느 수준까지 도달해 봐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목표를 세워 봅니다. 다음으로, 목표 달성을 위해 반드시 수행해야 할 매일매일의 실행과제를 정합니다. 마지막으로,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세요. 



스마트폰은 무력감, 외로움, 상실감, 낮아지는 자존감 등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 접근하기 가장 쉬운 도피처입니다. 답답한 현실을 잊고, 최면에 걸린 듯 손가락만 까딱하면 가상의 공간에서 끝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우울할까요? 우울해서 스마트폰을 자꾸 찾게 되는 것일까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질문 같지요?  시작은 명확합니다. 처음 시작은 필요한 기능이나 호기심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의존, 중독적으로 집착하며 들여다보는 것은, 우울한 감정에서 시작됩니다. 



스마트폰을 자꾸 들여다보고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현실감이 없어집니다. 폰 안의 세상에 있는 동안, 일상의 무력감과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불안함과 외로운 감정을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계속 폰만 보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자책과 낮아진 자존감으로 우울감이 더 커집니다. 우울감을 잊기 위해 또 폰을 들여다봅니다.



이 반복적인 패턴을 끊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의미 있는 활동을 일상에 밀어 넣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습관을 없애기 위해, 의미 있고 활력을 줄 수 있는 활동을 끼워 넣고 새로운 습관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효과는 강력합니다. 





기술의 발달로 삶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외국어를 배우거나, 한 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하거나, 시간이 많이 드는 일에 노력을 투자하려는 성향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쉽고 빠른 것에 대한 가치 평가가 높아지고, 'OO만으로 한 달에 천만 원 벌었다'식의 광고가 사람들을 혹하게 만듭니다.



쉬운 방법으로 다 된다면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결과를 내지 못할까요? 스스로도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다만, '나만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 아닐까?. 혹시 모르잖아."로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일지도요.



시간과 의도적인 노력이 더해질 때 보람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보람과 성취감은 자존감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통제력을 발휘해 결과를 내었을 때,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이것이 바로 자존감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난 있는 그대로 소중해. 나 자신을 사랑할 거야.'라는 말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일지 모릅니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어도 스스로 믿음이 없고, 내 잠재의식도 동의하지 않는 것이죠.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사회 변화가 큰 몫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서구 문명을 빠르게 받아들이며 급격한 경제성장을 해왔습니다. 인프라도 선진국 수준이고 경제력과 교육 수준도 높습니다. 산업 세분화, 극단적 전문화로 인해  '한 개인이 노력으로 무언가를 해 나가는 것'에 대한 의욕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내가 달성해야 할 목표는 너무 높아 보입니다. 부자의 기준도 매년 빠르게 상승해 웬만해서는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다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좋아하는 일이 무조건 있어야만 할 것 같고,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만 성공한 인생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예 새로운 시도나 계획을 세우는 행위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됩니다. 그저 먹고는 살아야 하니 일을 하고, '워라밸'을 외치며, 남는 시간은 취미생활, 그마저도 요새는 대부분 폰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여가시간을 채우게 됩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보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데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활동이 순간적인 즐거움을 주고 기분 전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맞습니다. 다만, 이 짧고 반복적인 활동이 내 시간과 두뇌를 우리가 인지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게 빼앗아 간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내 삶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어야 합니다. 우울하고 의미가 없다고 느낄 때, 숨이 찰 정도로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해보세요. 심장이 뛰며 살아있다는 느낌이 납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한 권 빌려 끝까지 읽어 보세요. 두뇌에 자극이 오고 마음에 뭔가가 닿는 느낌이 듭니다. 



스마트폰은 내가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너무 편리하고 영리한 도구입니다. 저도 스마트폰 없이는 너무 '불편해서' 못 살 것 같습니다. 외로울 때,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 스마트폰이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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