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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연 Mar 09. 2023

모든 겨울이 지나간 뒤에 홀로 남겨진 의자가 있었다

2021『시와 사상』가을호

1.

한 눈 감고 한 눈 뜨고 잠든 고양이가 있었다 

동백은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있었다


‘눈이 쌓이고 쌓여. 아무도 이곳이 어딘지를 몰라‘*


읽고 또 읽은 눈雪으로 이루어진 나는 

어제의 눈발이 되어 걷고 걷는 중이야 


너로부터 잊혀져가는 너의 목소리와 

낱말들의 무표정으로 


어떤 모퉁이의 어떤 정원을 헤매며 


나의 책은 내가 써야 한다**


2.

그 모든 겨울이 지나간 뒤에 

홀로 남겨진 겨울처럼


가마우지는 우는 중이다. 비는 옮겨가는 중이다. 마지막 기차는 떠나가는 중이다.  


3.

빈 의자의 속도로, 너의 창 앞을 머뭇거리던 나뭇잎의 속도로,

이야기 없는 이야기를 쓰는 나는


픽션의 너야

논픽션의 심장이야 


나무에 나무를 더해갈 뿐

숲을 보려 한 것은 아니었지 


그러나 단 한 그루의 나무도 보이지 않아

지나간 나무를 


불러본 적 없는 이름으로 

불러 볼 때


더 이상 정지할 수 없는 밤이 있고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는 빈 의자가 있다


한 눈 뜨고 한 눈 감고 잠든 고양이가 있다 


* 최정례 「너의 여행기를 왜 내가 쓰나」 中

** 김응수 영화 「사각형을 위한 씻김굿」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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