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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연 Mar 09. 2023

불빛을 지송(持誦)하다

2022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나는 태어났다*라는 문장 속에서 나는 태어났다. 


너의 모국어로 사물의 이름을 익히고 네가 불러 주는 문장을 받아쓰며 문장의 구조를 익혔다. 너의 서재에서 계절을 보내며 자라나다 다시 태어난다. 첫 문장에서 태어나 첫 문장에서 죽는다. 나는 너의 찻잔 너의 이불 너의 책상 너의 고양이들과 함께 무한 속에서 무한한 잠을 잔다. 


롤랑바르트의 애도일기를 펼친다. “추상은 부재면서 고통이다. 그러니까 부재의 고통. 그런데 어쩌면 이건 사랑이 아닐까?”라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나는 부재한다 나를 애도한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한 부고를 쓰면서 나는 나와 작별한다.


벌판에 서 있으면서 벌판을 찾아 나섰던 두 발은 벌판에 이르지 못했다.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을 찾기 위해 헤매기만 했던 두 손은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을 찾지 못했다. 


나는 다가올 밤과 이어지지 않고 끝에 이르기 위해 끝을 바라본다. 여기를 밝히던 불빛을 지송(持誦)하며 땅 빛을 지속한다. 지속할수록 어두워진다. 쓰면 쓸수록 밤 속에 갇혀 있다. 불빛들 말하는데 불 꺼진 내 몸은 받아 적지 않는다. 저기로 가야 하는데 저기로 갈 수 없다. 전화를 받을 수 없다. 


물을 너무 주어 뿌리가 썩어 가는 카랑코에들을 바라본다. 떠오르지 않는 해를 떠올리며 목은 기울어지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몰라 잡동사니에 파묻혀 분량만 늘어나는 슬픔을 헨다. 슬픔이 슬픔을 읽을 수 없는 밤, 끝낼 수가 없어 끝내지 못하는 밤이 지속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살아 있었는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죽어 있는 건지


자야 하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배가 고픈 거일 수도 있다.

빵을 씹다가 종이를 씹다가 이미 부활한 것일 수도 있다.



 * 조르주 페렉  「나는 태어났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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