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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흔들리는 갈대가 아름답다. 18

by kacy

산수유


우리 집 작디작은 뜰에는 내가 여러 해 전에 심은, 이제는 사람 키 만한 산수유 두 그루가 있지요.

이제 하늘빛 날 눈도 못 뜨게 푸른데, 빠알간 산수유 열매를 보면 가을바람에 끓던 내 속도 좀 가라앉히고 그 매끈하게 붉은빛이 내내 꽤나 차분하더니만,

어느 날 오후, 느닷없이 하늘빛 날개의 산비둘기 때가 수십 마리나 나타나 그 산수유나무 옆에 있는 보리수나무와 모과나무에 잠시 앉았다가, 순식간에 아 이 붉고 붉은 산수유 열매를 몽땅 다 먹어 치우고는 날아가 버렸습니다.

나는 그만 어디 내 눈과 속을 들이댈 데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지라, 그냥 그 산비둘기 그 억센 소리만 기억하며 종일 들고양이와 서로 쳐다보며 눈만 같이 껌벅이며 앉아 있었습니다.



7월도 한참인 지금, 산수유 열매는 이제 푸릇푸릇 그 예쁜 모양을 매달고 있습니다.

이제 가을에 들면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갈 텐데, 작년의 그 산비둘기 사건으로

올해는 또 어찌 될지 지금부터 걱정이 되는군요.

이 녀석들이 작년의 그 열매 맛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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